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8/31 (일) 21:49
어제 추석을 앞두고 금초를 하러가는데, 불가불 바니와 도조를 차에 태우고 떠났다. 바니는 차 타는 걸 좋아하여 별 문제가 없는데, 도조는 늙은 뒤로는 차 타는 걸 힘들어한다. 천안부터는 동생이 운전을 하고, 내가 조수석에 앉아 도조를 안고 가는데, 가는 내내 불편하다고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대여섯 번이나 차를 세우고 산책을 시키거나 물을 먹이며 겨우겨우 시골에 갔다.
시골에 가서도 불만이 많았다. 밤 한 시가 되도록 우는 소리가 시끄러워 게이지를 방으로 들여 옆에 놓고 자는데 역시 너무 시끄러워 같이 잠을 자기가 불가능했다. 사료를 떠먹이는데도 자꾸만 토해내고, 잠시도 쉬지 않고 잔디마당을 뱅뱅 돌기만 했다. 한 시가 넘어 도조가 편안해 하는 자동차로 보내주니 그제야 잠잠해졌다. 지켜보니 그대로 자는 듯하여 나도 그제야 겨우 잠이 들었다.
오늘 아침 여섯 시에 나가보니 도조는 편하게 자고 있었다. 바니를 깨워 오줌을 뉘고, 도조도 꺼내 잔디마당에 데려다 놓았다. 바니는 아침까지 잘 먹었는데 도조는 자꾸만 뱉어내서 거의 먹지 못했다. 일곱시에 산으로 올라가 먼저 조부모님 산소를 깎고, 그 다음에 아버지 묘소로 자리를 옮겨 예초기로 깎았다. 그런데 도조가 위태롭다는 내 말에 내내 지켜보시던 어머니가 긴급 전화를 걸어왔다. 도조가 악쓰는 소리를 해가며 몸부림친다는 것이었다.
형제들에게 나머지 일을 맡기고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가보니, 그새 어머니가 철망을 열어 도조를 마당에 내놓은 뒤였다. 도조는 그늘에 앉아 자고 있었다.
- 내놓으니까 괜찮더라.
- 난 죽는 줄 알고 뛰어왔는데.
기왕 왔으니 도조한테 다시 한번 사료를 떠먹여보았다. 티스푼으로 떠먹이는데, 그래도 잘 안먹었다. 물만 자꾸 마셨다.
세 시, 중간에 모든 걸 접고 개장, 개가방, 사료 등을 챙겨 차를 출발시켰다. 그런데 차를 타고 오는 내내 도조는 신음하고, 울었다. 신음이란 끄응끄응 앓는 소리를 내는 것이고, 울음이란 우앙하고 진짜 큰소리로 우는 것이다. 여간 아파가지고는 울지 않는 법인데 도조는 거의 십분 간격으로 울어댔다.
도조를 달래보려고 어깨위에 올려놓기도 하고, 안아보기도 하고 갖은 애를 쓰는데 잘 안되었다. 아무래도 오늘 중으로 무슨 일이 나는 게 아닌가 싶어 병원으로 직행할까도 생각했다. 이렇게 고통스러워 한다면 내일까지 참을 게 아니라 오늘 안으로 안락사를 시키는 게 나을 것도 같았다.
그러다가 뭔가 이상한 걸 발견했다. 도조가 눈을 감지 못하는 것이었다. 무슨 일인지 알 순 없으나 눈을 거의 깜박이지 않았다. 눈병이 난 모양이었다. 깜박이질 못해 그러는 게 아닌가 해서 빨간신호등에 걸릴 때마다 도조의 눈을 감기고, 부드럽게 비벼주었다. 그러기 시작하자 신음은 계속되지만 울음은 그쳤다. 그래서 우리집으로 오는 45번 국도에 들어섰을 때부터는 도조가 신음도 잘 내지 않게 되었다. 병원으로 직행하려던 나는 뭔가 짚이는 게 있어 바로 집으로 갔다.
그러고는 도조 전용 안약을 찾아 두 눈에 한 방울씩 넣어주었다. 그렇게 연속해서 두 차례 했더니 도조는 신음을 내지 않았다.
십여분 쉬게 한 다음 캔을 하나 꺼내 야쿠르트 10씨씨와 함께 믹서에 갈았다. 그러고 주사기로 먹이니 잘 먹었다. 아침에 티스푼으로 먹일 때는 내내 뱉어내더니 이번에는 꿀떡꿀떡 받아먹어 캔 하나를 거의 다 먹었다. 하루 급식 목표량이 캔 한 개 반인데, 저녁으로만 한 개를 먹어준 것이다.
눈이 편해졌는지, 또 배가 불러서 그런지 도조는 제 침대에 누워 편히 잠들어 연속으로 세 시간이나 잤다. 대소변도 보았다.
난 오늘이나 내일 중으로 도조가 갈 줄 알고 이것저것 준비를 했는데, 적어도 며칠은 더 살 것같다. 하루를 더 살더라도, 한 시간을 더 살더라도 애쓰는 데까지는 써봐야겠다. 난 도조가 우는 것이 통증을 호소하는 것이고, 그것은 목에 난 종양 때문이라고 지레짐작하고 안락사를 생각했는데, 오판이었다. 눈에 눈곱이 너무 끼어 눈이 잘 안감겨지자 그곳에 통증이 왔던 모양이다. 그걸 몰라 그 고생을 시킨 걸 생각하면 참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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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일 새벽 1시, 도조가 다시 신음하기 시작했다. 무작정 거실이며 이 방 저 방을 쏘다녔다. 물이 먹고 싶어 그런가 하여 물을 주면 외면하고, 화장실이 급한가 하여 데려다 줘도 그냥 걷기만 했다. 안약을 다시 넣어주었지만 효험이 없었다. 그러기를 30분 동안 따라다녔다.
지켜보니 한번 토하고, 두번째 또 토하려 하길래 이번에는 췌장에 부담이 오는가 싶어 저녁에 먹이다 조금 남은 사료를 주사기로 두 번 먹였다. 20씨씨다. 그러고나니 신음이 사라지고 또 누워 자기 시작한다. 아마도 췌장 쪽 기능에 문제가 있는 듯하다. 병원에서는 딱히 쓸만한 약이 없다고 한다. 이렇게 눈치껏 임시방편으로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 아직 목에 난 종양 때문에 통증이 온다는 뚜렷한 증거가 없어 그나마 다행이다.
한때는 그토록 건강하여 뜀박질도 잘 하고, 싸움도 잘 하고, 인간의 언어를 알아듣는 게 많아 귀염도 받던 우리 도조가 이제 열아홉살이라는 노년이 되자 영락없는 노견이 돼버렸다. 오줌똥을 함부로 하는 때가 잦고, 요구사항이 너무 까다롭다. 걸핏하면 노여움을 탄다.
저하고 나하고 살아온 19년 인생을 돌이켜보면 힘든 일보다 즐거운 일이 더 많았다. 기억을 할런지 모르겠다. 처음 입양할 때 낯선 집안에 들어오기를 거부하던 모습, 목숨처럼 따르던 엄마를 이혼 후 보지 못해 헤매던 모습, 외할머니한테 가 도란이와 둘이 산 2년, 새엄마의 구박을 받던 끝에 기어이 사랑을 쟁취해낸 일 등 도조 인생에도 일이 아주 많았다. 도조는 지난 19년이 늘 제 세상이었다. 그렇게 요구했고 대부분 관철되었다. 도조가 외할머니댁에 가 산 2년이 나하고 떨어져 지낸 기간이었는데, 그때도 난 한 달에 한번씩 도조와 도란이를 면회하러 가 잠시나마 산책도 하고, 안아주고, 먹을거리를 주기도 했다. 언제던가, 할머니가 어딜 가 빨리 오지 못하고, 난 문앞에서 기다리는데 도조와 도란이가 아빠가 온 걸 알고 마구 울부짖어 동네 창피한 일이 있었다. 그 안타까운 절규가 아직 귀에 선한데, 도란이는 이 세상에 없고, 도조도 이제 가려고 한다. 그 긴 추억을 내게 다 떠넘기고 저희들은 편안히 떠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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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일 아침 여섯 시, 도조가 또 일어나 울면서 돌아다닌다. 못본 척하려 애썼지만 기어이 일어나고 말았다. 새 캔을 따 믹서기에 사료를 넣어 갈았다. 그걸 대여섯 번 주사기로 먹이니 또 잠잠해진다. 그렇게 잠들어 11시가 넘은 이 시각까지 단잠을 자고 있다. 혹시 하고 관찰하는데 복부가 일어났다 가라앉았다 한다.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내려 하늘 가는 날로 좋은 날이 아니다. 오늘은 혹시 상황이 악화되더라도 산소호흡기에 링거를 달더라도 보내지 않을 것이다. 덕분에 누가 보자고 해도 오늘은 만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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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일, 아침이 되었다. 여섯 시에 일어나 맨먼저 하늘을 보았다. 오늘 날씨가 궁금하다. 도조가 하늘로 가는 날인데, 날씨가 맑고 해가 나야지 안그러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맑은 날을 기다려야 한다. 혼자 가는 길, 날이라도 좋아야지 바람불고 비내려서야 어찌 보내랴.
어젯밤 도조는 지옥의 고통을 견뎌야 했다. 신음은 그치지 않고 통증을 호소하는 외침을 거의 1초 간격으로 내뱉았다. 지금 이 순간도 괴로워하고 있다. 어제 낮에는 두세 시간씩 곤히 잠을 자더니 밤부터는 잠도 못잔다. 통증이 의외로 심한 듯하다. 약상자를 뒤져봐도 우리집엔 수면제, 기분조절제, 소화제, 항생제 따위나 있지 진통제가 없다. 있으면 좀 먹이고 싶을 만큼 도조는 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 대신 아파줄 수도 없고, 아프지 않게 해줄 방법도 없다. 아빠 여깄다, 울지 마라, 아무리 말해봐야 도움이 되지 않는 모양이다.
도조가 잠을 자지 못한 만큼 나도 자지 못했다. 어제도 서너 시간 잔 듯한데, 오늘은 두시간도 채 못잔 듯하다. 통증을 줄여보려고 눈에 안약을 자주 넣어주고, 묽은 사료를 15씨씨 정도 수차례 먹였다. 사료를 주면 잠시 진정되는 듯하지만 결국 통증을 호소하는 강도는 여전하다. 도리가 없어 도조가 좋아하는 자리인 내 어깨에 올려놓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마당을 배회하곤 했다. 다행이 시골이라 밤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어 남부끄러울 일도 없다.
오전에 구름이 걷히고 잠시 해가 난다니, 그 틈을 타서 도조를 하늘로 보내야겠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조를 더 살릴 가망이 없고, 하루이틀 더 살린들 그 고통을 도조더러 참으라고 못하겠다. 그보다는 수면제를 주사하고, 심장근육을 차츰 멎게 하는 주사제를 맞는 것이 도조에게도 더 좋을 것이다. 광주에 애견 전용 화장장이 있다니 그리 갈 것인지, 아니면 애들이 많이 모여 있는 우리집 공동묘지로 갈 것인지 아직 결심을 못했다. 도담, 희동, 도롱, 도반, 도신, 도란, 도리, 다래, 그리고 죽었겠지만 뭔가 잘못됐을 머루, 심바, 도스까지 그간 참 여러 아이들을 보냈다. 이 아이들 이름을 적을 때면 언제나 그리움이 사무친다. 해마다 부처님오신날이 되면 이 아이들 이름을 죽 적어가며 회상하는 기쁨이 있었는데, 내년부터는 도조 이름이 더 들어가야 할 것같다. 도조는 19살이 되도록 더 많은 기쁨을 주고 가게 되니 추억할 일도 많을 것이다. 어디를 가든, 꼭 사람이 되어 환생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오늘, 도조가 가는 시각에 도조가 가장 사랑하던 도란이가 와줬으면 좋겠고, 도조를 아끼던 도롱이가 와줬으면 좋겠다. 다른 아이들도 다 같이 와서 도조가 가는 순간 놀라지 않도록 거들어주었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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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가 되어 도조에게 마지막으로 믹서로 간 사료를 20씨씨 먹였다. 통증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는 것이다. 그래도 도조는 울었다.
먼저 살던 동네까지 드라이브를 했다. 도조는 아무것도 모르고 울기만 한다. 하늘을 보니 구름이 있기는 하지만 간간이 햇빛이 보이고, 날이 밝다. 하늘 가기에 그다지 나쁜 날은 아니고, 조금만 하늘로 솟구치면 쨍쨍 내리쬘 좋은 날이다.
- 도조야, 가자. 이 길이 어떤 길인지 아빠도 모르지만, 아프지는 않은 거다. 도란이 있고, 도리 있고, 다래 있는 세상일 거야.
내가 쉼없이 속삭이며 말했지만 도조는 아프다고 울기만 한다.
병원에 도착하여 준비를 부탁했다. 그리고 먼저 계산을 했다. 도신이 보낼 때 눈물이 쏟아지는데도 결제를 하느라 버벅거린 걸 생각하면 그런 실수를 또 해서는 안된다.
도조를 안고 제 머리에 내 얼굴을 비볐다.
- 도조야, 이제 가는 거다. 놀라지 말고 편안히 가거라.
의사가 먼저 링거용 주사기를 꽂더니 이어 마취제를 주사했다. 도조가 조용해졌다. 숨쉬는 소리만 가느다랗게 들린다.
- 1분 정도 있다가 나머지를 주사합니다.
도조를 안고 병원 밖으로 나가 한바퀴 돌다 들어왔다. 하늘을 다시 바라보니 괜찮다.
마지막 주사를 했다. 그리고 도조를 패드 두 장에 감싸 안고 나왔다. 눈물이 비오듯한다. 저하고 나하고 맺은 19년 인연이 오늘 오후 3시 25분 막을 내렸다.
소식을 듣고 조옥주 선생과 남편인 조 목사님께서 서울서 내려오셨다. 대마초로 만든 한지로 염을 해놓고 나니 이 분들이 들어오셔서 한참 얘기를 나누었다. 난 아직 슬픔이 가시지 않았는데 손님들이 오시니 그 순간으로 슬픔은 끝이다.
이어서 용인 친구들이 찾아왔다. 축하한다고들 말했다. 그간 병든 도조를 챙기느라 밖에 잘 다니지 못하고 불편했던 걸 가리켜 위로삼아 해주는 말이다. 웃었다. 기윤이도 와서 오빠, 오빠 하면서 슬퍼했다.
이날은 도조를 거실에 두었다. 향도 피웠다. 일본국보1호인 반가사유상 사진도 두고, 성경도 두었다. 또 금강경과 다라니 음악을 들려주었다. 도조가 하늘 가는 길이 편안하기만을 바랄 뿐 다른 이유가 없다.
이튿날 새벽, 여섯 시, 동네 어른들이 돌아다니지 않는 틈을 타 도조를 안고 연장을 들고 뒷산으로 올라갔다. 풀이 너무 우거져 가기가 힘들었다. 중간에 묻을까 하다가 그래도 도리와 다래가 있는 곳까지 숲을 헤치고 갔다. 너무 이른 새벽이라 분위기가 음산했지만 도조를 생각하여 용기를 냈다. 다래와 도리가 묻혀 있는 곳에 이르니 다행스럽게도 잔풀조차 없이 매끈하다. 그 중간에 구덩이를 팠다. 괭이질하는 소리가 너무 커서 구덩이를 크고 깊게 파지는 못했다. 30센티미터 가량만 파고 도조를 뉘었다. 동쪽으로 머리를 두었다. 그러고서 흙을 덮었다. 산짐승이 뒤적거릴까 걱정되어 큰 돌을 가까스로 굴려다가 도조가 묻힌 분을 눌러놓았다. 그러고서 내려왔다. 동네사람들이 있을까봐 이리저리 망을 보면서 내려와 기윤이를 깨웠다.
- 기윤아, 학교 갈 시간이다. 어서 일어나.
기윤이가 눈을 뜨고는 "도조는?" 묻는다.
- 지금 묻고 오는 길이다.
기윤이는 아무말 안하고 머리 감으러 화장실로 들어간다.
이렇게 끝나는 거다. 전날 목사님 일행하고 금강경 얘기를 하면서 내가 이렇게 말했다.
- 내가 우리 도조에게 금강경을 들려주는 것은 이승의 집착을 벗고 하늘로 잘 올라가라는 뜻이지요. 불가에서는 누가 죽으면 꼭 금강경을 틀어주는데, 그뜻이 아주 간단해요. 금강경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개뿔, 인생이 뭐 별거야?>지요.
그렇다. 개뿔, 인생이 뭘 별건가. 살 때 순간순간 보람 있으면 되는 거지. 또 보람이 없으면 어때. 그냥 의지대로 살아가면 되지. 또 의지가 없으면 어때. 흐르는대로 흐르면 되지.
그래도 희망한다. 도조가 부디 다음 생에서는 사람으로 태어나 큰 깨우침을 얻고, 어서 극락왕생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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