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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힘/바니 도란 도조 도쉰 다래

다래 하늘 가던 날

 

아침이 되면 진주로 내려가야 하는데, 다래 심장이 요동치고 있다.
집을 비울 때마다 불안하다. 나 없는 새 무슨 일이 생기면, 하늘 가는 길 혼자 외로이 가게 되면 얼마나 무서울까 생각하면 발이 안떨어진다.
열두 시쯤 다래를 담요로 감싸주고, 다래가 침실로 오지 못하게 병풍을 친 다음 잠을 잤다.
그런데 새벽 6시.
무슨 소리가 나 깜짝 놀라 눈을 뜨고 보니 다래가 머리맡에 와 앉아 있다. 도조 때문에 침대 매트리스를 내려놓고 자기 때문에 다래는 앉은 채 내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병품쯤 막는다고 못들어올 다래가 아니다.
"왜 왔어? 그냥 자지 않고?"
다래를 안아 들었다.
병풍을 제치고 일부러 침실까지 들어온 걸 보니 사정이 있는 것같다. 침실문도 거의 닫혀 있었는데 발가락을 넣어 연 모양이다.
그동안 병풍으로 가로막으면 알아서 들어오지 않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알 수 없다.


다래를 안고 마당으로 내려가 소변 보라고 내려놓았다. 몇 초 서 있다가 힘이 드는지 옆으로 누워버린다.
다시 안아들고 들어와 요에 뉘고 담요를 덮어 주었다.
"자, 편히 자."
그러고서 눈을 비비며 방으로 돌아가 다시 잠을 청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또 다래가 왔다. 머리맡에 앉아 여전히 간절한 눈빛으로 주인인 나를 바라본다.
"너 왜 자꾸 오니? 아빠, 멀리 가려면 잠 좀 자야 하는데?"
다래를 안고 마당으로 나가 한바퀴 돌았다. 바람이나 쐬라고.
그런데 심장 박동이 더 요동친다. 불안하다.
이런 상태로 지방에 내려갔다가 그 사이 일이 나면 어쩌나 싶다.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병원에 가 기운 나는 링거라도 맞혀야겠는데, 약한 심장이 그걸 견딜런지 모르겠다.
다시 담요를 덮어 뉘었다. 뉘면 눕기는 하는데, 눈은 감지 않고 하염없이 나를 바라본다.
"다래야, 아빠가 침실에 안가고 여기서 자마."
다래 요를 끌어당겨 내 머리맡으로 옮겼다. 그러고는 왼손을 다래 몸에 대고 누웠다.
막 잠이 들려고 할 때다.
다래가 벌떡 일어나더니 내 가슴으로 기어올라왔다.
"왜 그러니, 다래야?"
숨이 넘어가는 듯하다. 벌떡 일어나 다래를 안고보니 항문에서 대변이 마구 쏟아져 내 옷을 적셨다.
"이런!"
혀를 보니 하얗게 변하고 있다. 피가 안돈다는 뜻이다. 폐에 물이 차서 호흡이 안되는 모양이다.
다래를 안아 머리를 높이 하고 어깨를 두드렸다.
"다래야, 힘 내! 정신 차리고 숨을 쉬어!"
다래는 혀를 쭉 빼내었다. 눈빛이 흐려진다.
다래는 단 10초도 안걸려 아주 숨을 놓고 말았다. 심장에 귀를 대보아도 뛰지 않는다.
그동안 약으로 심장을 억지로 뛰게 했기 때문에 치명적인 순간 아예 정지해버린 것이다.
아침 7시 10분, 햇빛이 거실로 들어올 무렵이다. 다래는 갔다. 눈을 감겨주었다.
 
나는 입고 있던 추리닝을 다 벗고 욕실로 가 씻은 다음 물수건을 갖다 다래 몸을 닦았다.
그러고보니 다래는 마지막 인사를 하려고 굳이 병풍을 제치고 침실까지 왔던 것이다.
- 아빠, 저 하늘가요. 안녕히 계세요.
이렇게 인사하러 6시에 왔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도로 재우니까 7시에 다시 일어나 재차 마지막 인사를 하러 왔었다.
- 아빠, 저 진짜 가요. 더 버틸 수가 없어요.
그러다가 7시 10분에 마지막이라고 느꼈는지 내 가슴으로 뛰어들어 숨을 놓은 것이다.
그나마 주인 가슴에 안겨 가면 덜 무섭다고 생각한 건지, 그러면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건지
돌이켜 생각할수록 안타깝다.
 
그래도 고맙다. 심장판막증은 본디 폐에 물이 차 호흡곤란이 일어나 저도 괴롭고 주인도 괴로워 마지막에는 안락사를 시켜야 하는데, 그러지 않게 해줘서 정말 고맙다. 내 가슴으로 뛰어들어 숨을 놓기까지 채 10초 정도밖에 안걸렸으니 안락사보다 더 빨리 진행된 셈이다.
시신을 닦은 다음 준비한 광목이 없어 깨끗한 면수건 대여섯 장으로 염을 했다. 수건 한 장은 찢어서 끈으로 썼다. 혹시나, 혹시나 해서 심장에 손을 대보고, 코에 귀를 대보았다. 기미가 전혀 없다. 
큰 쇼핑백에 다래를 안아들고, 아내와 함께 괭이를 들고 뒷산으로 갔다. 거기 다래 엄마 도리가 잠들어 있다. 그 옆에 구덩이를 팠다. 그러고는 다래를 뉘었다. 흙을 떠넣었다. 그런 다음 큰 돌을 대여섯 개 주워다가 돌무덤을 쌓았다. 산짐승들이 건드리기 때문에 무겁지만 큰돌을 갖다 눌러놓았다. 봄이 와 찔레순이 오르고, 쑥이 쑥쑥 올라오는 4월이니 때는 잘 골랐다. 따뜻한 햇빛이 다래 무덤을 비쳐주었다.
 
다래는 아주 갔다.
내가 기른 열 마리나 되는 개 중에서 가장 머리가 좋고, 참을성이 강하고, 주인에게 충성스럽고, 그러면서도 자유를 갈구하던 아이다.
진돗개하고 맞붙을만큼 용감하기도 했다. 제발 다음 생에는 사람으로 나 더 행복하게 살기를 간절히 원한다. 다래가 있어 나는 참 행복했다. 내 세계 한 구석이 이렇게 무너져내렸다.
진주로 내려가는 길에 다래 딸 바니를 데리고 가기로 했다. 하반신마비라 소변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짜주어야 하는데, 다래도 없으니 바니는 데리고 가  마음껏 있다 올 참이다. 대신 열아홉살 늙은 도조는 집에서 엄마하고 있기로 했다.

 

- 맨왼쪽이 다래다. 다래는 15세로 가고, 뒤에 다래 엄마 도리(황금색 코커 스파니엘)는 17세에 가고, 도신(뒤의 털깎은 애)이는 16세로 갔다. 이 사진은 2003년 여름 서재마당에서 찍은 것이니 다래는 10세, 도리와 도신이는 12세 때다. 다래와 도리는 숨을 놓는 데 대략 10초 정도밖에 안걸려 주인인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다만 도신이는 여러 날 숨을 헉헉거리며 잠을 자지 못해 저도 힘들고 나도 힘들었다. 그래서 수면제와 심장을 정지시키는 약제를 시차를 두고 주사하여 안락사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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