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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파란태양*

레나의 눈물

파란태양 | 2007/05/27 (일) 09:46

 

내 몸에 흐르는 적혈구의 고향을 찾아서 2

- 레나의 눈물

 

 

지난 달 중순 러시아 바이칼호 서부 지방을 답사했다. 친구가 말하기를 거기에 가면 신시(神市) 유적지가 있다고 했다. 거대한 신석기․청동기․철기 유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곳에서는 우리 민족의 원시 신앙 대상으로 알려진 금인(金人)이라는 신상(神像)도 발굴되고, 모계 사회의 증거인 여신상도 다수 출토되었다.

그래도 몽골의 스텝을 몇 번 다녀온 나로서 그보다 훨씬 위도가 높은 시베리아에서 과연 우리 민족의 연원을 찾을 수 있을까 의문이 일었다.

 

어쨌거나 주몽을 쓰기 위해(아직도 다 쓰지 못했다. 주몽 드라마가 나오고 각종 서적이 나왔지만, 나는 이것들이 진실의 5%도 담지 못했다고 본다.) 흑룡강 유역과 동몽골 지역을 몇 차례 답사해온 나로서는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없었다. 몽골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기 전 울란바토르에서 하룻밤을 묵었는데 시베리아에 가면 추울 것같아 내복을 챙겨입었다. 몽골의 밤도 추운데 시베리아는 얼마나 더 추울까 머릴 굴린 것이다. 몽골 초원은 그때 풀이 자라지도 못한 채 노릇노릇하고 메말랐다. 혹한을 가까스로 벗어난 초봄의 삭막지경이었다.

 

이튿날 이르크추크 공항에 내렸을 때 난 어찌나 후회를 했는지 모른다. 금발머리 아가씨들이 하얀 다리를 드러낸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돌아다니고 있질 않은가. 가로수마다 이파리가 파릇파릇 돋아 있고, 봄향기가 싱그러웠다. 서울보다 한 며칠 늦을까 그리 크게 늦은 날씨가 아니었다. 땀이 삐질삐질 흐르는 가운데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차린 다음 뭐가 잘못되었는지 계산해 보았다.

 

답은 있었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는 해발고도 1300미터이고, 이르크추크는 평지나 다름없는 땅이었던 것이다. 고도 100미터당 온도가 조금씩(약 0.6도) 내려간다는 것은 상식인데도, 난 그걸 잠시 잊었다. 더욱 놀란 것은 훨씬 남쪽에 있는 몽골 초원에서는 농사를 짓기 어렵고, 우리 민족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돼지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는데, 그곳 시베리아는 아니었다. 오곡(五穀)이 잘 자라고, 돼지를 놓아기르는 그 땅, 소나무숲에 붉은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왜 그런 얘기를 해준 사람이 없었는지 그곳을 먼저 다녀온 분들이 원망스러웠다.

 

나는 수천년만에 고향에 돌아온 내 유전자가 흥분하는 걸 느꼈다. 너무 먼 땅이어서, 그래서 동토(凍土)라고 지레짐작해온 그곳 우리 민족의 발원지가 우리땅하고 그토록 닮아 있을 줄은 미처 깨닫지 못했다.

곳곳에서 안면도에서나 볼 수 있던 적송(赤松)이 미끈하게 자라 오르고,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눈에 쉽게 띄었다.

 

레나강 상류를 지나가면서 우릴 안내한 고고학자가 말했다. 이곳이 고아시아족의 발상지이자 당신들의 고향이라고. 그가 안내하는대로 3킬로미터에 이르는 슈쉬키노 석벽을 보니, 거기 수백년 전, 혹은 수천년 전, 혹은 수만년 전에 그려 놓은 암각화가 수없이 널려 있었다. 군무(群舞)를 추는 사람들, 사냥하는 사람들, 하늘에 제사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곳이 한때는 아열대 지방이었다는 징표가 수두룩했다. 그 넓은 시베리아가 아열대 기후였다면 아마도 그 지역은 인류가 살기에 가장 좋은 땅이었을 것이다. 바이칼이라는 대호수가 있고, 주변으로 젖줄처럼 흐르는 강이 수없이 많으니 말이다.

 

나는 석벽 아래 레나강변에 드러누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등산복 차림을 한 러시아인들과 우리 동료들이 눈에 보여가지고는 그 옛날 우리 조상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눈을 감아 보았다. 고아시아인들의 함성이며 말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물살이 빠른 레나강은 깊은 흐느낌으로 그곳을 지나갔다. 겨울철 경상도나 전라도 어느 저수지에서 보았음직한 철새들이 그곳에서 울음을 울어주었다.

 

“리, 풀밭에 누우면 병 나요!”

러시아인 일행 한 명이 기겁하면서 나를 일으켜 세웠다. 도로 현실, 그곳은 러시아의 영토였다. 비자 급행료를 25만원이나 주고 들어온 남의 나라, 우리하고는 피부도 다르고 머리칼 색깔도 다른 저 슬라브 민족들이 왜 여기에 있는 것일까. 내가 주인인가, 저들이 주인인가. 암각화가 없는 곳에는 온통 하얀 페인트로 덕지덕지 칠해져 있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지만 뭐 나축 15킬로미터, 공산주의 만세, 스탈린 동지 어쩌구 하는 글일 것이다.

 

나는 레나강변에 앉아 오랜 세월 물살에 갈렸을 조약돌을 주웠다. 어찌나 고운지 목걸이를 하거나 우리 딸 공기놀잇감으로도 썩 좋을 듯했다. 그러면서 머릿속을 정리해 보았다.

 

여기서 바이칼 남쪽, 동쪽으로 돌아가면서 유목과 농경이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는 땅이다. 그리고 그 벨트는 대흥안령 산맥을 돌아 연해주와 흑룡강, 송화강 유역으로 흐른다. 동몽골이나 중국의 최북단 흑룡강성 등지는 주몽의 전설이 어린 곳이다. 거기, 주몽이 고구려(위대한 구려 또는 코리)를 세우기 전 코리족 6부가 모여 살았다. 해모수가 더 북쪽에서 내려왔다면 그곳은 아마 이곳 바이칼 연안이었을 것이다.

 

난 우리 사학자들이 압록강 유역에 붙들어 매둔 고구려의 시원, 주몽의 무대를 훨씬 더 북쪽에서 찾아내는 중이다. 전설과 신화, 고고학적인 증거를 찾아 다니다 보니 우리 민족의 웅대하고 끈질긴 기질이 산간으로 비좁은 이 한반도에서 생긴 것은 결코 아니라는 걸 믿게 되었다. 그런 생각으로 레나강을 바라보니 레나가 참말 흐느끼는 듯했다. 숨 차듯 흐르는 그 많은 물결이 역사의 진실을 토해내는 것만 같았다.

(레나강 상류에서 난 난생 처음으로 백야를 보았다. 해가 열한시 반에 산마루에 걸리고 열두 시가 넘도록 저녁나절처럼 희뿌옇다가 두세 시경에 해가 다시 떠오른다고 했다.)


<우리 민족의 원류를 생각한다>

<하늘 열린 날> 개천절을 생각한다>


- 바이칼호에서 발원한 레나강은 시베리아를 통과해 북극해로 빠진다. 

약 4470킬로미터에 이르는 긴 강이다. 레나강은 야큐트어로 큰 강이라는 뜻.

- 레나강 상류. 러시아 과학자들은 이곳이 고아시아인의 발상지라고 한다.

즉 우리 민족의 발원지라는 뜻이다.

- 레나강의 하류는 북극해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