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전남 강진으로 내려간 손학규 씨가 2년 2개월만에 정치 재개를 선언했다.
- 이 글은 이를 둘러싼 우리말 어휘를 다루는 것이지 그의 정치관이나 앞날을 예측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정치재개를 선언하면서 던진 <제7공화국>론이 매우 산뜻하게 여겨지는데 이런 정치 주제로는 따로 쓰겠다.
관련 어휘를 다소 정밀하게 들여다보는 건 이런 기자들이 나중에 어떤 정치인을 매장시킬 때에도 없는 말을 지어내어 조져대기 때문이다. 언론, 믿고 볼 일이 아니다.
- 정계 은퇴 : 그는 전남 강진으로 내려가면서 정계은퇴란 어휘를 썼다. 하지만 그는 더불어민주당 당적을 갖고 있었다. 버리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정치 재개를 선언한 10월 20일에 탈당계를 냈다고 한다. 따라서 정계 은퇴했다던 그의 말은 해석이 매우 복잡해진다. 물론 당적을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 정치를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지만, '은퇴'라는 말이 순수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또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방 안에는 인쇄된 기자회견문과 안철수당, 이해찬 등 30여 명의 이름을 자필로 적은 A4 용지도 있었다. 손 전 고문은 그동안 아침에는 주로 독서나 만덕산 산행을 했고, 저녁에는 토담집에 찾아온 손님을 만났다."고 돼 있다. 정치 행위가 아니라고 볼 수 없다.
이런 점에서 한국일보 허경주 기자가 "정치활동을 정리하는 저술 작업을 하고 있다"거나 "손 고문이 외부인을 전혀 만나지 않고 있으며", "흙집은 말이 집이지 뱀이 우글거리는 등 자연 상태나 다름없었다." 등 표현은 사실이 아님이 확인되었다. 또 연합뉴스 조근영 기자의 기사 말미에 "일각에서 상황변화에 따라 정계복귀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데 대해서도, 말이 안되는 소리, 손학규를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라고 펄쩍 뛰었다고 나오는데, 손학규의 지인들이 정작 손학규를 모르는 사람들이었다는 의미다.
- 토굴인가 토담집인가 : 그가 머무는 강진 집을 가리켜 본인은 토굴이라고 말했고, 언론도 이를 따라서 표기했다.
토굴은 승려 등 수행자들이 혼자 살면서 수행하는 비밀 공간을 가리킨다. 옛날에는 정말로 굴에 잠자리를 깔고 온종일 참선만 하는 등 수행자의 상징으로 쓰이던 말이다.
따라서 그가 머물던 집은 일단 토굴은 아니다. 일부 폼 잡는 승려들 중에 돈이 좀 있는 사람들은 부처님 재산을 빼돌려 아파트를 사놓고도 그걸 토굴이라고 부르는 땡추들이 있기는 하다. 부처님 돈을 횡령하는 것도 문제지만 아파트나 양옥집을 가리켜 토굴이라고 할 때는 정말 토가 나온다.
그런데 손학규 씨가 머물던 집을 놓고 토굴이라고 쓰기 부적절하다고 본 일부 기자(중앙일보 김호)들은 이 집을 토담집, 흙집으로 부르는데, 일단 토담집은 아니다. 토담이란 흙으로 쌓은 담이 있는 집인데 이 집에는 토담이 보이지 않는다. 또 흙집은, 일단 벽면에 흙을 바른 건 맞는 것같은데 내부 벽체까지 흙으로 돼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흙집으로 보는 건 겉으로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연합뉴스 조근영 기자는 토굴이란 어휘를 쓰면서 ( ) 안에 흙으로 지은 집이라는 설명을 달았는데, 전혀 아니다. 토굴이 뭔지 몰라서 그런 것이다.
기타 움막, 민가 등으로 이 집을 가리킬 수 있는데 이 집은 원래 승려들이 수행하던 '토굴' 개념이고, 백련사 소유인 것으로 보아(여러 가지 기사 내용으로 볼 때 백련사 소유 재산으로 보인다.) 토굴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그나마 낫다고 본다. 하지만 여기에도 걸리는 게 있다. 그가 하루 한 끼 식사를 하는데, "매일 점심을 백련사에서 공양한다"는 기사가 여러 개 보이는데, 불가에서 말하는 토굴 생활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토굴이라면 스스로 갇혀 그 안에서 밥을 끓여먹어야 한다.
- 실제 토굴
- 진돗개 : 손학규 씨는 이 집에서 진돗개 두 마리를 길렀다고 한다. 기사 댓글에는 이미 손 씨가 진돗개를 버리고 갔다며 비난하는 댓글이 붙는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관사에서 세금으로 기르던 개를 나중에 동물원에 보냈다는 걸 가리키며 싸잡아 비난한다. 어떡할지 지켜보자. 기자들이 조금 더 세심했더라면 진돗개 주인이 누구인지, 이후 누가 기를지 알아보았으면 좋으련만 그들도 이처럼 무감각하다보니 손학규 씨가 일단 욕부터 먹고본다.
- 20일 불공 : 뉴스원 황희규 기자는 백련사 법당 계단을 내려오는 손학규 씨 사진을 걸어넣고 설명글에 "백련사 인근 토담길에서 하산하고 있다."고 적었다. 거짓말이다. 백련사 법당 계단을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또 이 기사에, 7시 50분께 백련사에서 불공을 드렸다고 하는데, 서울로 향한 시각은 8시께란다. 그러면 불공 드린 시간은 겨우 10분인데, 사전적 의미의 佛供은 없었던 것같다. 이럴 때는 그냥 참배 혹은 예배하고 나왔다면 된다. 뉴스1 기자는 참배라고 표현했다.
- 백련사와 백련사에서 내려다본 강진만. 정약용이 18년간 내려다본 곳, 손학규가 2년 2개월간 내려다 본 곳이다. 저 바다에 전라우수영이 있었고, 이곳에 전라우수사 김억추 제독이 버티고 있어 이순신 삼도수군통제사의 든든한 우군이 되었다.
- 다산 정약용과 목민심서 이미지 : 그는 강진아트홀에서 <강진 다산 강좌>에서 강연을 하는 등 자신의 처지와 정약용의 처지를 자주 비유했다. 그래서 정약용이 강진에 간 내용과 손학규가 강진에 간 내용이 닮아야 하고, 정약용이 강진에서 무엇을 했는지와 손학규가 무엇을 했는지가 닮아야 하며, 이후 정약용이 무엇을 했는지와 손학규가 무엇을 할 것인지가 닮아야 한다.
1. 우선 정약용은 자신의 권력 배경이던 정조 이산이 느닷없이 죽은 뒤 어린 세자 순조 이공이 왕위에 오르지만, 김조순의 세도정치가 시작되면서 정적들에 의해 사형 위기까지 갔다가 18년 강제 유배형에 처해진다. 손학규는 당 대표까지 했지만 그가 끌어들인 친노세력에 의해 팽당하고, 나중에 수원에서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떨어지자 불가항력을 느끼고 스스로 강진으로 내려갔다. 즉 정약용을 유배지로 몬 건 노론 및 안동김씨 세도정치였고, 손학규를 강진으로 내몬 건 어쩌면 그를 배신한 친노세력인지 모른다. 본인만이 알 것이다.
2. 정약용은 18년간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 무수한 저술을 통해 나라를 어떻게 개혁해야 하는지 연구했다. 그의 목민심서는 이후 불후의 저서가 되기는 했느나 마치 유성룡의 징비록처럼 당시에는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금서처럼 돼버려 정작 그가 죽은 지 얼마 안되어 조선은 망한다. 손학규는 정약용의 18년에 비하면 매우 짧지만 2년 2개월 동안 책 한 권을 쓰고 제7공화국 개념을 만들어냈다.
정약용의 삶에서 손학규에게 약이 된 것은 아마도 그의 유언이 아니었나 싶다. 말년을 지독하게 보낸 정약용이건만 막상 권력 의지를 보인 한 마디를 유언으로 남겼는데 "한양을 벗어나는 순간 기회는 사라지니 무슨 일이 있어도 한양에서 버티라."는 것이었다. 손학규의 정치 재개 선언과 무관하다고 볼 수 없는 말이다.
- 강진에서 나온 저서. 정약용이 쓴 46권 16책의 목민심서, 그리고 손학규의 단행본 강진일기.
3. 정약용은 1818년 유배가 풀려 귀가한 뒤 1836년에 죽는데, 딱 18년이다. 유배 18년, 자유 18년, 그러나 자유 18년간 정약용은 정계복귀를 하지 못했고, 할 처지도 아니고, 할 상황도 아니었다. 하늘을 떠받치는 재주가 있어도 시운을 만나지 못하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게 인간의 일이다. 손학규는 강진 2년 2개월간 정약용을 만나 배웠는데, 정계 복귀 이후는 누굴 배울지 모르겠다. 정약용의 무기력한 노후를 따라가서는 안된다. 정약용이 유배가 풀려 돌아온 나이는 56세, "다산 정약용의 체취를 느끼기 위해 강진에 머물렀다(뉴스1 기사 중)"는 손학규의 현재 나이는 70세(만 68세), 복귀 때 나이만 보면 손학규가 정약용보다 약 12세 많은데, 그 시절 나이와 요즘의 나이를 단순비교할 수 없고, 생각이나 건강 정도 등을 따져보면 서로 비슷한 나이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손학규란 정치 흐름이 어디를 향해 어떻게 물결치며 흘러갈지 지켜보자.
- 정약용. 손학규의 롤모델이 되기에는, 유배에서 풀려난 뒤에 그가 한 일이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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