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 가던 날
도리는 잉글리쉬 코카스파니엘종으로 라이벌이자 단짝 친구인 도신이가 죽은 뒤로 급격히 기력을 잃어갔다. 하루의 대부분을 잠으로 보냈다. 겨울에는 도조 혼자 있는 아파트로 데려가곤 했는데, 도리는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하나도 말썽을 피우는 법이 없었다. 앉으라면 앉아 있고, 누우라면 누워 있었다. 노쇠한 게 역력했다.
도리가 열일곱 살이 되던 해에 서재를 옮겼는데 여기서도 도리는 하루 종일 잠만 잤다.
결국 4월 어느 날, 도리는 갔다. 병원에서 갖은 처방을 받아 하루하루 연명하던 중이었는데 그날 밤 도리의 비명이 들려 뛰어나가 보니 벌써 눈빛이 흐려지는 중이었다. 아마도 저녁 때 준 고기 한 점이 잘못된 모양이었다. 응급조치를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워낙 기력이 없는 상태라 도리는 그냥 몸을 늘어뜨렸다.
도리를 꼭 안았다. 한참동안 그렇게 앉아 있었다.
“무서워 하지 마라, 도리야. 하늘 가거든 도담이도 보고, 도롱이도 보고, 희동이, 도반이도 만나라. 도란이 만나거든 아빠가 잘 지내란다고 전해라. 걱정하지 마. 이제 이 몸 벗고 너도 사람이 되어야 한다.”
도리가 간 시각은 열 시 무렵이다. 우리 아이들을 밤에 보내지 않으려 애를 쓰지만 이렇게 어쩔 수 없는 때가 생긴다.
하는 수없이 거실에 요를 폈다. 그리고 옆에 두꺼운 수건을 깔고 도리를 뉘었다. 불은 끄지 않고 나는 잠을 잤다.
도리는 친구들이 잠들어 있는 용수마을로 가지 않았다. 일부러 서재 뒷산에 묻었다. 자주 가보기 위해서다. 도리 무덤이 있는 곳은 취나물이 많이 나는 기슭이라 봄이 되면 더 자주 찾는다.
- 도리(오른쪽) 열네살 때 사진. 열일곱살이면 적은 나이는 아니다. 제왕절개 1회, 자궁적출술 1회, 음독사고 1회, 심장사상충 치료 1회를 받았다. 한 세상 행복하게 살다 간 아이라서 가장 후회가 적다.
왼쪽은 도리의 평생 라이벌 도신이다. 털 많은 스피츠 믹스견인데, 여름에는 건강을 위해 털을 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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