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큐 스님(一休)이 출가한 지 얼마 안되어 스승에게 여쭈었다.
“사람은 왜 죽나요?”
스승은 어린 제자의 질문을 받고는 기특하다 여겨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사람이 죽는 건 자연의 섭리란다. 사람뿐 아니라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것은 다 죽는단다.”
"예외가 없습니까?"
"암만, 나면 죽고 보이면 사라지고 뭉치면 흩어지고 만나면 헤어지고.... 어김이 없지."
잇큐는 등뒤에 감추었던 깨진 찻잔을 꺼내 스승께 보여드렸다.
“스님, 스님의 찻잔도 죽을 때가 되었나 봅니다.”
- 이미지 찻잔, 이익태 화백이 오랜 동안 써온 찻잔으로 세월이 가득 묻어 있다.
- 잇큐 선사 초상화
* 여기서 잠깐.
잇큐는 0905코드.
그는 일본에서 매우 유명한 선사다.
선사들이 남긴 어록은 재미있다. 이것이 간화선을 널리 선전하는 도구가 되어 있다.
그러나 선문답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본질을 살짝 비켜가는 말장난인 경우가 대단히 많다.
도가 뭐냐 물으면 차나 한 잔 마시게 등 의문에 대한 확실한 답 대신 에둘러 말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붓다는 비유는 썼을지언정 어떤 질문이든지 정면으로 맞받아치는 지혜로 상대했다.
잇큐는 "불법이 어디 있느냐?"는 떠돌이 중의 질문을 받고 "내 가슴에 있다"고 말한다.
그러자 떠돌이 중이 단도를 들고 달려들자 그제야 "때가 되면 해마다 피는 산벚꽃, 벚꽃나무 쪼개 봐라, 벚꽃이 있는가"라고 대답한다.
말은 멋지다. 재치있다.
하지만 불법이 어디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다.
캐 들어가다 보면 만날 수 있는 표현이긴 하나 불법이 어디 있느냐는 질문은 온데간데 없고, 현란한 벚꽃 시만 남는다.
중국 조주 스님이 객승의 방문을 받는다.
“여기 와 본 적이 있는가?”
“와 보았습니다.”
“차 마시게.”
이번에는 같이 온 다른 수좌에게 묻는다.
“와 본 적이 없습니다”
“차 마시게”
그들이 가고 난 다음에 원주(院主)가 물었다.
“어째서 와 보았다 해도 차나 마시라 하고, 와 본 적이 없다고 해도 차나 마시라고 하십니까?”
“원주!” “예!” “자네도 차나 마시게!”
이게 그 유명한 "차나 마시게(喫茶去)"라는 화두다.
선방의 수좌들은 이런 에피소드를 잡고 번뇌와 잡념에 빠진다.
차나 한 잔 마시면 될 일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해서 선방 석 달 꿇어앉아 이런 망상에 사로잡힌다.
화두를 든다는 이런 망상이 붓다의 깨달음을 일으킨 아나파나 사티와 비파나사 세계를 뭉그러뜨리고, 붓다의 치열한 진실 추구 의지를 덮어버렸다.
정체불명의 간화선이 붓다의 참선법을 대체한 뒤로 승려들은 서로 묻고 따지는 대신 엉뚱한 소리나 주고받기 시작한다.
방장이니 종정이니 해봐야 무엇이 불법이냐는 질문에 야반삼경에 문고리 두드려라, 바다의 진흙소가 달을 물고 달아난다, 바위 앞 돌호랑이가 아기 안고 졸고 있다 등 말장난이나 한다.
다시 물으면 소리나 질러대고, 한번 더 물으면 주장자를 내리칠 뿐이다.
그러고는 죽어서 재 한 줌을 남길 뿐이다.
나는 1980년에 대표적인 선사 140명의 깨달음에 대해 자료조사를 하고 <허공잡는 긴 외침(깨달음의 노래, 해탈의 노래)>이란 책을 낸 바 있다.
간화선은 재치있는 말의 성찬이기는 하나 거기에는 진리가 담겨 있지는 않다.
시는 진실해야 한다. 따라서 선시도 진실을 꿰뚫는 처절함이 있어야 하고, 선문답도 장난에 그쳐서는 안된다.
시인을 자처하는 자는 천지에 가득 차 있으나 진짜 시인은 별로 없다.
선문답 궤변을 늘어 놓을 수 있는 선사는 많으나 깨달은 자는 없다.
'붓다의 사람들 > 선시(禪詩) 감상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상천하유아독존이란? (0) | 2016.03.21 |
---|---|
기도하라. 기도하기 전에 이미 이루어진다 (0) | 2015.12.28 |
붓다의 생애 중 마지막 하루 (0) | 2012.07.12 |
설잠 스님 김시습 - 나의 인생 (0) | 2012.02.25 |
성철 스님 법문 (0) | 2012.0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