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도조가 드디어 19세가 되었다. 내 목표는 스무살까지 건강하게 살다 가게 하는 건데, 이제 그 목표에 2년쯤 남았다. 나이로 치면 1년만 잘 버텨도 스무살 소리는 듣게 되었지만 과연 그 1년을 버텨줄지 우리 도조의 건강이 썩 좋지 못하다. 입술에 생긴 악성종양을 제거한 뒤 조마조마하게 예후를 지켜보는데, 아직까지 별다른 징후가 없어 다행이다.
이가 오른쪽 송곳니 한 개밖에 없다보니 음식을 씹어먹질 못하고, 그래서 그런지 밥맛을 잃었는가 보다. 좋아하던 사과, 감 따위를 먹지 못한 지 오래 됐다. 여간해서는 일반 사료를 먹지 않는다. 노인성 사료라는 시니어 계열은 입도 대지 않는다. 덜 짜게 하고 지방 줄였다면서 맛까지 없게 만들어 그런 가보다. 계란을 반숙해서 주거나 쇠고기를 다져 구워주거나 참치살코기, 닭살코기 따위를 주어야 겨우 입을 댄다. 그것도 시원하게 먹어주질 않는다. 너무 안먹으면 하는 수없이 링거를 꽂아 비타민도 주사하고, 수액을 맞는다. 그럼 조금 기운을 낸다.
노견이다 보니 귀찮은 것도 한 가지 생겼다. 신장 기능이 떨어져 소변을 자주 본다. 그것도 화장실까지 가기 싫은지 그냥 방에 싸버린다. 하루 종일 잠을 자는 게 도조 일인데, 그래도 주인이 있어야 잠을 자지 주인이 없으면 잠을 못자고 우왕좌왕한다. 주인이라고 늘 제곁을 지킬 수만은 없어 밖에 나가 일을 보고 오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어찌나 노여워하는지 있는 힘을 다해 운다. 전에 도란이가 살아 있을 때는 둘이 의지하고 외로움을 잘 견디더니 혼자 된 뒤로는 도무지 혼자 있는 걸 용납하질 않는다. 요즘에 날씨가 추워 노여워하거나 말거나 집에 두고 나가지만, 다른 계절에는 일단 차에 싣고 나가 일을 보는 동안 차에 머물게 한다. 차가 주인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차 안에서 기다리는 데는 큰 불만을 품지 않는다. 또 차에서는 기다려봐야 두어 시간이기 때문에 도조도 그걸 계산하고 안심하는 것같다.
도조가 가장 싫어하는 게 병원에 맡겨지는 거다. 몇년까지만 해도 가끔 병원에서 하룻밤을 나곤 했는데 작년부터는 거의 불가능하다. 간호사들이 다룰 수 없을 만큼 난폭하게 굴고 쉬지 않고 소리를 지르고, 게이지를 마구 흔들고 발바닥으로 긁어댄단다. 간호사들이 게이지에서 꺼내 안아주고 얼러봐도 "우리 아빠 불러달라"고 절규하듯이 소란을 멈추지 않는단다. 그래서 요즘에는 무슨 일이 생겨도 병원에 맡기는 일은 없다.
겨울이 되어 거실에 실외견 두 마리가 들어와 있다. 말이 실외견이지 얘들도 사랑으로 기른다면 실내견이 될 아이들이다. 하나는 말티즈 바니고, 하나는 말티즈+코커스파니엘 믹스견 다래인데, 덩치가 크지 않다. 그나마 바니는 반신불수고, 다래는 심장판막증 말기 증세를 앓고 있다. 겨울철에 너무 추우면 심장병 앓는 다래 증세가 악화될까봐 들여놓았는데, 반신불수된 바니 하나만 밖에 둘 수 없어 둘 다 들여놓았다. 그러다보니 도조가 스트레스를 받는다. 도조는 다래하고는 다래 나이인 15년간 살아왔기 때문에 서로 친하게 지낼 수 있는데, 바니하고는 그렇지 못하다. 바니가 우리집에 리콜된 지 겨우 3년째, 그때부터 도조는 백내장으로 눈이 어두워져 바니를 사귈 새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바니는 도조가 지나가기만 하면 소리를 질러대고, 도조는 웬 개야 하고 놀라 피해다닌다. 그래서 도조는 안방에서 통 나오질 않는다. 제 밥이 있는 부엌과 화장실 동선만 오갈 뿐 거실은 나오지 않는다. 도조는 원래 내가 일을 할 때는 거실 한켠에 마련된 내 컴퓨터 책상 아래에 누워 자는 걸 즐기는데(주인의 발냄새가 나 안심이 되는 모양), 바니 때문에 이 취미조차 버렸다.
도조 나이 19세라는 건 그만큼 나와 도조가 함께 살아왔다는 말이다. 세 살 때 입양해 왔으니 16년을 꼬박 부대끼며 살 비비며 살아왔다. 사람 같으면 열아홉 살 나이라는 게 대학에도 가고, 군대도 가고, 뭐든지 할 나이인데, 도조는 너무 늙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도조도 젊었을 때는 의사소통이 되는 게 아주 많았다. 우리딸 기윤이가 젖먹이일 때는 의연하게 지켜내기도 했다. 지금은 기윤이가 저를 안고 얼러주지만 별로 기뻐하지 않는다. 도조는 지금도 기윤이를 애기로 알고 있는지 기윤이가 자신을 돌보는 데 별로 익숙하지 못하다. 기윤이하고는 기윤이 나이만큼 함께 살아왔으면서도 함께 잠을 자려 하지 않는다. 자신을 지켜줄 수 없다고 믿는 것이다.
도조는 밤이 되면 일단 이불속으로 기어들어와 내 다리 사이에 눕는다. 나도 어린 시절에 아버지 다리 사이에 들어가 논 기억이 있다. 우리 기윤이도 그런 적이 있다. 그처럼 도조가 열아홉 살이 되어 이제 애기처럼 군다. 내 다리 사이가 세상에서 제일 편하다고 믿는 듯하다. 그곳에서는 아무 근심걱정도 없는 애처럼 쿨쿨 잘 잔다. 겨울 이불이라 다리 사이에 오래 있으면 숨이 막히는지 적당한 때에 밖으로 나와 잠을 자지만 늘 첫잠은 그렇게 잔다.
도조가 늙은이 행세를 한 뒤로 여러 가지 위생문제가 많이 생긴다. 하는 수없이 자주 빨고 자주 닦고 자주 씻는 수밖에 없다. 밤에는 기저귀를 채우고 싶은데, 암컷용 뿐이라 잘 맞지 않아 못쓰고 있다.
비록 우리 도조가 잘 보지 못하고, 잘 듣지 못하지만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기를 소원한다. 내가 가장 사랑하던 도란이를 잃은 뒤, 또 도담이나 도신, 도리, 희동, 도반, 도롱이를 땅에 묻은 뒤로 언젠가는 다시 만나지 않을까 엉뚱한 상상을 해보곤 했는데, 사실 죽으면 끝이다. 다시 그 아이들을 볼 수가 없다. 비디오를 틀어보면 화면에 나와 짖고 뛰고 꼬리치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차라리 어쩌다 꾸는 꿈에 이 아이들이 나타나는 게 백 번 좋다. 아, 아이들 꿈을 꾸는 날이면 나는 정말 너무나 행복하다. 그러니 도조가 죽어 도조 사진이나 들여다보고, 비디오나 틀고, 혹시나 오늘밤 꿈에 우리 도조가 와주지 않을까 기대하느니 지금 살아 있으면서 만져보고 냄새를 맡아보고 서로 바라보는 게 좋다. 흐릿하기는 하겠지만 도조는 내가 주인이라는 걸 안다. 냄새도 맡는다. 살아 있다는 걸 느끼는 건 이렇게 기쁜 것이다.
- 왼쪽은 2007년 12월에 찍은 사진이다. 눈이 초점을 맞추지 못하기 때문에 또렷하질 않다.
- 오른쪽은 2004년 9월에 찍었다. 15세 때다. 한결 낫다.
- 오른쪽은 2004년 9월에 찍었다. 15세 때다. 한결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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