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4/23 (수) 21:17
우리 다래가 하늘 간 지 벌써 두 주가 돼간다. 그간 바쁜 일로 다래가 남긴 흔적을 그대로 두었다가 하나둘 지워가고 있다.
자유견을 꿈꾸던 우리 다래를 통제하려고 대문에 덧대놓았던 것 치우고, 안마당과 뒷마당 사이를 막아놓았던 구조물도 치워버렸다. 물론 다래는 주인인 나를 비웃으며 유유히 드나들었다. 땅을 파기도 하고, 틈을 벌려 나가기도 하고, 안되면 사다리타고 나가기도 했으니 나만 늘 바보가 되곤한 흔적들이다.
대문 밑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걸 막느라고 대놓았던 큰 돌도 다 치워버렸다. 조그만 틈만 있으면 절묘한 포복기술로 다래는 마음껏 드나들었다. 닭장 들어가 달걀 훔쳐먹는 걸 막느라고 막아놓았던 것도 다 치워놓았다.
다래는 늘 방에 들어와 사는 걸 꿈꾸었다. 도조가 방에서 무슨 호사나 하는 줄 알고 창문이 열려 있으면 기어이 방으로 들어와 돌아다니고, 특히 여름철에 방충망만 걸어놓고 있으면 이 정도는 북북 찢어놓고 들어와 낮잠을 즐기곤 했다. 마지막 석 달을 거실에서 살았으니, 그러고도 때때로 주인하고 한 이불 속에서 잤으니 그 한은 풀고 간 셈이다. 하여튼 다래가 간 기념으로 방충망을 새로 설치하니 더운 요즘 시원해서 좋다.
다래가 가고 나니 특별히 제작한 호텔급 개장도 이젠 필요없게 되었다. 농기구를 넣어두는 창고로 쓰고 있다. 현관에서 다래하고 다래 딸 바니가 잠을 자던 고급 침대(개장 모양으로 만든 것으로 스펀지를 싼 천이 주요 성분이다.) 두 개는 겨울에는 들고양이가 와 잠을 자는 데 쓰이다가 요즘에는 닭들이 알을 낳을 때 이따금 이용한다.
다래가 가서 가장 좋아진 건 딸 바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마당이나 현관에서 살아온 바니가 다래가 거실로 들어올 때 함께 들어와 아직 안나가고 있다. 내보내려고 해도 안된다. 뒷다리를 못쓰니 내보낼 수가 없다. 다래라도 있어야 함께 지내라고 내놓는데, 이젠 아예 거실을 차지하고 산다. 바니는 실내견이 된 것이다.
다래가 먹던 병원 조제약은 쓰레기로 버렸다. 나머지 약 중에 우루사하고 비타민 E는 내가 먹고 있다. 나머지 심장약은 보관했다가 필요한 사람에게 줘야겠다. 그러고도 두세 가지 약이 더 있는데, 병원에 갔다줘봐야겠다. 쓰다만 주사기, 영양제, 전용처방사료는 바니와 도조가 먹거나 쓰고 있다. 다래가 입던 옷은 도조가 입고 있다. 단벌 신사이던 우리 도조는 이제 옷을 세 벌이나 갖게 되었다.
어저께 다래 무덤을 살피러갔었다. 바윗돌이 잘 놓여져 있었다. 그새 바람불 때마다 모인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짐승이 파헤치지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다래 무덤 주변으로 원추리 몇 포기가 자라고 있었다. 다래 무덤 옆에 있는 도리 무덤도 잘 있다. 내려오는 길에 뜻밖에도 흰 민들레가 군락을 이룬 곳을 발견하고 거기서 몇 포기 캐다 마당에 심었다.
- 기윤이가 그린 우리 강아지들(유치원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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