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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힘/바니 도란 도조 도쉰 다래

아이들, 하늘로 보내며

아이들, 하늘로 보내며


도담이가 죽은 뒤 10년이 되도록 우리집에서 죽는 개는 없었다. 그렇다고 영원히 죽지 않을 수는 없으니 일은 나게 돼 있다.

2001년 3월, 처음으로 희동이가 열두 살의 젊은 나이로 죽었다. 덩치가 너무 커서 시신을 닦고 염을 하고 산까지 이동하는데 애를 먹었다. 하지만 가는 길이나마 내 손으로, 내 품으로 안고 싶어 끝까지 끌어안고 ‘하늘 가는 스타게이트’까지 갔다. 친구 자륜 스님이 마침 와 있다가 내 손에 이끌려 우리 희동이 장례를 맡았다. 스님이 간절한 염불을 해주었으니 아무렴 좋은 데로 갔겠지.


희동이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결코 남의 먹이를 탐하지 않았다. 불의(다른 집 개하고 싸우거나 낯선 사람들의 침입 등)를 보고 물러서지 않았으며, 주인을 위해서는 단 한 차례 항명한 적이 없다. 희동이는 늘 도롱이나 도란이, 도조 등에 치여 사랑을 듬뿍 받지 못했다. 멀리서 주인을 바라다보는 것만으로도 녀석은 만족하는 듯했다. 실컷 안아주었으면 좋으련만, 둘이서만 다정하게 멀리 산책을 다녀왔으면 좋으련만, 단 한번도 그러지 못했다. 죽어 안아준 것이 가장 오래 안아준 것이다.

희동이는 제 아버지 도담이 무덤이 있는 곳에서 오십미터쯤 떨어진 곳에 묻혔다. 솔가지를 꺾어 덮어주었다.


그런 지 1년이 채 안된 2002년 2월 13일, 설 연휴를 마치고 돌아오니 다른 아이들은 다 뛰어나와 내 품으로 뛰어드는데 도롱이가 나오지 않았다.

“이 바보 녀석이 주인이 왔는데도 내다보지 않다니, 늙으니까 거만해지는구나.”

아무리 불러도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거만해도 못이기는 척 느릿느릿 나와주어야 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무슨 일인가 하여 집으로 가보니 그 안에 도롱이가 앉아 멀뚱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래? 두고 갔다고 삐쳤어? 그래도 너무 심하잖아? 얼른 나와 봐. 머리 쓰다듬어 줄게.”

그래도 도롱이는 나오지 않았다.

“이놈의 늙은이.”

내가 도롱이를 끌어내니 힘없이 끌려나왔다. 
몸에 손을 대보니 체온이 많이 떨어져 있다.

“어이쿠, 이거 이상하구나.”

나는 얼른 도롱이를 안아 거실로 들여놓았다. 재빨리 보일러를 켜고, 두꺼운 참선 방석을 깐 뒤 도롱이를 뉘었다. 그러고는 온몸을 마사지했다.

“이게 웬일이냐. 아빠가 잘못했다, 아빠가 잘못했어.”

도롱이는 기운을 차리지 못했다.

급한 마음에 우황청심환을 찾아 반쪽을 물에 타 먹여보았다. 그래도 효과가 없다.

보일러는 며칠 꺼둔 상태라 온기가 얼른 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부엌의 가스불까지 켰다. 마음은 급한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다. 동물병원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명절 연휴 끝인데 받을 리가 없다.

“도롱아, 갈 거니?”

말이 없다. 그냥 쳐다보기만 한다. 눈은 여전히 맑다.

겁 많은 녀석, 주인밖에 모르는 녀석, 저승길을 어찌 너 혼자 간단 말이냐.


한 시간쯤 지나자 도롱이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내 서재까지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러고는 구석에 앉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우리 도롱이 살아났구나? 그래도 거긴 바닥이 차니까 이리 와 앉자.”

나는 도롱이를 도로 안아다가 방석에 편안하게 뉘었다.

도롱이는 나를 바라보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

“이제 살아날 거지?”

도롱이는 눈을 한번 떴다가 도로 감았다. 갑자기 숨이 가늘어졌다. 다시 마사지를 했지만 한번 가늘어진 숨은 돌아오지 않았다. 1분도 안되어 도롱이는 아주 숨을 놓았다.


그렇게 죽을 거면 무슨 힘으로 서재까지 걸어가 앉아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심장에 귀를 대보아도, 코에 귀를 대보아도 살아 있다는 징후를 찾을 수 없다.

도롱이가 죽었다고 그 밤중에 뭘 해줄 수가 없다. 나는 멀리 부산까지 다녀온 길이라 너무 피곤하기도 해서 그냥 도롱이 옆에 이불을 펴고 누워 잠을 잤다. 겁 많은 아이를 밤에 보내는 게 불쌍해서 내가 옆을 지키기로 한 것이다.

“도롱아, 일단 잠을 자고 내일 아침에 하늘로 가거라. 같이 자자.”


이튿날 오후에 목욕을 시키고, 염을 해서 내가 자주 산책을 가는 길목에다 묻었다. 도롱이는 향년 14세다. 명절 끝이라 동네 사람들 몰래 치렀다.


도롱이가 간 뒤 나는 아무래도 애들이 심장사상충에 걸린 게 아닌가 의심스러워 모조리 검사를 했다. 그랬더니 도란이와 도조를 뺀 나머지 즉 도리, 도신이, 다래, 도반이 넷이 모두 유충에 감염돼 있다는 걸 알았다. 멀지 않은 곳에 개를 집단으로 기르는 집이 있는데, 거기서 모기가 날아와 우리 애들을 문 모양이다.


심장사상충에 걸리면 대부분 2회에 걸쳐 주사를 맞는데, 다른 아이들은 다 잘 견뎠는데 도반이가 그만 이겨내지 못하고 죽었다. 원래 심장사상충이 조각나면 이 조각이 혈관을 타고 돌아다니게 되는데, 이때 잘못하면 혈관이 막혀 죽게 된다. 도반이가 그런 경우다. 도반이는 겁이 많아 주사를 맞을 때 몸부림을 너무 많이 쳤다. 그게 아무래도 부작용으로 나타난 모양이다.

수의사에게 “그럴 가능성이 있으면 나눠 맞히지 왜 연달아 주사를 놓아 죽게 만들었담?”하고 점잖게 핀잔을 주었다.


도반이는 사실 목욕시키기도 힘들고, 미용할 때는 꼭 마취를 한 다음에나 가능하기 때문에 내가 몹시 힘들어하며 기르던 개다. 도반이한테 물린 것만 여러 차례다. 심지어 내 딸까지 물렸다.

그래도 상처받은 개라서 나름대로 사랑을 듬뿍 주며 길렀는데, 그래서 죽기 전에는 사람을 물지 않고, 마취 안하고 미용할 수 있었으면 했는데, 그만 가버렸다. 사고사라면 사고사고, 병사라면 병사라고 할 수 있는데, 도반이는 뒤란에 놓인 문짝 뒤 좁은 틈에 누워 잠을 자듯이 죽어 있었다. 내가 집에 간 밤사이에 죽은 것이다. 제발 밤에 보내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이게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도반이는 향년 열네 살이다.


녀석은 하도 겁이 많은지라 죽는 것도 어지간히 겁냈을 것이다. 영혼이 있다면 산에 묻히는 것도 겁내지 않을까 싶어 도반이는 대문 옆에다 묻고 그 위에 능소화를 심었다. 도반이 썩은 몸이 능소화로 다시 태어났으면 해서 그렇게 했다.


이제 누구 차롄가...

그러고 보니 우리 도신이 차례구나.

도신이는 원래 2000년부터 조금씩 심장판막증을 앓았다. 산책 중에 갑자기 실신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병원에서 심장판막증이라는 진단을 받은 뒤로 매일 아침저녁으로 약을 먹였다.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리라고 알고는 있었는데, 2005년 8월, 드디어 그 날이 왔다. 이놈의 “그날”은 기어코 온다.

그래도 발병한 지 5년이나 지난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동안 꾸준히 약을 먹였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수명을 연장할 수 있었다.

도신이 가던 날 얘기는 생각할수록 비통해서 따로 써야겠다.

 

- 도롱이 아기 시절, 주머니에 넣어 다닐만큼 작았으나 오른쪽 사진처럼 늠름하게 자랐다.

우리집 개 중 가장 잘 생기긴 했는데, 지능이 좀 달려 애 많이 먹었다.


- 희동이, 말티즈인 도담이 아들인데 털만 보면 삽살개로 보인다.

지능이 너무 높아 희동이 자식인 다래, 머루, 심바는 모두 천재견 소리를 들었다.


- 왼쪽이 도반이다. 오른쪽은 도신이. 

도반이도 사랑 좀 받자고 달려들기는 하는데, 하도 물어대서 온 가족이 피해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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