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니의 귀환
2006년 초여름, 알고지내는 분이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와 내 친구 신(‘파란태양’ 어딘가에 나오는, 정신분열증 환자이자 내 친구)이 기르던 강아지를 데려오는 중이라고 했다.
“아니, 걔는 왜요?”
사나운 개 도반이가 아빠고 착한 다래가 엄마다. 하지만 애비를 닮아 얘도 한 성질한다.
“너무 더럽고 불쌍해서 지금 병원으로 데려가는 중이야. 우리 개 병원 가는 길에 같이 데려가는 거지.”
하긴 더럽고 불쌍할 것이다. 작년에도 내가 참지 못하고 직접 그애를 데려다가 미용을 해서 보내준 적이 있다. 말티즈는 미용을 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시커먼 걸레뭉치같다. 차마 볼 수가 없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이 2만5천원하는 미용비를 낼 리가 없다. 더구나 내 친구 신은 플라스틱 반지를 들고 시내에 가 돈하고 바꾸려 하는 환자다. 택시비 1만5천원이나 내고 가서. 그러니 그 친구가 그 애를 잘 길러줄 리가 없다.
원래 그 친구 부인이 책임지고 애지중지 기를 테니 꼭 달라고 하여 준 건데, 이 부인 역시 글을 못읽을 정도로 지력이 달리다보니 그게 잘 안됐다. 당시에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걸 보고 저만하면 못기르겠나 싶어 분양했는데 결과적으로 잘못되었다. 주먹만한 강아지를 24시간 묶어놓고 잔밥을 주는데, 하도 불쌍해서 보기가 겁이 날 지경이었다. 그 부인이 볼 때 그렇게 기르는 게 애지중지였던 것이다. 아, 이렇게 언어 감각이 서로 다르다니.
전화를 받고 병원에 가보니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거지 개가 한 마리 와 있었다. 그것도 주먹만한 것이 어찌나 사나운지 간호사들이 손도 대지 못하게 했다. 나이는 어느덧 5세.
“이 선생, 그냥 얘 돌려달라고 해서 길러. 한 동네 살자니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어.”
하긴 그렇다. 눈에 안띄면 모르겠는데 보일 때마다 괴롭다.
내 생각도 그러하여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이 친구는 제 엄마한테 물어보고 대답한단다. 나이 쉰이 다 된 놈이 엄마는 무슨 엄마냐, 네놈이 결정하라고 다그쳤지만 소용없었다.
한참 뒤에 “엄마한테 물어보니 그간 먹인 사료값 5만원을 내면 주마고 한다. 얘가 잘 짖어서 집 지키는데는 그만이래. 어쩔래?” 하는 전화가 왔다.
“아니, 이런 애를 왜 기르는데?”
“엄마가 그러는데 사람 오면 잘 짖는대.”
별 소릴 다한다. 24시간 목사리를 해 좁은 개장에 가둬놓으니 애가 짖는 거지 풀어놓아도 짖을까. 아무리 얌전한 개도 늘 묶어 놓으면 사나워지고 시끄러워지는 법이다.
“알았어, 이 자식아. 돈 보낼 테니 그런 줄 알아.”
“그 목사리는 좀 보낼래?”
목사리를 보니 쇠줄인데 비를 맞아 그런지 잔뜩 녹이 슬어 있고, 목끈은 다 낡아서 너덜거렸다.
“더러워 못쓰겠는데 그건 어디 쓰려고?”
또 입장차이다. 다른 개 기르려면 필요하단다. 어느 불쌍한 개가 또 그 집으로 갈지 걱정이다.
결국 그 지저분한 목사리는 아무리 봐도 도저히 쓸 것같지 않아 “다음에 챙겨보내마. 오늘은 돈만 보낸다.” 그래놓고 쓰레기통에 처넣었다.
병원에서는 그애를 접수하는데 이름이 없어 의사가 ‘철갑’이라고 등록했다. 친구 부인은 더러 예삐라고 부르더라만 어딜 봐서 예삐스러운지 모르겠다.
털이 떡지어 마치 철갑을 두른 것같다고 혀를 내두르며 지은 이름이다. 나도 의사가 철갑이라고 등록하는 걸 내버려두었다. 어차피 새로 이름을 지어야 하니 나중에 생각할 문제다.
의사는 하는 수없이 이 ‘철갑’에게 마취제를 놓고 털을 밀었다.
몇 시간만에 미용이 끝나고, 심장사상충 검사를 했는데 양성으로 나와 그 주사까지 맞았다. 그러고 보니 비용이 꽤 나갔다. 세상에, 이렇게 잘못 분양하면 리콜 비용이 만만치 않다.
‘철갑’을 데려오면서 이름을 고쳐 지었다.
지 애비 도반이가 끝내 성질을 못고치고 죽었으니 애비 이름을 한 자 따서 ‘반이’라고 지었다. 다만 발음상 ‘바니’로 부르기로 했다.
바니는 집에 와서도 성질깨나 부렸다. 웬만하면 콧잔등이 치켜올라가면서 으르렁거렸다. 제 엄마 다래를 보고도 성질부리고, 제 할머니 도리를 보고도 성질을 부렸다. 주인인 나를 보고도 성질을 부렸다.
개를 기를 때는 자주 때리면 안된다. 또 잘못한 지 시간이 오래 지나서 때려도 안된다. 즉시 때리든가, 아니면 쓰다듬으면서 타일러야 한다. 바니 애비를 기르면서 터득한 건데, 성질 더러운 놈은 아무리 때려도 소용이 없다. 차라리 무조건 사랑해주는 게 좋다. 손등을 물어도 그 물린 손을 내밀면 놈이 알아서 긴다. 혀를 갖다대고 핥으면서 미안하다고 꼬리를 친다. 이게 교육상 훨씬 낫다.
바니 역시 무조건 감쌌다. 짖어도 잘했다, 으르렁거려도 잘했다, 먹을 것도 저 먼저 주었다. 나이 많은 노견들을 제치고 새파랗게 젊은 바니를 먼저 챙겼다.
오늘날 우리 바니는 나없이는 못산다고 하소연한다. 어딜 가나 내가 안보이면 울고 보챈다. 물지도 않는다. 처음 몇 번은 마취제를 놓고 미용을 했는데 요즘은 그냥 한다. 주사도 잘 맞는다.
하지만 사람 사는 데도 시간이 흐르다 보면 일이 많아지듯이 우리 바니에게도 그간 일이 많이 생겼다. 장을 갈라 그 얘기는 다음에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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