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신이 가던 날
도신이는 갈 때까지 3년 내내 심장판막증 완화를 기대하는 약물을 먹었다. 밥에 섞어 줬는데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도 거르지 않고 꼭 먹였다.
도신이는 열세 살 때부터 자주 기절하는 증세를 보였다. 전력 질주를 한 뒤 이따금 눈이 돌아가고 호흡을 잠시 멈추곤 했는데 그때마다 가슴을 문질러 주면 곧 깨어났다.
그제야 병원에 가보니 심장판막증이라고 했다. 심장이 펌프질을 할 때 역류하는 피가 있다는 것이다.
세 살 때 식용견으로 끌려가다 기적적으로 우리 집에 들어온 뒤 한 번도 아픈 적이 없었는데 그만 이런 병에 걸렸다. 사람은 심장판막증에 걸려도 수술이 가능한데 개의 경우 미국에서는 더러 하는 모양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수술 경험이 없어 시도 자체가 불가능했다.
도신이는 최후의 사흘간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증세가 심해지면서부터 나는 도신이를 집으로 데려와 함께 자고 또 서재로 출근하는 생활을 계속했다. 그러다가 끝내 집에서만 지냈고, 급기야 사흘간 선 채로 지냈다. 한밤중에 잠이 너무 오면 잠시 턱을 내리고 자려 했지만 몇 초가 지나지 않아 금세 목을 곧추 세우고 일어났다. 허파에 물이 차기 때문에 호흡이 불편한 것이다.
그러면 아침을 기다렸다가 병원에 가서 허파에 찬 물을 주사기로 뽑아냈다. 그래도 견디기 힘들었다. 나도 덩달아 잠을 자지 않고 도신이가 힘들어 하면 품에 안고 아파트 마당을 한없이 거닐었다. 목만 위로 세워주고 안고 다니면 호흡은 거칠어도 그다지 힘들어 하지는 않았다.
마지막 날, 도신이도 지치고 나도 지쳤다. 목을 세우고 품에 안아 재워보려 했지만 물이 차는 속도가 빨라져 그마저도 잘 되지 않았다.
의사는 안락사를 권했다. 물을 계속 빼준다고 쳐도 하루이틀이라고 말했다.
나는 의사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아침 아홉 시라서 나는 두 시쯤에 다시 오겠다고 했다. 기왕이면 날이 밝을 때 보내고 싶었다.
도신이는 허파에 찬 물을 빼주자 당장은 살아날 것같았다. 나는 도신이를 안고 서재로 갔다. 이 서재는 도신이가 마지막 2년을 보낸 곳이다. 온 동네를 마음껏 나다녀 눈에 많이 익었을 것이다. 또한 도신이의 친구인 도리와 다래 모녀가 아직 있는 곳이다.
서재 마당에 가 도신이를 내려놓으니 도리와 다래가 뛰어나와 코를 킁킁거린다.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아는 눈치다.
그렇게 셋을 데리고 개울가를 산책했다. 도신이는 서너 걸음 걷다가 힘에 부치는지 멈춰 섰다. 그래서 내가 안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도신이가 기절할 때 떨어진 개울이나 논배미를 보여주었다. 자주 가던 산기슭에도 올라갔다 왔다.
“도신아, 이게 마지막으로 보는 것이란다. 도리, 다래를 보는 것도 지금이 마지막이다. 더는 못본다. 하늘 가거든 더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언제고 아빠를 다시 만나 또 한번 재미나게 살아보자. 그간 맛있는 거 많이 못주고, 쓴 약만 자꾸 먹여 미안했구나. 그래도 고맙다. 열여섯 살이 되도록 버텨주었으니.”
도신이는 내 품에 안겨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자꾸만 움직이는 내 입술을 바라보았다.
산책이 끝나자 나는 도신이를 안고 집으로 갔다. 집도 보여주었다. 평소 잘 들어가지 않던 딸 방도 보여주고, 옷방도 보여주고, 안방도 보여주었다. 베란다, 화장실, 도신이가 쓰던 곳을 보여주었다. 도신이가 집에서 쓰던 침대에 잠시 뉘어 보이기도 했다. 아직은 물이 덜 찼는지 크게 고통스러워 하지는 않았다.
기왕이면 이런 때 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맛있는 캔을 조금 먹였다. 도신이는 그걸 받아 먹었다. 마지막으로 먹는 음식이다.
한 시가 조금 지나 도신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다. 의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의사는 절차를 설명했다. 나하고 도신이한테 말했다.
“먼저 수면제를 주사하고, 잠시 뒤 심장을 멎게 하는 약물을 넣을 겁니다. 그러면 고통없이 3-4분 안에 가게 됩니다.”
“알았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도신이는 대답하지 못했다. 동의하는지도 알 수 없다.
의사가 수면제를 탄 주사기를 들고 가까이 다가섰다. 지금이라도 안락사를 포기하면 안될까, 몇 번이고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그날 밤을 넘길 자신이 없었다. 물론 의사의 휴대전화번호를 갖고 있다가 비상전화를 걸 수 있지만, 그러면 내일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잠깐만요."
나는 도신이를 안고 잠시 병원 문밖으로 나갔다. 그러고는 도신이에게 맑고 밝은 하늘을 보여주며 말했다.
“도신아, 기왕이면 깜깜한 밤에 가는 것보다 이렇게 밝은 대낮에 가는 게 좋지 않겠니? 그래야 무섭지 않지. 아빠가 지켜줄 테니까 겁내지 말고 가자. 하나도 안 아플 거야. 이제 아프지 않을 거야. 가자, 도신아.”
나는 도신이 머리를 내 가슴 쪽으로 해서 안았다.
의사가 수면제를 도신이 엉덩이에 놓았다. 그러자마자 도신이는 곧추 세웠던 머리를 내 가슴 쪽으로 떨어뜨렸다. 거칠던 숨도 가늘어졌다.
의사는 곧 2차 주사를 놓았다. 수면제 때문에 호흡 곤란으로 죽는 것보다 약물로 죽는 게 안아프다며.
눈물을 꾹 참고 계산을 했다. 계산하는 시간이 너무 길다. 어서 자동차로 가 도신이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다. 카드서명까지 하고 얼른 자동차로 갔다.
“도신아, 이제 가는 거다. 이번에는 거꾸로 가자. 집으로 갔다가 서재를 들러 네 친구들이 잠들어 있는 용수마을 뒷산으로 가자.”
도신이는 죽었는지 움직임이 전혀 없다.
집에 가서 미리 준비한 광목으로 염을 했다. 도신이 사물도 정리했다. 그러고는 향을 피우고 잠시 금강경을 틀어주었다. 나도 기도했다.
그런 다음 다시 서재로 가서 도리와 다래에게 염을 한 도신이를 보여주었다. 두 녀석은 또 킁킁거리기만 한다.
서재에서 10킬로미터쯤 떨어진 용수마을에는 도담이, 희동이, 도롱이, 도반이, 도란이가 죽은 순서대로 누워 있다. 나는 그래도 도란이 옆에 무덤을 마련하는 게 좋을 것같아 그 옆에 묻어주었다.
- 가을 논둑길을 산책하는 중에. 어깨끈을 맨 것은 심장판막증 때문이다.
뛰지 못하게 가만히 데리고 다녀야 했다.
'기록의 힘 > 바니 도란 도조 도쉰 다래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조를 잃어버리다 (0) | 2008.12.19 |
---|---|
도리 가던 날 (0) | 2008.12.19 |
아이들, 하늘로 보내며 (0) | 2008.12.19 |
웃는돌 강아지들 (0) | 2008.12.19 |
복동이와 순동이 (0) | 2008.1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