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9/27 (토) 14:20
오늘 아침은 특별히 기억해야 한다. 우리 장애견 바니가 마침내 나를 따라 동네 산책에 성공했다. 술취한 놈처럼 갈짓자로 휘청거리며 걷기는 했지만 내가 가는대로 잘 따라다녔다. 나는 평소 산책하는대로 앞만 보고 걸었다. 뒤에서 바니가 비틀비틀 걷든 쓰러지든 돌아다보지 않고 훠이훠이 걸어나갔다. 한참 가다 그제야 뒤를 돌아다보니 바니가 씩씩하게 허청걸음으로 뒤를 따르고 있었다. 기쁘다. 체중이 줄면서 걷는 게 좀 편안해진 모양이다.
저런 바니를 이 달 안으로 누군가에게 입양을 보내라고 아우성이어 알아보고 있다.(아우성인 주체가 대체 누구람.) 송전 아는 사람 집에 사료비, 진료비를 대는 조건으로 타진해 보았는데 쾌히 길러주마고 화답해왔다. 보낼지 안보낼지는 내 마음 나도 모르겠다. 아직 소변 보는 게 시원치 않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전보다는 많이 나아져 조금씩은 소변을 보는데, 이게 싸는 건지 누는 건지 구분이 안된다. 어쨌든 방광에 꽉 차 있는 증세는 없어진 듯하다. 그래도 소변 배설 기능이 돌아왔다는 확신이 있어야 바니를 보내지 그러기 전에는 내가 잡고 있어야 한다. 누가 이런 장애견을 나 돌보듯이 돌봐주겠는가. 차라리 정상견이고, 예쁘고, 성질 착한 애라면 좋겠는데 우리 바니는 그 어느 것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가서 애들이라도 물면 어쩔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오줌 짜주는 걸 게을리해 죽기라도 하면 어쩌나도 걱정이다. 이처럼 내가 바니를 함부로 하지 못하는 것은, 이 녀석 핏속에 들어있는 제 엄마 다래, 제 아빠 도반이, 제 할머니 도리, 제 할아버지 희동이, 증조할아버지 도담이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우리집을 거쳐 하늘로 간 아이들의 절반 정도의 피가 이 놈 몸 속에 흐르고 있어서다. 물론 그렇지 않더라도 내가 바니를 어째버릴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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