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태양 | 2007/05/02 (수) 18:34
우리집의 주인은 누구인가?
우리집은 넓은 대지에 양옥 한 채, 창고 한 동,
그리고 5백년생 은행나무 한 그루, 백년생 느티나무 한 그루,
한 오십년쯤 된 잣나무와 벚나무와 목련,
나머지는 20년생 이하의 단풍나무, 전나무, 불두화, 뽕나무, 개나리 등등이
저마다 자리를 잡고 있다.
물론 사람도 살지.
나하고 아내하고 딸이 있다.
그리고 도 자 돌림인 우리집 강아지 여덟 마리가 문밖을 내다보면서
엄중감시하고 있다.
개미는 아마 수만 마리가 살 것이다.
텃밭에 둥지를 튼 대형 개미굴만 세 군데가 있다.
또 왕벌집도 하나 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면 저희집 근처에는 얼씬거리지도 말라며 성을 낸다.
지렁이는 평당 열 마리씩만 잡아도 대략 5천 마리쯤 사는 셈인데,
실제는 그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그밖에 까치, 모기, 나방, 등에, 벼룩 따위까지 따지면 천문학적인 숫자가 될 것이다.
참, 텃밭도 있지.
거기 옥수수, 들깨, 상추, 쑥(즙을 내 먹으려고 기르는 것),
명아주(아는 어르신들 지팡이 만들어 드리려고 따로 기르는 것),
고추, 배추, 무, 씀바귀, 호박, 꽈리 등등이 있다.
요즘 햇빛이 좋다 보니 이놈들 자라는 게 여간 요란한 게 아니다.
그러다 보니 이 집의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겠다.
나보다 이 집에 오래 살아온 나무들인지,
대대로 새끼를 치며 살아가는 벌인지,
아니면 지렁이인지,
또는 왕국을 건설하고 살아가는 개미들인지 모르겠다.
하여튼 난 그들 앞에서 주인이라고 감히 말하지 못하겠다.
(1999년. 지하철의 '풍경소리'에 올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