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8/06 (수) 10:14
우리 도조는 현재 열아홉 살이다. 꼭 18년을 묵었으니 지긋한 연세를 맞았다고 볼 수 있다.
도조는 지금 전적으로 나 혼자 돌보고 있는데 가끔 급한 일이 있으면 고등학생인 딸에게 맡기는 때가 있다.
하지만 도조는 내 딸 기윤이 품에 안기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기윤이가 태어나 자라는 17년 세월을 옆에서 지켜본 도조로서는 아마도 마음이 안놓이는가 보다. 기윤이가 뒤뚱거리며 걸음마를 배울 때부터 측은하게 바라보기 시작하더니, 도조는 기윤이를 자기가 돌봐야 할 어린 것쯤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그게 아직도 안바뀐 것이다. 그러니까 서열상 기윤이는 도조 아래이다. 개들은 서열을 엄청 중요시하기 때문에 서열이 낮은 기윤이가 서열이 높은 도조를 돌본다는 건 불가능하다.
또한 함께 저를 예뻐해주던 사람들이며(엄마, 할머니, 누나, 또 엄마 등) 친구들이(도란, 도리, 도신 등) 하나둘 떠나간 뒤로는 내게 집착하는 강도가 더 강해졌다. 그러다보니 병원에 하루이틀 맡기는 것도 어렵게 되었다. 서너 해 전부터 병원에 맡기고 어딜 좀 다녀오려고 하면 그때마다 사단이 생겼다. 병원에서 큰일났다고, 도저히 안되겠으니 데려가 달라고 사정하는 전화가 꼭 걸려온다. 게이지를 뒤흔들어버리고, 물어뜯고, 자해하고, 소리지르고, 울고불고 야단이란다. 그뒤로는 맡길 일이 있어도 맡기지 못하고 하는 수없이 자동차 뒷좌석에 태워 데리고 다닌다.
올 여름 휴가에도 어쩌는 수없이 데리고 갔는데, 1급장애견 바니까지 가는 바람에 애를 먹었다. 낮에는 너무 더워 차에 둘 수가 없어 몰래 담요로 싸 콘도 안까지 데리고 들어가고, 물놀이할 때는 돌고돌아 기어이 그늘을 찾아 주차하고, 도둑놈이야 들든말든 문 활짝 열어놓아야 한다. 사이사이 오줌 뉘러 가보고, 물 먹이러 가보고, 도무지 놀이에 집중할 수가 없다.
집에서도 그렇다. 손님이 찾아와 밖에 나가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다보면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가는데, 그러자면 바니 오줌 마려울까 걱정되고, 도조 화낼까 걱정된다. 도조는 서너 시간까지는 용서하는데, 거기서 조금만 넘으면 왜 이렇게 늦게 왔느냐며 외마디비명을 질러대고 한바탕 소란을 피운다. 그래서 모임이 길어질 것같은 날에는 아예 자동차에 태워가는 게 낫다. 자동차에 두는 건 대여섯 시간이라도 중간에 점고만 해주면 오케이다.
그런데 이 늙은개 도조를 뒷바라지 하는 일 중에서 가장 힘든 건, 사람도 늙어 망령이 나면 그러하듯이 아무데나 오줌을 갈겨버리는 것이다. 뒷다리 근육이 풀어지면서 한 쪽 다리를 들고 벽에 싸대는 능력은 상실된 지 몇 해 되었고, 암컷처럼 쪼그려 앉아 오줌을 누는데, 원래 화장실에서 잘 보던 아이가 무슨 심술이 났는지, 아니면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아 답답해 그러는지 아무데나 싸버린다. 그러면 그냥 닦을 수는 없어 옥시크린이나 소독제 같은 걸 들이붓고 닦는데, 하루에 최소 서너 번이다. 낮에 컨디션 좋으면 화장실에 가지만 밤에는 침대 바로 옆에 싸는 경우도 있고, 심할 때는, 특히 꿈을 꾸며 달콤하게 잘 때는 누운 채 싸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러면 시트까지 걷어 다 빨아야 한다.
이래도 건강하게 잘 살아주면 다 좋은데 갈수록 건강이 나빠진다. 오른쪽 턱 밑에 종양이 나기 시작해 지금은 메추리알만하게 커졌는데, 로컬병원에 가보니 양성인지 악성인지 모르겠단다. 해마루로 가보라는데, 거기 가면 최소 백만원은 나가고, 양성인들 수술할 체력이 안되고, 악성인들 치료가 불가하니 이래저래 맛있는 음식이나 먹이기로 결심했다. 전에 도조 마누라 도란이가 암에 걸렸을 때는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수백만원이나 버려가며 병원을 찾아다녔지만 결국 애만 고생시키다가 보낸 마음 아픈 경험이 있다. 이젠 안그럴란다. 하루를 살아도 저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
그런데 먹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맛있다는 사료는 다 찾아다 먹이지만 하루이틀이면 외면해버린다. 불고기도 하루면 족하고, 닭고기도 하루면 족하여 이틀 연속은 안먹는다. 캔사료 중에서 가장 맛있다는 걸 먹여도 딱 이틀간다. 아마도 종양 때문에 식욕을 잃어가는 것같은데, 몸무게는 날로 줄고, 뭘 먹여야 할지 모르겠다. 걱정이 되어 영양제를 먹이려 애쓰지만 어림도 없다. 수액이라도 맞히고 싶지만, 심장이 약해 그것도 할 수가 없다. 연구도 하고 문의도 해서 어쨌든 자꾸 먹여야 하루라도 행복한 시간을 늘일 수 있을 것같다.
내 인생에 다른 복은 많은데 인복은 없어 어떻게 정신 차리고 둘러보면 나만 남아 있곤 한다. 장애견 바니야 리콜당한 식구라 그렇다치지만, 내 손으로 입양한 아이들 중에서는 도조가 마지막이다. 내가 기르겠다고 결심하여 기르기 시작한 아이들은 천수를 다 누리고, 지금은 모두 하늘로 올라가 있다. 그래서 도조는 하루라도 한 시간이라도 더 살리고 싶다.
- 기윤이가 그린 <우리 강아지들> 도란, 도조, 밥그릇, 나머지는 꽃이다. 왼쪽이 도조고, 오른쪽이 도란이다. 도란이는 말티즈라 귀가 접히고, 도조는 요크셔테리어라 귀가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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