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07 (화) 13:15
집을 떠나 멀리 가 있다보면 누군가가 그리워 얼른 돌아오고 싶은 생각이 날 때가 많다.
어제 갑자기 누군가가 그리워 어서 집에 돌아갈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퍼뜩 놀랐다.
그동안 늙고 병든 개 도조가 집에 있어, 불을 켜놓지 않은 깜깜한 방에 앉아 무서움을 타면 어쩌나 하여 부랴부랴 달려가곤 했는데 이젠 그럴 일이 없어졌다. 그 나약한 도조만 생각하면 숨을 헐떡이면서라도 집에 돌아가곤 했는데, 개새끼 때문에 엉덩이 들썩거리는 꼴좀 보라는 친구들의 비아냥도 달콤했는데, 이젠 그러지 않아도 된다.
하나 남은 바니는 디스크 증세가 차츰 호전돼가는 중이라 대략 6시간 정도는 혼자 있을 수 있다. 게다가 바니 집이 밖에 있다보니 불을 켜주고 안켜주고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낮에는 지나가는 동네사람들 쳐다보느라 바쁘고, 밤에는 고양이 들락거리지 못하게 감시하느라 바쁘기 때문에 바니는 내 손길이 많이 필요하지는 않다. 그런만큼 저하고 나하고 애정이 두텁질 않다.
오늘 가을 햇빛이 워낙 좋고, 산빛이 조금씩 붉어지길래 뒷산에 올라가 우리 애들 셋이 나란이 잠들어 있는 곳을 찾아갔다.
그 사이 아직 간 지 49일도 안된 도조를 위해 컴퓨터에 도조 사진을 올려놓고, 금강경 독송을 틀어놓았다.
가면서 우리 닭들이 입양가 있는 집을 들러 저희들끼리 노는 걸 잠시 구경했다. 행복하게 살고 있다. 내가 기를 때보다 더 좋은 조건에서 잘 사는 걸 보니 마음이 편하다. 길을 따라 올라가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무슨 풀이고간에 씨앗을 여물게 하느라고 머리를 쳐들어 햇빛을 조금이라도 더 받느라 정신이 없다. 곤충들도, 산짐승들도 바쁘다. 겨울준비하느라고 저렇게들 부지런을 떤다. 어리석은 이 인간만이 시간이란 본디 바다처럼 넘치고 넘쳐 무한정 쓸 것처럼 착각하여 이렇게 여유작작이다. 정해진 시간이 비늘처럼 벗겨져 나가건만 내 시간이 닳고 있다는 걸 실감하지 못한 채 아까운 줄 모르고 이렇게 게으르다.
도리, 다래, 도조 모두 커다란 바위를 머리에 이고 땅속에 누워 잠들고 있다. 도리는 아마 탈골이 되어 뼈만 남았을 것이고, 다래는 거의 그렇게 됐을 것이고, 우리 도조는 아직 썩고 있거나, 어쩌면 땅벌레들이 가득 기어들어 우리 도조를 파먹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한가로이 보인다. 노오란 가을 햇빛이 단풍이 막 들기 시작하는 수풀 속으로 흘러들어온다. 아, 이 아이들 무덤은 이렇게 둘러보는데 저 멀리 용수마을 뒷산에 묻혀 있는 도담이, 희동이, 도롱이, 도반이, 도신이는 너무 멀다는 이유로 자주 가보지도 못한다. 다들 탈골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뼈까지 썩어 없어졌을지도 모른다. 빨리 썩어 우주로 흩어지라고 될 수 있는대로 얕게 묻었으니까. 비행기를 타게 되면 하늘 높이 오르는 구름을 보면서 꼭 우리 애들 얼굴 같구나 하던 게 생각난다. 어떤 구름은 도담이 같고, 어떤 구름은 도조 같다. 비행기에서 바라보는 구름은 입체적이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형상을 찾기가 참 쉽다. 애들 생각만 하면 이렇게 한없이 뻗어나간다.
가고 싶은 곳이 있다는 것, 갈 곳이 있다는 것.......그래서 마음이 움직이는대로 언제든지 가볼 수 있다는 게 행복 아닌가 생각하면서 우거진 숲길을 거닐었다. 마음같아서는 우리 아이들이 있는 곳 그 어디라도 당장 가보고 싶지만, 그런 데가 있었으면, 저승이라는 데가 제발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어리석은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천당이라는 곳이 있었으면, 내세가 있었으면, 환생이라는 게 있었으면, 다 우리 아이들 때문에 생기는 집착이다.
- 아빠, 어디 가지 말고 집에 꼭 있어. 나 시험 끝나는대로 갈 거야.
며칠 전 서울로 이사간 딸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집에 온다고 아침부터 예고 전화를 걸어왔다. 내 딸에게도 찾아가야 할 아빠가 있다는 이 작은 기쁨을 잃게 할 수는 없다. 나도 보고싶은 딸이 있기 때문에 꽃이 꽃으로 보이고, 우스울 때 웃을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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