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의견이 다른 사람을 가리켜 빨갱이라고 부르는 못된 풍습이 있다.
지난 해, 용인고려백자연구소를 세워 고려백자 복원 재현 사업을 내 개인비용으로 벌였는데, 시청 과장으로 있는 공무원 한 놈이 우리 연구소 사람들을 가리켜 '빨갱이들'이라고 말했다 하여 내가 벌컥 화를 낸 적이 있다. 언제고 응징할 것이지만, 우리 사회가 대체로 이런 수준이다. 박근혜를 반대해도 빨갱이, 새누리당 후보를 안찍어도 빨갱이라고 하는 수준이다.
빨갱이의 역사
- 친일파가 독립운동가들을 가리켜 빨갱이라고 덮어씌웠다
빨갱이는 공산주의자 혹은 사회주의자를 가리키는 은어다. 미국에서는 Red라 하고, 일본에서는 赤色分子라 하고, 우리는 빨갱이라고 할 뿐이다.
해방 이전, 그러니까 볼셰비키 혁명 때 소련공산주의자들이 붉은 깃발을 휘두르며 나타날 때부터 이 은어가 나타났다. 중공이나 북한 역시 유달리 빨간색 깃발을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전세계가 이의없이 빨갱이란 말을 쓴 것이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1945년 8월 15일 이후 본격적으로 쓰인다. 그 이전에는 오늘날과 같은 의미의 빨갱이로 쓰이지 않았다.
1945년 8월 15일, 전쟁범죄자인 히로히토가 항복선언을 한 뒤 조선총독부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으로 빠져든다. 일단 여운형을 앞세워 건국준비위원회를 만들게 하여 숨을 돌린 뒤 이들은 9월 8일, 미군이 들어오기까지 25일간 최후의 공작을 벌인다.
북쪽에서는 소련군이 만주를 점령하고 이어 원산항을 거쳐 파죽지세로 밀려오는 상황이었다. 그쪽 일본군이나 일본인 관리는 모조리 체포되어 포로수용소로 보내졌다는 보고가 잇따랐다. 조선총독부나 용산주둔 제17방면군사령부는 패닉에 빠졌다. 그래서 처음에는 여운형을 앞세운 건준에 모든 권한을 넘기고 목숨을 보장받으려 했지만, 곧 소련과 미국이 38도선을 경계로 한반도를 분할했다는 '기쁜 소식'을 듣게 된다. 즉시 건준에 준 권한을 회수한다.
이제 조선총독부와 제17방면군사령부는 한숨을 돌리고, 오키나와에 있다는 한국점령 예정 미군들을 수소문해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항복할까요로 시작된 전문은 이후 수시로 오간다. 이 과정에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은 대부분 적색분자라서 미군이 덮어높고 들어오면 큰일난다, 여긴 적색분자 천지다, 이렇게 위협한다.
결국 일본인들의 계략에 속은 미군은 인천항을 통해 들어오기 전 우리 국민들에게 준동하지 말라는 엄청난 양의 경고 삐라를 뿌려댄다. 그러고도 불안해 일본군을 배치하여 조선인 접근을 막았다. 일본총독부가 인천항 주변에는 빨갱이들이 득시글거리니 조심해야 한다고 이간질했기 때문이다. 때마침 2차대전이 끝난 뒤의 미국에게 가장 두려운 적은 바로 소련이었고, 그것은 곧 빨갱이였으니 일본과 독일과 미국은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일본총독부는 남한에는 무수한 빨갱이들이 있어 언제 어디서 폭동이 일어날지 모른다며 귀가 아프도록 꼬드겼다. 이 결과 미군은 한국인 전체를 빨갱이 보듯이 두려워했고, 이때문에 일본 총독부 관리들을 귀국시키지 않은 채 고문이라는 직책을 주어 계속 근무하게 했다. 그러면서 일본 관리 출신의 조선인은 믿어도 된다면서 이때부터 친일경찰, 친일관료를 대거 뽑아 쓰게 된다.
아울러 북한에서 지주로 몰려 월남한 사람들이 서북청년단을 구성했는데, 이들은 진짜 빨갱이에게 피해를 입은만큼 남한 내 빨갱이 소탕에 앞장서서 제주 4.3사건을 일으키고, 여순반란사건에서도 군대와 경찰 이상의 막강한 무력을 사용한다. 또 이들과 함께 북한에서 내려온 평양 등 지역의 기독교 목사들이 빨갱이에게 밀려 내려오다 보니 이들 또한 빨갱이에 대한 원한이 깊어 이들 역시 이승만 정권에 편승하여 빨갱이 소탕 이념을 제공하는 한 축이 된다. 오늘날에도 기독교가 터무니없는 골수보수세력을 자처하는 이유다.
이것이 우리나라 빨갱이의 역사다.
더구나 이승만이 친일관료와 일본군으로 정부와 군을 구성하고, 이어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가 일본군 위주로 군대와 관료를 뽑아쓰면서 이 나라는 친일파를 비난하면 빨갱이가 돼버리는 이상한 수준까지 변질됐다. 실제로 육이오전쟁 때 38선에서 마주친 남북 지휘관을 보면 북한군은 대부분 독립군 출신이고, 남한군은 거의 전부가 일본군 출신이었다.
일본관료, 일본군 출신들은 미군이 부추기기도 했지만, 자기들이 살아남기 위해 빨갱이를 자꾸만 만들어내야 했다. 누구든지 마음에 안들고 거스르면 빨갱이로 몰아 죽이는 게 가장 간편했다.
따라서 누구든 빨갱이라고 터무니없는 모략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놈이 바로 민족의 반역자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물론 더러 진짜 빨갱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독재에 굴종하지 않는다고, 친일하지 않는다고 아무나 빨갱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손가락을 잘라버려야 한다.
* 아래 사진들은 반대자를 빨갱이로 지목하여 난동을 부리는 사진들이다.
* 단 실제 빨갱이도 더러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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