그저께 대구에 내려갔다가 손님들과 무슨 얘긴가 나누던 중에 곽병묵 형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제가 아주 좋아합니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이란 본생경에 나오는 말로, 하늘 위 하늘 아래 나 홀로 존재한다는 뜻이다. 듣는 사람에 따라 싸가지 없다고 느끼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부처님 탄생 설화에 등장하는 말인데, 부처님이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걷고 나서 이 말씀을 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어린애가 그렇게 말했을 리 없고 신화처럼 꾸민 말이다. 마구 꾸며댄 건 아니고 철학적으로 서술한 내용이다.
원문을 자세히 보면 즉 "이 세상에 나 홀로 존재하는데, 세상은 고통 속에 빠져 있으니 내가 마땅히 편안케 해줘야 한다. (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는 의미다.
깨달은 이 석가모니 붓다는 도솔천에 계시다 인간의 몸으로 내려오셨는데, 다음 붓다로 오실 미륵도 보살의 단계에 머문 채 도솔천에 있다고 한다. 그러니 천상에 보살인 미륵은 있되 붓다 미륵은 아직 없고, 천하인 이 세상에는 석가모니 말고는 역시 깨달은 이가 없다는 말이다. 아미타 등 옛 부처들이 계신 곳은 천상이 아닌 다른 세계인 모양이다.
하여튼 세상에 사는 모든 생령이 모두 괴로워하니 이들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 밖에 없고, 그래서 마땅히 그렇게 해야겠다는 각오를 함축시킨 말이 '천상천하유아독존'이다.
그런데 곽병묵 형은 이렇게 해석했다.
"내가 없으면 세상은 없는 거지요. 내가 있어야 비로소 세상이 존재할 수 있으니 모든 근본은 나로부터 시작된다, 그 말 아닙니까."
그 또한 말이 된다.
어쨌거나 지혜의 눈이 열린 분들은 세상 걱정으로 노심초사한다.
난들 그런 마음이 왜 없겠는가.
능력과 지혜와 힘이 붓다에 미치지 못하니 다소 적다한들 그 마음이 아주 없지는 않다.
알버트 아인쉬타인이나 아이작 뉴턴 같은 이들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알고는,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려주어 그들을 편안하게 하고자 노력했다.
내게도 남에게 나눠줄 수 있는 지혜가 있다. 150여권에 이르는 소설 따위야 심심파적용에 불과하고 실은 20년 줄기차게 파고들어 알아낸 나만의 지혜가 있다.
나 혼자 알아낸 게 아니고, 하늘의 도움과 신불의 덕분에 인간의 성격을 미리 읽고 행동을 예측할 수 있는 <바이오코드>를 알게 되었다. 이 바이오코드가 인간의 손에 쥐어진 불처럼, 언어처럼, 전기처럼, 바퀴처럼, 전자처럼, 고무처럼, 유리처럼, 도자기처럼 그렇게 인류에 이익되기를 소원한다.
* 풀이를 더 함
-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과연 붓다가 말했을까?
이 말의 출처는 본생경이다.
그런데 전등록(傳燈錄)에서 인용한 뒤 중국, 우리나라, 일본에 유행했다. 이때의 출처는 서응경(瑞應經)이라고 나와 있다.
* 전등록 ; 북송 시대인 1004년에 황제 진종의 명으로 도언(道彦)이 편집 출간한 책으로 참선할 때 잡는 공안 1700칙이 기록되어 있다. 이 책으로부터 붓다의 수련법이 간화선으로 왜곡되기 시작, 현학적인 말장난 쓰레기만 남아 오늘날 붓다의 반야와 멀어졌다. 다만 이 책을 논리 전개를 위한 바른 길잡이로 이용하면 매우 유용하지만, 일부 사변적인 승려들에 의해 그 뜻이 왜곡되어 불교를 도교의 음침한 계곡으로 이끄는 계기가 된 것이다.
나중에는 이를 비판한 원오극근 스님이 전등록 중에서 100개만 골라 벽암록을 지었다. 공안, 화두는 오직 조사만이 지을 수 있는데 전등록에는 스님들이 지은 것도 있어서 이를 죽은 화두라 하여 버린 것이다. 그렇다 해도 결국 공안이니 화두니 하는 간화선이 중국과 한국을 휩쓸면서 붓다의 깨달음이 멀어졌다.
당시 중국 당나라 시기에 크게 대립했던 붓다의 선법(묵조선 즉 아나파나) 즉 굉지(宏智)의 묵조선과 임제종 대혜(大慧)의 간화선은 간화선의 승리로 끝나 불교가 도교화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한국에서는 임제종을 이어받은 태고보우 때문에 간화선 일색으로 뒤바뀌었다. 굉지 스님은 간화선을 가리켜 "공안에 구애(拘碍)받아 맹봉난갈(盲棒亂喝)을 휘둘러 득의만만(得意滿滿)하다."고 비판했다.
전등록(傳燈錄)에 소개된 내용은 이러하다.
- 석가모니불초생(釋迦牟尼佛初生) 일수지천(一手指天) 일수지지(一手指地) 주행칠보(周行七步) 목고사방왈(目顧四方曰)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그런데 대장엄경(大莊嚴經) 전법윤품(轉法輪品)에는 “天上天下 唯我最勝”이라고 되어 있다.
이밖에도 인과경(因果經)에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붓다의 말씀을 결집한 팔리어경전에는 어떻게 나올까?
장부(Diighanikaaya) 14번째 경인 Mahaapadaana Sutta(한역 아함에서는 장아함의 제1경인 대본경)다. 여기서 석가모니 붓다는 우주 역사상 최초의 붓다인 비바시(Vipassi) 붓다부터 자신에 이르는 7불의 겁, 계급, 가문 등을 간략히 언급하시고 다시 비바시붓다의 인연을 설하면서 비바시 붓다가 태어나 북쪽으로 일곱 걸음을 가 이렇게 읊었다고 한다.
“aggo ’hamasmi lokassa, je.t.tho ’hamasmi lokassa, se.t.tho ’hamasmi lokassa, ayam antimaa me jaati natthi daani punabbhavo.(D14/ii.15)”
“나는 세상의 제일 앞이다. 나는 세상의 제일 위이다. 나는 세상의 최고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생이다. 이제 다시 태어남은 없다.”
이 경에는 비바시불이 도솔천에서 태어나 출가 성도해서 두 상수제자를 위시한 무수 대중을 거느리고 설법하는 것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 경은 비바시붓다의 일대기를 석가모니 붓다가 비구들에게 설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후에 여러 불전문학에서 이것을 석가모니 붓다의 일대기로도 각색된 것이다.
그리고 한역 장아함의 대본경에는 이 부분을 兩足尊生時 安行於七步 觀四方擧聲 當盡生死苦 當其初生時 無?等等與等 自觀生死本 此身最後邊으로 옮기고 있다.
다만 석가모니는 과거붓다들의 전생담을 이야기하면서 모든 붓다가 다 같다고 말하여 자기 자신도 그러했다고 은근히 암시한다. 이런 근거로 누군가 천상천하유아독존, 혹은 천상천하유아독승을 기록으로 남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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