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파란태양/*파란태양*

어머니와 할머니

어머니와 할머니

 

 

파란태양 | 2007/05/02 (수) 18:11

 

올해 예순아홉이신 장모를 모시고 산다.

말이 모시는 거지 실은 밥을 짓고, 김치를 담고, 빨래하고,

마당에 잡초를 뽑는 일까지 도맡아하므로 어머니가 자식들을 데리고 사시는 셈이다.

딸하고 손녀하고 번갈아 투정을 부려도 무조건 즐거워하고 재미있어 하신다.

나이 쉰에 남편을 떠나보낼 때까지 하루도 마음 편할 날 없이

모진 인생을 살아온 어머니한테는 그나마도 행복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행복도 겨웠는지 늙은 개를 안아 옮기다가 그만 삐끗한 것이

탈골이 되고 말았다. 어제까지는 어머니가 늙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할 만큼 텃밭도 잘 가꾸고,

큰 이불빨래도 척척 해냈다.

그러므로 그냥 어머니일 뿐이라고 밖에는 느끼지 못하고,

생신이 되어도 박수치며 노래하는 것으로 끝이었다.

 

아, 그러나 어머니는 역시 칠순을 눈앞에 둔 할머니였다.

어머니가 누우면서 거실 바닥의 먼지도 뽀얗게 잘 보였다.

개 밥그릇에 사료가 떨어지기 일쑤고 물그릇에 물때가 끼기 일쑤였다.

마당의 잡초는 왜 그렇게 쉬 자라고, 쉬임없이 나는지 알 수 없다.

 

- 아마 1999년에 쓴 글일 것이다. 지하철 '풍경소리'에 올라가 있다. 이 글의 원본은 다음글 '죽기 전에는 죽지 마세요'이다.

 

'파란태양 > *파란태양*'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딸 도란이에게   (0) 2008.12.18
내 고향 고랑부리  (0) 2008.12.18
우리집의 주인은 누구인가?   (0) 2008.12.18
석류나무 이야기   (0) 2008.12.18
죽기 전에는 죽지 마세요   (0) 2008.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