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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힘/애견일기4 - 별군

장애견을 맞으러 간다

유기견 카페에 경추(목뼈)를 다친 5개월령 말티즈 남아가 구조돼 치료를 받던 중 내게 임시보호 요청이 들어왔다. 딸과 상의한 끝에 일단 맡기로 했다. 하반신마비 증세가 있기 때문에 이런 장애견을 돌본 경험이 많은 내가 맡는 게 아무래도 안심이 될 것같아서다.

하반신불수 장애견 때문에 거의 10여년 고생한 뒤 다시는 개를 기르지 말아야지 결심했는데, 의지할 데 없는 작은 생명이 호소해오니 일단 내 품에 안아야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눈을 잃은 장애견이 카페에 구조되어 누가 돌보나 지켜보았는데, 안되면 나라도 길러야지 했는데 그 아이는 다른 분이 맡기로 해서 다행이다.
내가 기른 유기견은 16세에 간 도신(식용으로 잡혀가던 3세 무렵 내가 직접 구조하였다. 소형견), 8개월령에 구조되어 두 다리 슬개골 수술 받아 힘껏 뛰지 못했던 리키, 5세 때 구조되었지만 하반신 불수로 평생 대소변 받아낸 바니, 친구가 서울로 이사가며 놓고간 심장장애견 다래, 3살 때 주인이 미국 이민가면서 버린 도조, 이리저리 떠돌다 내게 온 도스(이놈은 암캐 발정 냄새 맡고 집을 나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좋은 품종이라 누가 데려간 듯하다), 시골집에서 식용견으로 팔려나가는 아이를 구조해온 희동이 등이다.

개를 많이 길러보니 우리집 개들 중에도 성골과 진골이 있다는 걸 알았다. 이사를 하든, 주인이 어딜 가든, 외출을 하든 어려서부터 내가 입양하여 기른 아이들은 절대 동요하지 않고 도리어 제 관심사에 몰입해 주인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당연히 외출했다 돌아오는 것으로 믿고 있으니 걱정할 게 없는 것이다. 큰소리가 나도 별 관심이 업다. 어차피 사랑받는 줄 다 알기 때문에 굳이 아양떨지도 않는다.
반면 유기견 출신들은 분위기가 조금만 이상해도 내게 딱 붙어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부부싸움이 일어나도 바들바들 떤다. 이런 아이들은 특별히 쓰다듬고 말린고기를 주어 달래고, 설명해줘야만 한다. 유기견들은 입양 후 2-3년이 되도록 늘 불안한 표정이다.

내일 이 가녀린 생명을 맞으러 나간다.
모든 생명은 존엄하다.
내가 비판하고 미워하는 대상들조차 존엄하다.



- 현재 임보자가 찍은 아이 사진. 분양을 유도하기 위해 최대한 잘 찍었을 텐데, 딱 봐도 유기견이다. 눈치를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