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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힘/바니 도란 도조 도쉰 다래

다래 한번 보러 오시지요

다래 가는 길 - 치료 기록

1월 28일 오후 8시 30분, 우리 다래의 원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래의 여명이 얼마 되지 않으니, 시간 있으면 한번 내려와 보고 가시지요.
핑계삼아 얼굴도 보구요."
 
우리 다래는 1994년 봄에 태어났다. 그러니 올해 15세가 된다. 나는 개를 많이 길러보았지만 다래처럼 우리집에서 태어나 우리집에서 보내야 하는 경우는 처음이다. 태어나던 날, 다래 형제들이 꼬물거리며 울어대던 게 엊그제 일만 같다. 그 가운데 가장 토실한 암컷과 수컷을 골라 내가 아는 작가에게 분양했는데, 암컷이 바로 다래다. 수컷은 머루라고 하여 검정색 개였는데, 나중에 발정난 암컷 찾아다니다가 기어이 돌아오지 못하고 말았다. 다래 남매는 3년쯤 그 작가네서 살다가 리콜되어 친정으로 돌아왔는데, 오늘날까지 탈없이 잘 자라주었다. 어찌나 머리가 좋은지 심심할 때는 서로 대화가 가능할 정도였다. 다래하고 다닌 산이 제법 된다.
 
다래는 비교적 복이 많은 편이다. 제 엄마하고 십몇년을 같이 살았으니 말이다. 개는 본디 엄마가 누구인지 잘 모르는 법인데, 다래는 제 엄마 도리를 알아보았고, 도리도 다래가 제 딸인 줄 알았기 때문에 평생 애틋하게 서로 사랑하며 살았다. 그런 중에 다래의 복인지 도리의 복인지 다래 딸 바니가 리콜되어 다시 친정으로 오는 바람에, 도리-다래-바니 삼대가 한 집에 사는 행운도 누렸다. 물론 바니는 제 엄마인지, 제 할머니인지 모르고 까불지만, 어쨌든 그렇다.
 
하지만 행복했던 시간은 거의 다 소진되고, 이제 이별의 카운트다운을 해야만 한다. 남은 시간은 대략 한 달, 혹은 두 달쯤 되리라고 본다. 그보다 더 짧을 수도 있다.
 
다래가 행복했던 시간은 나도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물론 다래 말년에 우리 딸 기윤이가 병을 얻어 험한 꼴을 여러 번 보았겠지만, 그래도 다래의 견생을 쭉 훑어보면 행복 이 단어 하나로 설명이 가능하다.
 
아, 힘이 들어 좀 쉬었다가 써야겠다.

- 날씨가 너무 추워 거실로 들어왔다. 뒤에 보이는 게이지에는 다래 딸 바니가 있다.
주인이 저 때문에 노심초사하니 다래도 그러는 주인이 안쓰러운가 보다. 네 마음이 내 마음이고, 내 마음이 네 마음이다.
 
29일 오후부터 헉헉거리는 강도가 심해졌다. 심장 뛰는 소리가 2미터 밖에서도 들린다. 베트메딘 1.25밀리그램을 투약했다.
거실에 이불을 펴고 다래하고 같이 누웠다. 바니는 저는 게이지에 두고 다래만 끌어안고 잔다고 투덜댄다.
엄마에 대한 효성이라곤 눈곱만치도 없는 딸년이다.
다래 심장 박동이 너무 심해 잠이 잘 안온다. 다래는 숨이 차는지 이따금 일어나 앉아 있기도 한다.
폐수종이 생기는지도 모르겠다. 불안하다.
다래가 머지 않아 가긴 갈 모양인데 어디에 묻을까 생각해보았다. 즐겨 산책하던 앞산 소방도로 중 제일 높은데에 묻으면 집을 내려다볼 수 있어 좋으련만 땅이 너무 딱딱해 파기가 쉬울 것같지 않다. 아무래도 제 엄마 도리가 묻혀 있는 뒷산 양지가 땅 파기도 좋고, 저희 모녀 외로움도 덜할 것같아 그리로 정해야겠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새벽 3시에 일어났다. 심장소리가 안들렸다. 죽은 듯이 누워 있다. 죽었나 싶어 놀라 건드려 보니 처음에는 반응이 없다가 서너 번 흔들자 그제야 고개를 일으킨다. 그러고보니 약효가 다시 먹혔는지 심장 박동이 제법 얌전해졌다. 고비는 넘긴 건가.
오른팔로 껴안고 다시 잠 들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불안한 나날을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
 
가는 날까지 최대한 편안하게 해주려고 노력하련다. 하도 먹질 않아 쇠고기를 사다 끓여먹이는데도 잘 안먹는다.
사람이든 개든 안먹으면 안된다. 어떻게든, 뭐든 먹여야겠는데 잘 안된다. 억지로 고기 몇 점을 손으로 먹이고 약을 먹였다.
날씨가 추워진다니 걱정이다. 다래 가는 날은 포근하고, 햇빛이 풍성하고, 하늘이 맑았으면 좋겠다. 어차피 수면제를 주사하고, 이어 심장을 멈추게 하는 약물을 주사해야 한다면, 내가 그 시각을 정할 것이다. 도신이를 그렇게 했듯이 죽기 좋은 날을 골라야 한다.
하나하나 보내는 일이 참 어렵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주인인 내게 준 기쁨을 생각한다면 이쯤은 봉사해야 한다고 믿는다.
 
2월 2일.
병원에 가서 밥 먹지 않는 대책을 물었다. 초음파를 실시하여 복부에 물이 차 있다는 걸 알아내고 일단 큰 주사기로 일곱 번이나 뽑아냈다. 한결 가벼워졌다. 그 사이 밥을 안먹는다고 이뇨제를 안먹였더니 복수가 찬 것이다. H/D라는 처방식을 강제로 먹이는 법을 배웠다. 주사기에 사료를 넣고 입에 강제로 밀어넣는 것인데, 그러면 뱉지는 않을 거란다. 병원에서 시범을 보이는데 곧잘 먹었다.
하지만 집에 와서는 잘 안먹는다. 다 뱉는다.
 
다래는 너무 약아서 병원 앞에 차를 대놓고 저를 내리려고 하면 요리조리 피한다. 병원이 싫다는 뜻이다. 할 수없이 병원에 끌려 들어가면 죽은 듯이 가만히 있는다. 그래야 빨리 끝난다는 걸 알고 의사 말을 잘 듣는 것이다.
 
2월 3일
사료용 쇠고기캔을 따 주어도 입에 대질 않는다. 약을 먹이기 위해 손으로 습식사료를 뭉쳐 억지로 먹이는데 흘리는 게 더 많다. 서너 번 강제로 먹인 뒤 약을 먹였다. 베트메딘 1.25밀리그램 한 정, 이뇨제와 간장약 등이 포함된 가루약 한 포를 먹였다.
 
2월 5일
사료를 너무 안먹어 병원에 데려가 여러 가지 진찰을 했다. 사료 안먹으면 죽는다고 빌어보고 달래보아도 다래는 입을 꾹 다물고 도무지 먹어주질 않는다. 강제로 먹여도 다 흘려버린다. 
설 연휴 중에 병원에 맡기려 했는데, 원장 왈 "연휴를 넘기는 것도 어려울 수 있다."고 한다. 그래도 링거 좀 꽂아보고, 사료를 먹여보면 회복될지도 모르잖느냐, 심장 박동은 나쁘지 않잖느냐 호소를 해서 오늘 하루 병원에 두고 경과를 보기로 했다.
 
맡기고 나오는데 커다란 눈망울로 주인을 바라본다. 실낱 같은 희망만 있어도 잡아보려고 하는 이 주인의 마음을 다래는 알는지 모르겠다.
다래 원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상태를 알렸다. 다음 주에 내려와 보겠다는 건 아마 어렵겠다고 하니 내일 보러오겠단다.
다래가 얼마나 고통을 견뎌야 할지 아직은 모르겠다. 최대한 치료를 시도해 보고, 안되면, 아무리 발버둥쳐도 안되면 그때 날이 푸른 날을 골라 수면제를 주고, 안락사를 하게 될 것이다. 시각은 가장 밝은 오후 두 시경으로 잡고 싶은데, 이런 내 뜻이 통할런지 모르겠다.
 
2월 6일
2월 6일에 병원에 가니 다래는 링거를 달고 있었다. 그 지경을 하고도 꼬리를 친다. "아빠, 아빠."하고 울부짖는 것같다.
잇몸을 만져보니 여전히 차다. 눈 흰자위를 까보아도 핏빛없이 너무 희다. 난 어떻게 되는 거야, 다래는 이렇게 묻는 것만 같다.
원장이 수혈을 해야할 상황이라고 말해 그러자고 했더니, 그러자면 몇 가지 검사를 해야 하는데 자신들은 장비가 없단다. 할 수없이 설 다음날 2차진료기관인 해마루에 가 종합검진을 받아보고 처치를 하자고 합의했다. 그 사이 죽으면 안되니 링거를 계속 달아달라고 부탁했다.
 
설 당일은 아무도 출근하지 않고 아침저녁 두 번 밥 주러 다녀가기만 한단다. 그래도 살펴달라고 청해 원장은 그러기로 했다.
이날 다래 원주인에게 시간 되면 다녀가라고 재차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처음에는 온다더니 나중에는 뉴스를 보니 차가 막힌다고 다음주쯤 내려오마고 다시 메시지가 왔다. 글쎄, 다음주라는 시간이 다래에게 허용될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부담갖지는 말고, 혹 안락사를 하게 되면, 당신들 모르게 하면 섭섭해할까봐 그냥 상황을 알려주는 것뿐이라고 안심시켰다.
 
2월 7일
시골에서 오후 10시에 출발했다. 어차피 일찍 집으로 가봐야 다래를 퇴원시킬 수도, 치료를 해줄 수도 없다. 설날에는 모든 동물병원이 휴진을 하기 때문이다. 설날인데 하룻밤 자고 가지 그러느냐고 어머니가 성화지만, 어쩔 수없었다. 다래를 모르는 이들에게는 그저 범사에 지나지 않지만, 주인공인 다래에게는 일생 일대의 중대사 아닌가. 병원에서 저 혼자 죽게 할 수 없어요. 안락사를 시키더라도 내 품에서 시키고 싶어요,  이러고는 섭섭해 하는 가족들을 뒤로한 채 그냥 차를 출발시켰다.
 
딸을 먼저 내려주고나니 오전 1시가 넘었다. 딸 약먹는 것까지 챙겨본 다음에 집으로 향했다. 오는 길에 다래가 입원해 있는 병원 근처를 지나가는데, 그 시각에는 가봐야 들어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다. 병원 문이 닫혀 있을 테니. 그저 이 밤 무사히 자니가기를 소원하면서 지나갔다.
 
오전 오후 두 차례 원장이 밥주러 갔을 것이고, 그때마다 전화가 없었으니 긴급상황이 생기지는 않은 것이다. 혹시 병원에서 연락이 올까봐 화장실 갈 때나 세배하러 친척집에 갈 때나 휴대폰은 꼭 챙겼는데, 연락이 없었다.  혹시 전화를 받지 못한 건 아닐까 하여 틈나는대로 통화기록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집에 가니 2시, 아침 일찍 병원에 가기 위해 서둘러 세수를 하고 바로 잤다. 도조는 여전히 가랑이 사이로 파고들고, 시골까지 데리고 갔던 바니는 그제야 마음 편히 눕는다. 바니는 시골에서 하룻밤 자는 동안만 방에서 자고, 나머지는 내내 차안에 있었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오줌을 짜는 때를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누워 있었던 셈이다. 이제야 휴우 하는 듯한 표정이다.
 
아침 9시, 바로 전화를 하고 싶었으나 참았다. 동물병원은 문을 열면 청소를 하고, 입원 환자 밥 먹이고, 유기견들 밥 먹이고, 대소변을 치워야 하기 때문에 바쁘다. 10시에 전화를 걸었다. 그때까지 전화가 없었으니 급한 일은 안생긴 것이다. 상황은 여전하고, 해마루로 후송하는 게 좋겠다고 원장이 권한다. 그래서 그러기로 했다.
 
병원에 가니 다래는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나를 바라본다. 너무 힘이 드는지 꼬리를 치지 않는다. 링거를 꽂은 것만 빼고는 겉으로는 멀쩡하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도 꼬리를 치지 않는다.
 
링거를 차문 손잡이에 달고, 다래를 담요를 깐 조수석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나서 손담요로 덮어주었다. 집냄새가 나서 그런지 다래는 금세 코를 박고 편히 누웠다. 원장은 다래를 먼저 후송시키라며 바로 가라고 채근했다. 3일동안 입원하고, 치료한 계산은 나중에 하란다. 그래서 분당의 해마루로 갔다.
 
용인동물병원 원장이 미리 설명을 해놓아 해마루에서는 가자마자 진료가 시작되었다. 가져간 베트메딘을 주고, 내일 다시 가기로 했다. 그 사이 가능한 모든 검사를 해보기로 했다. 진단이 나와야 치료가 가능한지, 어느 정도 위험한 상황인지 정확히 알 것이기 때문이다. 이쪽 의사는 그리 위독한 상황으로 인식하지 않는 것같다. 그래서 용인동물병원 원장 둘이 얘기한 나쁜 상황을 기억나는대로 다 말해주었다. 수혈을 받고 싶다는 얘기도 했다.
 
다래야, 아빠, 내일 올 테니 치료 잘 받아야 해, 그러고서 나왔다. 다래의 간절한 눈빛이 가슴을 후벼파는 듯하다. 이년하고 눈이 마주치면 정말 힘이 든다.
 
딸에게 전화를 거니 아직 일어나지도 않아서 그리 향했다. 아침을 안먹었다고 하여 가서 데리고 나왔다. 집에 가기도 허전하여 가까운 민속촌으로 가서 국밥을 먹고 구경이나 조금 하려 했더니 오늘따라 손님이 너무 많아 진입하는데 30분 이상 걸릴 것같아 그만두고, 대신 근처에 있는 극장으로 가 '우리들 생애 최고의 순간'이란 영화를 보았다. 그냥 딸하고 볼만한 걸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영화사 사장인지 매니저인지 하는 사람이 그 영화표를 주었다. 사람들은 이 영화제목을 줄여 '우생순'이라고 한다던데, 보는 내내 감정 풍부한 기윤이가 하염없이 울어 그만 '울생순'이 되었다. 영화가 끝난 뒤 이 언니들은 힘들어도 어려워도 꿋꿋이 하고 싶은 일을 해냈기 때문에 감동적이다, 그러니 너 역시 그래야 한다. 이렇게 훈계를 늘어놓았다. 그러면서 생각해보았다. 나는 저네들보다 좀 나은 처지에서 기윤이를 기르고 있는가를.
 
4시가 되어 해마루 담당 의사에게 전화를 걸어 다래 상황을 물었다. 오늘 가능한 검사는 다 했고, 몇 가지 못한 건 내일 또 한다고 했다. 복수 210씨씨를 뽑아냈다고 했다. 그러면서 위독한 상황은 아니고, 내일 종합적으로 판단할 테니 오후 2시 이후에 와서 데려가란다. '데려가라'는 뜻은 위독하지 않다는 말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용인동물병원으로 가 계산을 했다. 그쪽에서 한 이야기를 그대로 전했더니 원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해마루쪽에서 너무 낙관적으로 보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나는 이쪽 원장들이 말한 걸 여과없이 다 말해주었는데도 그들은 그렇게 대답하더라고 하면서, 마침 가지고 있던 해마루의 진료계산서를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무슨 검사를 했는지, 할 건지 내역이 다 나와 있기 때문에 원장은 그것만 보아도 훤히 알게 되는 것이다. 이걸 보고 담당의에게 좀 물어봐주시고, 그동안 보신 진료 내역을 설명해주세요, 하고 부탁했다. 그러기로 했다.
 
원래 용인동물병원 이원장(임원장이 또 있고)은 전에 다래 엄마 도리를 진료할 때에도 감당이 안되어 해마루로 후송한 적이 있다. 도리도 복수가 심하게 차는 병이었는데, 해마루에 가서 며칠 입원하고 돌아와 2년간 잘 살다 갔다. 그때마다 이원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예후가 궁금하다.'고 했는데 어쨌든 도리는 그때 그 병으로 죽지 않고 전혀 다른 사유로 2년 더 잘 살다가 열일곱 살로 죽었다. 그래서 한 편으로 난 또 그런 일이 생겼으면 하고 바란다. 즉 다래가 위독하다는 원장들의 말이 제발 틀리기를 소원하고 있다. 어쩌면 내일 다래는 멀쩡해져서 퇴원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쪽 원장들 말대로 절망적인 진단서를 받아들게 될지도 모른다.
 
오늘 나는 작은 희망과 큰 불안을 안고 또 밤을 맞는다. 내일 제발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소원한다. '좋은 결과'라는 것도 불과 몇 개월의 수명을 연장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래도 어떤가. 몇 시간인들, 며칠인들 다래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금쪽보다 더 소중한걸. 요즘은 다래를 보고 만지는 시시각각이 '우생순'이다.
-2005년 11월 7일, 안성청룡산가는 길에. 2년 전이다 보니 다래가 건강할 때다.
 
2월 9일.
검사가 끝나는 시각이 오후 3시라고 하여 맞춰 갔다. 몇 가지 검사에서 정상 수치가 나왔다고 수의사가 기쁜 얼굴로 말해주었다. 다만 초음파 검사에서 간기능이 심각한 것으로 나와 그 이유가 뭔지 분석 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 가지 검사를 더 해보자고 하면서 오후 8시에 다시 오란다. 나는 무슨 말인지 잘 알 수 없어 용인동물병원 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직접 판단해달라고 했는데, 이 원장이 그러라고 하여 추가 검사를 받기로 했다.
 
이 원장은 어제 해마루가 다래 증세를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본다고 불만하여 직접 전화를 걸어 상담을 했단다. 어느 정도 해마루도 동의하기는 하는데, 일단 검사 수치가 정상 범위라서 꼭 긍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검사까지 시간이 두 시간 넘게 비었다.
억지로 시간을 때우다 8시가 넘어 병원으로 가니 검사결과가 나왔다. 또 정상이란다. 대체 무슨 이유로 다래가 복수가 차고, 식욕이 없는지 이유를 정확히 잡아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래는 추가 검사나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 아니니 일단 퇴원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예후를 살펴가며 추가 진료를 하잔다.
 
처방이 나왔다.
심장관련해서는 이미 먹던 베트메딘 용량을 150%로 맞춰 급여하기로 하고, 아울러 L-c*rn*tine 450밀리그램을 매일 투약하란다.
사람약은 내가 알아서 구해 먹여야 한다.
이밖에도 간장약으로 우루사 200밀리그램, 실*마린 100밀리그램, 아*오일 200밀리그램, 토코페롤 400 IU, 동물성 오메가-3지방산을 먹이란다. 모두 사람약이니 일반 약국에 가 구해 먹여야 한다.(* 표시는 전문의약품)
 
수의 병원 처방은 다음과 같다.
                furosenide 2밀리그램/킬로그램
                spironolactone 2 "/ "
                enalapril 0.5 " / "
 
일단 다래를 차에 태워 집으로 돌아왔다. 다래는 집에 오니 마음이 편한지 넙죽 엎드려 잠을 청한다. 그간 마음 고생이 많았을 것이다. 나흘만에 집에 돌아온 것이다. 안심할 수는 없는 단계라서 계속 긴장해야 한다.
 
2.10
처방식을 물 약간량과 함께 믹서에 갈아 주사기로 먹였다. 오전에는 나 혼자 하느라 애를 먹었는데, 오후에는 도와주는 이가 있어 그가 주사기로 사료를 빨아들이면 그걸 내가 다래 입으로 밀어넣어 짜주었다. 200씨씨를 먹였다. 먹는데 크게 저항하지 않고 그럭저럭 받아먹는 편이다.
저녁을 먹이고 나서 고깃집에 나가 고기를 먹었는데 일부러 남겨가지고 와 다래에게 시험을 했다. 다행히 다래가 쇠고기 대여섯 점을 거뜬히 먹어치웠다. 식욕이 일취월장하고 있다.
차디 차던 잇몸도 따뜻해지고 있다. 핏기가 보인다. 뭔가 회복 조짐이 느껴진다. 다만 아직도 걷는 걸 보면 엉금엉금 곧 죽을 아이같은데, 원인은 모르겠다. 베트메딘 한 정과 병원처방약을 아침저녁으로 먹이고 있고, 아침에는 오메가-3지방산 한 캡슐을 먹였다.
 
2.15
이달 초만 해도 다래 견생에 2월 15일이란 날짜는 없을 줄 알았다. 오늘, 다래는 살아 있다.
지금은 카르*틴, 우루사, 실리마린, 아*오닐, 토코페롤, 베트메딘, 처방약까지 하루에 먹여야 할 약이 너무 많다.
(*는 전문의약품이라 어쩔 수없이 표기 못함.)
그러고보니 오메가-3지방산은 잊었다. 먹여야 할 게 많기도 하고, 식전 식후로 나뉘니 헷길리기 십상이다.
사료를 갈아먹일 때도 영양제를 한 알 넣어 갈아먹여야 하는데 종종 잊는다.
너무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고, 힘이 든다.
그래도 살리자니 어쩔 수 없다. 입을 크게 벌리고 깊숙이 밀어넣어야 한다.
가장 힘든 일은 아침저녁으로 처방식을 믹서에 갈아 10씨씨 주사기로 주입해 먹이는 건데, 200씨씨 정도 먹이려면 옷이 다 버린다.
아침 저녁으로 추리닝을 빨아가며 버티고 있다. 다행이 추리닝이 세 벌 있어 교대가 가능하다.
처음에는 5씨씨 주사기로 먹이느라 애를 많이 먹었는데 10씨씨로 바꾼 뒤로는 비교적 편하다.
다래가 살아날 수만 있다면 기꺼이 할 것이다.
온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다래가 간 뒤 더 힘들어진다.
먼저 간 도란이, 도롱이, 도담이, 도반이, 도신이, 도리가 죽게 된 원인을 생각해보면 정성 부족으로 미처 병증을 알아보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그때 이랬더라면, 저랬더라면 자주 후회한다. 다래만은 그런 후회가 없었으면 한다. 도신이 같은 경우가 거의 유일하게 여한이 없게 보낸 편이다.
 
살다보면 후회할 일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그래도 줄여가고 싶다.
 
2.17
다래 원주인 내외가 마침내 내려왔다. 운학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만나 몇년만에 주인과 개가 만났다.
전같으면 다래가 펄쩍펄쩍 뛰면서 좋아했겠지만, 오늘은 몸이 불편한지 처음에는 주인인 줄 알아보지도 못한 채 힘없이 서 있기만 했다. 온도는 영하 1도쯤, 해가 넘어가려고 할 무렵이다. 바람은 없었다.
네 진짜 주인이야, 이렇게 설명을 해주자 고개를 들어 주인을 올려다보았다. 얼굴이 안보이는지 그이 바지에 밴 냄새를 맡는 듯했다. 그러다가 꼬리를 쳤다. 이제 알아본 것이다. 그렇다고 전처럼 정열적으로 주인에게 달려들지 못하고, 힘없이 꼬리를 치는 게 전부다.
요즘 심장 상태가 안좋아 목욕도 자주 못시키고, 또 사료를 주사기로 먹이다보니 털이 지저분하다. 머뭇거리는 주인을 위해 내가 다래를 번쩍 안아 주인 얼굴을 가까이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다래야, 이 생에서는 마지막으로 보는 주인 얼굴이다. 잘 보거라."
미안한지 주인은 "날씨 따뜻해지면 또 보러 와야지요." 한다. 날씨가 따뜻해지려면 3월말이나 4월초가 돼야 한다. 과연 다래가 4월을 맞을 수 있을지.
"그럴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내가 이렇게 대답했다.
함게 간 딸이 "다래 운다."고 말했다. 난 다래를 안고 있어서 얼굴을 보지 못했다. 내 눈에 보이는 건 다래가 아니라 주인 내외 얼굴이다.
"그래, 그래." 주인이 긍정했다.
하지만 개는 눈물을 흘리지 못한다. 다래를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 속에 눈물이 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이다.
더구나 다래는 요즘 잘 먹지 못해 퍽 수척해졌는데, 그러다보니 큰 눈이 더 커졌다. 다래 눈은 보통 때도 슬퍼보인다.
날씨가 추워 공기가 차면 눈물이 더 많이 흐른다. 그래서 눈이 촉촉해졌을지는 모르겠다.
더 보여줬다간 주인 내외가 울 것만 같아 다래를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다래가 조금 걷다가 힘에 부치는지 앉았다.
차가운 땅바닥에 앉으면 배가 닿기  때문에 얼른 안아 다시 차에 태웠다.
 
함께 병원에 가서 약을 받았다. 그이들이 다래주라고 사료를 몇 개 사주었다.
다래는 일반 사료를 못먹는다고 하니, 다래 딸 바니라도 주라고 하여 받았다.
초음파로 복수를 살폈는데, 뽑을 만큼 많지는 않으니 일주일 더 기다려보자고 원장이 말했다.
오늘 병원비는 주인이 계산했다. 다래 맡기고 사료도 못사줘 미안하다고 했다.
미안할 것은 하나도 없다. 다래는 사료값도 못하는 개가 아니다. 제 벌이는 능히 하고도 남는 아이다.
오죽하면 '박 사장'(앞에 나온다)이 별장에 올 때마다 다래를 목욕시켜 같이 잤을까.
그만큼 다래는 사람들에게 애교넘치고, 정많은 아이로 통했다. 손님들이 일부러 다래 먹을거리라며 오징어나 포, 건빵 같은 걸 사다주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니 다래는 제 힘으로 여태껏 잘 먹고 잘 살아온 것이다. 내가 아니었어도, 다래는 어떤 주인을 만났어도 사랑받으며 잘 살았을 것이다.
 
다같이 저녁 먹고, 그 사이 다래는 차 뒷좌석에 앉혀 놓았다. 우리 아이들은 차에 타는 걸 워낙 좋아해서 그래도 불만이 없다.
사람끼리 저녁 먹고, 주스 마시고, 과일 먹은 뒤 주차장으로 가서 진짜 마지막 이별을 했다.
그이들이 인사를 하고 떠났다.
"다래야, 따라갈래? 가고 싶으면 가."
그러면서 안고 있던 다래를 내려놓으니 다래가 참말로 비실비실 주인을 향해 걸어갔다.
주인이 놀라 그 자리에 멈춰섰다. 다래는 그새 힘이 드는지 그이들 앞에 앉았다.
당황해하는 주인을 위해 내가 편안한 대사를 읊었다.
"안아다가 차에 좀 태워 주세요."
주인은 기꺼이 냄새나는 다래를 안아다가 차 뒷좌석에 앉혀주었다.
다래가 그이를 따라간 것은, 딱히 주인을 따라가겠다는 뜻이 아니라 정많은 다래만의 특징이다. 우리집에 아는 손님이 오면 언제나 따라나선다. 누가 되었든. '박 사장'이 일요일 저녁 집으로 돌아갈 때는 늘 동네어귀까지 뛰어가다가 지쳐 돌아오곤 했다. 그래서 다래가 인기가 많았다.
주인은 그렇게 떠나가고, 다래는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 시간이 늦었으니 어서 집으로 가 약을 먹고 밥을 갈아 먹고 또 약을 먹어야 한다.
딸까지 보내고나니 남은 건 나와 다래다. 언제나 이렇게 남는다.
나와 누구, 나와 누구, 우리집 개들은 항상 이랬고, 이럴 것이다.

- 6년 전인 2002년 여름 사진이다. 털이 깨끗한 걸 보니 '박 사장'이 왔는가 보다.
 
2.21
주사기로 죽을 만들어 먹이다보니 추리닝을 빨아대기도 힘들고, 다래 털이 길어 여기저기 사료가 많이 묻는다.
매일같이 간이 목욕을 시키지만, 다래가 불편하다고 호소한다.
하는 수없이 오늘 병원에 가 털을 깨끗이 밀었다.
바니도 함께 미용을 했는데, 다래는 등짝에 검버섯이 수없이 피어 있는데, 딸 바니는 깨끗하다.
사람이나 개나 늙으면 반점이 생기고, 젊으면 피부가 고운가 보다.
복수가 있어 뽑으려 했는데 더 보기로 하여 일단 돌아왔다.
 
2.23
복수가 줄지 않아 오늘 병원에 가 540씨씨를 뽑아냈다.
소변을 보고 싶어 하는데 잘 나오지 않는 모양이다.
초음파로 심장을 보았는데 판막 활동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약의 힘으로 억지로 버티는 거라고 의사가 말했다.
그래도 어쩌는 수가 없다. 약의 힘이든, 기도의 힘이든 오래만 살아줬으면 좋겠다.
 
2.29
찬물을 찾는다. 마당에 나가서도 얼음물이 괴는 곳을 일부러 찾아가 얼음이 녹은 물을 마신다.
며칠째 같은 자리를 찾아가 얼음 녹은 물을 마셨다. 차디찬 땅바닥에 망연히 앉아 있기도 한다.
방에서는 일부러 물그릇에 턱을 받치고 잠을 자기도 한다. 심장이 부담이 되다보니 열이 많이 나는가보다.
미지근한 물은 안마시고, 꼭 새로 받은 물이어야만 조금 마신다.
하도 답답해 찬물을 받아 냉동고에 넣었다가 살얼음이 언 다음에 주는데, 근본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의사가 말한다.
 
오늘 콧물이 약간 나와 감기약을 처방받았다. 또 변이 지나치게 묽어 설사가 아닌가 검사했는데, 설사는 아니라고 한다.
급식량을 줄여보라고 하여 그렇게 하고 있다. 오늘 저녁, 200씨씨에서 300씨씨까지 먹이던 사료를 줄여 150씨씨를 먹였다.
지사제 약간량을 하루 3회, 며칠 먹일 참이다. 점심, 저녁 2회 먹였다.
감기약은 하루 두 번 먹게 된다. 콧물 감기가 멎으면 바로 투약을 중지할 참이다. 저녁에 처음 먹었다.
먹는 약이 너무 많아 지사제나 감기약은 가급적 적게 먹일 수밖에 없다.
지사제와 감기약을 먹는 동안 베트메딘과 이뇨제를 제외한 다른 약은 절반으로 줄이기로 했다.
2월은 이렇게 넘어가는가 보다.
 
3.3
설사가 멎고 감기도 그쳤다.
일없이 마당에 나가고 싶어한다. 거실에만 있는 게 답답한 모양이다.
일부러 안아들고 마당을 한 바퀴 돌다 들어와야 마음 편하게 눕는다.
 
오늘 서울에 나갔다가 밤늦게 들어오니 누워 있던 다래가 자리에서 일어나 꼬리를 친다.
어쨌든 무사히 3월을 맞이했다.
 
3.23
잘 버티고 있다. 종일 누워만 있다 보니 다리 힘이 빠진 모양이다. 대소변 보러 마당에 나가면 오래 서 있지 못하고 앉아버린다.
먹고 있는 약 중에서 오메가-3지방산을 며칠째 안먹이고 있다. 대변이 지나치게 묽어 원인이 뭔지 알 때까지 끊어볼 참이다.
 
4.3
며칠 전 다래 목욕을 시키다 갑자기 아버지 생각이 나서 찔끔 나오는 눈물을 삼켰다.
아버지 가시기 1년 전부터 형제들이 돌아가며 목욕을 시켰는데, 그때마다 깡마른 갈비뼈며 정강이뼈 등을 어루만지며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몸무게는 40킬로그램이나 나갔을까. 아버지 키는 172센티미터 정도였는데, 몸무게가 겨우 그랬다. 업어도 하나도 무겁지 않았다. 자식 다섯을 낳아 기른 아버지가 솜털처럼 가볍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늘처럼 높고 바다처럼 깊다고, 아버지란 존재는 가없이 성스런 저 먼 발치의 우상이었는데, 어째 그리도 나약하던지.
다래를 목욕시키다보니 너무 말라서 갈비뼈가 다 드러나고, 엉치는 바짝 말라 뼈만 있는 것같다. 걷다가 쓰러지곤 할만큼 뼈만 남았다. 남은 살가죽엔 온통 검버섯이다. 눈알만 왕방울같이 번쩍 거린다. 그 눈으로 하염없이 나만 쳐다본다.
나는 더이상 어쩔 도리가 없는걸, 다래는 자꾸만 바라본다. 큰 눈 가득 눈물 담고서 나만 바라본다.
 
심장소리가 더 커졌다. 몸이 뜨거운지 자꾸만 차가운 물을 요구한다. 물을 먹지는 않고 물그릇에 턱을 받치고 있는다.
다래 정상 몸무게는 대략 7~8킬로그램인데, 차마 잴 수가 없다. 너무 가벼워 몸무게를 재보기도 두렵다.
주사기로 음식을 먹이다보니 많이 줄 수가 없다. 그러니 날이갈수록 체중이 준다. 가죽만 남은 앙상한 형국이다.
소변보라고 마당에 내놓으면 3초를 서 있지 못하고 뒷다리를 접는다. 그것도 채 30초도 못견디고 옆으로 누워버린다.
안아들고 마당을 한 바퀴 돌면 그래도 야성이 남아 있어 바깥을 내다보려고 고개를 쭉 펴고 두리번거린다.
지금도 다래는 나를 간절히 바라보는데, 내가 해줄 게 없다. 더 먹일 약도 없고, 있다 해도 효과가 있을 리 없다.
그냥 늘 먹는 그대로 지켜나가는 수밖에 없다. 저와 나 사이에 남은 시간을 조금씩 조금씩 베어먹는 수밖에 없다.
맛있는 음식을 길게 먹으려고 조금씩 떼어먹던 어린 시절처럼, 시시각각을 누리는 수밖에 없다.
더 안아주고, 더 만져주고, 한 마디라도 더 속삭일 수밖에 없다.
이런 지경에 이르면 사랑조차 의미가 없다. 저와 내가 15년을 살아왔건만 소용이 될 게 뭐란 말인가.
추억을 꺼내 약으로 만들어 먹일 수도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