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조를 잃어버리다
2007/08/26 (일) 21:12
조카 돌이라 하여 도조와 함께 우리 가족이 대전에 갔다. 식당에 가느라 도조는 동생 집마당에 내려놓았다. 물을 준비해주고 마당에서 놀라고 그냥 두고나왔다.
점심을 먹고 돌아왔는데, 웬걸 도조가 보이지 않았다. 집안을 뒤져보니 개구멍이 있었다. 그리로 나간 게 틀림없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그밖은 10차선 대로였다.
나는 밖으로 나가 이 대로를 샅샅이 돌아보았다. 시신이 있으면 시신이라도 거두리라 작정하고 눈을 부릅뜨고 살폈다. 다행히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졸지에 죄인이 된 내 동생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탐문했다. 그 사이 나는 A4용지에 사연을 적어 보았는데, 그래가지고는 안될 것같았다. 요크셔테리어란 품종을 동네사람들이 알 리가 없으니 사진을 프린트해 전봇대마다 붙이는 게 나을 것같았다.
동생 내외, 조카들까지 나서서 도조를 찾아보게 하고 나는 급히 집으로 달렸다. 대전에서 두 시간, 집에서 도조 사진을 찾아낸 나는 얼른 이메일로 조카에게 보내 전단을 만들어 붙이라고 했다.
그러고서 다시 대전으로 달렸다. 이날 밤새 우리 가족과 동생네, 조카들까지 나서서 반경 4킬로미터 이내 전봇대에는 모두 전단을 붙였다.
차에 치어 죽기라도 했으면 어쩌나, 이 깜깜한 밤에 얼마나 놀랄까.
그렇게 뜬눈으로 대전에서 밤을 보냈다.
아침이 되자 어디선가 제보전화가 걸려왔는데, 전날 저녁 8시쯤 어디를 지나갔다고 했다. 그 시각이면 우리도 근처에서 열심히 찾을 때였다. 온 가족이 동원되어 근처를 다시 찾아보았지만 허사였다.
9시쯤 또 제보전화가 걸려왔다. 전봇대에 붙은 전단을 보았는데 비슷한 개가 자기네 사무실 추녀에 누워 있다는 것이었다. 즉각 달렸다. 식구들도 달렸다.
“도조야!”
확인되지도 않았는데 다짜고짜 도조 이름을 부르며 우리는 제보자가 말한 곳에 뛰어들었다.
“여기요. 얘 아닌가요?”
그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도조와 비슷한 개가 기력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내가 얼른 달려가 일으켜 보니 도조였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기력이 하나도 없었다. 실눈을 뜨고 나를 확인하고는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그냥 눈을 감았다.
“동물병원 어디냐! 어서 가자!”
동생이 앞장서서 달렸다. 나는 도조를 안고 뛰었다.
동물병원에 가니 수의사는 육안으로 진찰하더니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대전같은 대도시에서도 시설이 그 모양이었다. 그는 응급조치만 해주고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나는 당장 분당 해마루병원(소동물2차의료기관)을 향해 차를 몰았다. 그러면서 그곳에 미리 전화를 걸었다. 응급환자가 있다, 상태는 이러저러하다, 준비해 다오, 다급히 예약을 해놓았다.
차를 달려 기흥쯤에 이르렀을 때였다. 도조가 목을 떨어뜨렸다. 개가 목을 떨어뜨리는 걸 여러 번 봐온 나는 가슴을 문지르고 얼굴을 흔들었다.
“도조야, 여기서 죽으면 안돼! 조금만 참아!”
한참 뒤 도조가 다시 실눈을 뜨고 깨어났다.
가까스로 두 시간을 달려 해마루병원에 가자마자 진찰이 시작되었다. 의료시설이 좋다보니 결과는 곧 나왔다. 자동차 바퀴에 갈렸거나 오토바이 바퀴에 갈린 듯하다, 따라서 복강이 찢어졌으니 지금 당장 수술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기력이 자꾸 쇠해져서 시간이 더 지나면 수술을 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거였다. 얼른 수술동의서에 서명했다.
그로부터 두 시간동안 도조는 수술을 받았다. 의사는 집으로 돌아가 연락을 기다리라고 했다.
“어차피 수술이 끝나고 의식을 회복하려면 시간이 더 걸립니다. 수술 끝나는대로 전화를 드리지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무사히 수술이 끝났다는 전화가 두 시간 후 걸려왔고, 네 시간 후에는 의식이 깨어났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이튿날 면회를 갔을 때 도조는 여전히 실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수술 3일째가 돼서야 도조는 슬픔이 북받쳐오르는지 "와-왕!" 하고 소리를 질러댔다. 그제야 도조가 살아난 걸 실감했다.
도조는 꼭 16일간 입원했다. 그 사이 매일매일 찾아가 게이지 안으로 손가락을 밀어넣으면, 도조는 냄새를 맡고 핥았다.
2003년 9월에 이런 대사고가 있었는데, 그런데도 도조는 2007년 오늘 현재 18세의 나이로 굳건히 살아 있다. 눈이 비록 백내장이 끼어 잘 안보이고, 귀가 안들리지만 후각만은 정상이어서 냄새로 주인을 알아본다. 수술 후유증으로 뒷다리가 체조 선수들처럼 양쪽으로 자꾸만 벌어져 미끄러운 장판 위에서는 잘 걷지 못한다. 그래서 뒷다리에는 신을 신겨야 한다.
짖는 걸 잊은 지는 일년쯤 됐다. 지금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짖지 않는다. 또 작년까지만 해도 제 머리에 손을 갖다 대면 일단 으르릉거리며 겁을 주곤 했는데, 이젠 그것도 안한다. 그냥 90 노인들마냥 오줌을 조금씩 지리고, 밤중에는 화장실까지 가는 게 귀찮은지 그냥 방에다 오줌을 싸버리기도 한다.
지난 6월말에 감기에 걸렸는데, 이걸 치료하는데 거의 한 달이나 걸려 가까스로 치료했다. 저항력, 면역력이 자꾸만 떨어지는 모양이다.
시니어사료에 고단백식을 하고, 영양제를 빠뜨리지 않고 먹이는 중이다. 도조가 얼마나 더 내 곁에 머물러 줄지 모른다. 어린 것이 머지않아 깜깜한 세상으로 가야한다니, 그걸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열여덟 살이나 돼가지고 말도 못하고, 눈도 보질 못하고, 귀도 듣지 못하다니, 가끔 이런 엉뚱한 상상을 하면서 도조가 죽지는 않았나 하고 발끝으로 건드려 볼 때가 많다.
도조는 늘 내 컴퓨터 책상 아래, 내 발끝에 누워 있다. 전자파가 혹 나쁜 영향을 미칠까봐 본체를 전파차단지로 도배를 했다. 내가 움직이면 저도 일어나 따라나선다. 외국에 나가지 않는 한 국내에서는 어디를 가든 도조는 늘 같이 다닌다. 잠도 늘 같이 잔다. 스무살까지 살아만 준다고 해도 더는 욕심을 내지 않을 것같다. 지금 생각으로는.
- 사고나기 몇 달 전에 찍은 비교적 젊은 사진.
- 애지중지하지만 실제로는 보지도 듣지도 못한다.(현재. 실수로 카메라와 눈을 맞췄다)
- 사고 이후 뒷다리가 자꾸 벌어져 잘 걷지 못한다. 마찰력있는 신발을 신겨줘야 비로소 걷는다.
등에 보이는 반점은 노인들 얼굴에 피는 저승꽃과 같은 것으로 도조는 현재 인간 나이 90세에서 100세쯤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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