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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힘/애견일기4 - 별군

별군, 수술하러 갔다가 그냥 돌아오다

병원 가서 가장 황당한 것은, 더이상 치료할 게 없으니 집에 돌아가 아이에게 맛있는 것 많이 주라는 수의사의 최후진단을 듣는 일이다.

난 이런 말을 여러 번 들었다. 3개월 정도... 6개월 정도... 아마 이 달 넘기기가... 

그렇게 했다. 도저히 어쩔 수 없다는 불가항력 앞에서 아이를 가슴에 안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언제나 천근만근이었다. 더구나 그나마 때가 되어 시신을 안고 걷는 걸음은 더 무겁다.


우리 별군이는 경추장애견이다. 이제 13개월령으로 겨우 狗를 떼고 犬이 된 지 엊그제 되는 아기에 불과하다.

경추 수술 뒤 어쩌면 평생 주저앉은 채 살지도 모른다는 카페 식구들의 우려를 씻고 벌떡 일어났다.

잔디밭에서는 바람처럼 달리기도 했다. 그런 중에 이따금 몸을 구르고, 머리를 처박는 일이 종종 생겼다. 잘 서있다가도 주저 앉을 때가 있어서 유심히 살펴보았다.

뒷다리가 종종 꺾여 발걸음이 부자연스러울 때도 있어, 하는 수없이 우리 아이들이 주로 이용하던 로컬 병원에 가 진단을 받아보니 슬개골 3기라고 하여 수술을 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별군이는 내가 주인이 아니라 해피엔딩레스큐(다음카페) 소속이라서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해, 일단 연계병원으로 지정된 구로지구촌병원으로 가서 수술하기로 했다. 누구에게라도 분양하려면 슬개골 수술은 해서 보내야겠다고 결심하여 별군이를 안고 갔다. 수술비는 내가 부담하기로 했다. 그래야 분양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어제다. 마침 눈이 내려 별군이는 멍멍 짖어가며 잔디밭을 뛰어다녔다. 그렇게 기분 조절을 한 다음 병원까지 먼 길을 달려갔다. 별군이는 어디 놀러가는 줄 아는지 가끔 아빠 손가락을 내놓으라고 하여 조금씩 물어볼 뿐 두려움을 보이지 않았다.

예상으로는 3-4일 입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며칠 두고갈 요량으로 병원에 앉아 대기하는데 별군이는 벌벌 떨면서, 아빠더러 손가락 좀 내놓으라고 하여 잘근잘근 물었다. 지구촌 병원에 여러 번 왔으니 올 때마다 아팠다는 걸 기억하는 것이다.

- 병원 대기 중 셀카


마침내 진단을 하는데, 이런, 슬개골이 아니란다.

"요즘 병원 운영이 어렵다보니 과진단을 하는 수의사가 더러 있어요. 확실히 아닙니다. 멀쩡한 다리를 수술하면 큰일납니다."

"그럼 얘 다리가 왜 그래요? 왜 쓰러지고 넘어지고 다리가 꺾일까요?"

"경추장애 후유증입니다. 신경전달이 종종 끊어지는데, 그때 그런 일이 생기지요."

"그럼 뭘 먹이지요? 좋은 약 없나요?"

"없습니다. 맛있는 것 먹이면 됩니다."

"그럼, 이러다 주저앉을 수도 있겠네요?"

"예, 허리가 더 솟을 수도 있고요."

별군이는 잘 생긴 얼굴과 달리 허리가 불룩 솟아 있다. 옷을 입히면 잘 안보여서 별군이가 외출할 때면 꼭 옷을 입힌다.

"지금도 분양이 안되는데, 주저앉기라도 하면 별군이는 영영 분양이 안되겠네요?"

"아마... 그렇겠지요."

"해줄 수 있는 조치가 없습니까?"

"예, 현재로선 아무것도 없습니다."


별군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한숨이 나왔다.

주저앉는 것쯤이야 문제가 없다. 10년간 앉은뱅이로 산 바니도 똥받아내고, 오줌받아내며 길렀는데, 그에 비하면 별군이는 양반이다. 더 젊은 주인 만나 더 행복하게 살 기회가 없을 것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잠을 자는데, 내가 오른쪽으로 누우면 재빨리 돌아서 다시 내 가슴 앞에 쿵하고 엉덩이 들이밀며 앉고, 왼쪽으로 누우면 또 한바퀴 돌아 다시 쿵하고 제 몸을 던진다.

별군이를 재우기 전에는 스틱을 내주어 이빨 가려운 걸 어찌 해보라고 하지만, 스틱쯤 후딱 먹어치우고는 기어이 아빠 손가락 내놓으라고 짖어대어 삼사 분 씹어야 겨우 잠이 든다. 누나는 이런 별군이 습성 때문에 잠 못이룬다고 아예 데리고 자질 않는다. 아빠만 별군이의 더러운 습관을 지켜준다. 아야, 아야 하면서 물려줘야 별군이가 빨리 잠든다.

저와 내가 이리 뒤엉켜 사는 게 운명이라면, 어쩔 수없다. 굳이 장애견을 골라 기르는 내가 감당해야만 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