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막을 건너는 사람은 별을 사랑해야 한다
동자는 곧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사막의 뜨거운 열기, 달아오른 불모래를 삼켜버린 어둠의 큰 가슴을 동자는 찬찬히 밟으며 나아갔다. 어둠과 별만이 동자의 외로운 여행을 지켜보았다.
동자는 서쪽을 향해 부지런히 걸어나갔다. 망망대해 같은 사막 에서 그것 말고 동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할아버지가 아직도 등을 밀어대고 있지는 않았다. 그리고 누가 잡아당기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동자는 부지런히 길을 갔다. 멈추지 못하기 때문에 가고 있는 것이다.
동자의 발길이 닿는 곳이면 어디나 길이 되고, 또 어느 쪽이나 앞이 되었다. 발자국이 직선을 그리든 곡선을 그리든, 동자는 오로지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했다. 설사 온 곳으로 다시 간다고 한들 누가 그것을 틀렸다고 할 것이며 누가 잘못했다고 탓할 것인가.
동자는 고개를 돌려도 돌려도 하늘에는 똑같이 별들이 반짝거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무리 다른 세상에 이르더라도 동자에게 낯익은 이 별빛들이 항상 반짝일 거라는 생각이 들자 동자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래서 동자는 별들과 친하게 사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계속 별을 올려다보았다.
“할아버지 대신 별이 나를 지켜주는구나?”
“우리들 별은 먼먼 시절부터 네가 이 사막에 오기를 기다려 왔단다. 벌써 수백 년도 더 지났을 거야. 너를 기다리다 지쳐서 죽은 별도 있단다.”
“왜 나를 기다려?”
“네가 심심해 하니까.”
별들은 다투어 말했다. 그들은 사막이 생겨난 이래 쭈욱 사막을 지켜보았다고 했다. 또 어떤 별은 백 년 전의 이야기라는 둥 천년 전의 이야기라는 둥 하면서 신비스런 사막의 옛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동자는 별들의 수다스런 입질을 계속하게 하려고 고개를 하늘로 쳐들고 걸었다. 어느새 동자의 하얀 옷은 파란 별빛으로 물들었다.
“별들아. 내 길이 어디에 닿아 있어? 난 어디로 가는 거야?”
“어디든지.”
“난 천주라는 동자를 찾아야 해.”
“천주 동자는 어디든지 있어. 네 길이 닿는 곳이면 어디나. 사람들은 참 어리석어. 길이 어디 있을까 온종일 찾아다니기만 하지. 희망은 그렇게 이루어지지 않아. 길은 아무 데에서나 찾을 수 있어. 세상은 너를 위해 있는 거야. 너 말고 누가 있겠어? 네게는 너밖에 없는 거야. 네가 원하면 그대로 되는 거야. 아무도 그것을 막지 못해.”
동자는 온 몸이 피곤하여 더 이상 독백할 수 없었다. 더구나 새벽이 되기 시작하면서 별빛이 희미해졌기 때문에 그동안 잊어 왔던 외로움이 밤하늘에 번지는 아침 햇살처럼 슬며시 되살아나고 있었다.
동자가 한잠을 자고 일어났을 때 동자의 살덩이는 손을 대면 금방이라도 묻어날 듯이 익어 있었다. 사막에 해가 뜬 것이다. 밤새 얼었던 몸이 지금은 반대로 너무 뜨거워 빨갛게 익어갔다.
“난 이만큼이나 걸어 왔어. 그렇다면 앞으로도 이만큼은 더 걸을 수 있어. 그 다음에도 또 그 다음에도... 또 그 다음에도... 나는 이 사막을 건널 수 있어.”
동자는 넘어지고 뒹굴고 주저앉으면서도 발을 앞으로 앞으로 한걸음씩 내디뎠다.
한 달이 지나자 발톱이 아홉 개나 빠져 왼발의 새끼발톱만이 남아 걸을 때마다 달랑거렸다. 발바닥은 뼈가 드러나고, 모래에 엉킨 살가죽은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갈 듯이 가까스로 매달려 있었다.
전갈이 기어오르고 독사가 혀를 날름거리며 다가오기도 했다.
어느 날 아침, 동자는 사막 위로 치솟아오르는 아침 태양을 보고는 더이상 용기를 내지 못했다. 태양은 아침마다 어김없이 떠올라 동자를 서쪽으로 밀어댔다. 그러면서 조금도 지치지 않고 날마다 “나를 따라와.” 하면서 서쪽하늘로 먼저 달려갔다. 그런 태양을 보고 동자는 풀이 죽었다.
“태양이 정말 미워.”
발톱이 모두 빠져버린 발, 모래가 한 줌이나 들어가 서걱거리는 왼쪽 눈. 이제 오른쪽 눈마저 모래가 차서 눈을 제대로 뜰 수 없다. 왼쪽 팔에서는 손가죽이 다 물러서 핏물이 흘러내렸다. 혓바닥이 입 천장에 붙어 숨도 쉴 수 없다. 머리카락은 어디로 갔는지 한 올도 남아 있지 않다.
“마음대로 하라지. 내가 오고 싶어서 온 게 아니니까. 날 이렇게 계속 내버려 두면 정말로 죽어 버릴 거야. 그래서 이런 길을 가게 한 할아버지를 슬프게 해 줄 거야. 날 더 이상 힘들게 하지 마. 정말로 죽어버릴 거야. 난 아무리 힘들어도 나 혼자 죽을힘은 있어. 마음대로 해. 마음대로 하라지.”
드디어 결심이 섰다. 도저히 더 갈 수 없다고 수백 번 되생각한 끝이다.
“나를 죽일 거야. 그리고 나를 죽여 이 세상도 죽일 거야. 다 해진 이 몸도 죽이고 너 거친 모래 폭풍, 내 목줄기를 태운 저 불같은 태양, 그리고 어딘가에 숨어서 나를 노려보고 있을 할아버지. 다 죽여 버릴 테야. 내가 죽으면 내 세상도 함께 죽는 거야. 전갈, 독사, 여우, 다 죽일 거야.”
동자는 손가락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손가락 한 개가 금세 떨어져나갔다.
“무슨 상관이야. 내 몸을 이 모래 속에 묻어 버릴 거야.”
동자는 몸을 묻을 구덩이를 팠다. 왼쪽 엄지손가락에 남아 있던 손톱 하나도 마저 빠져 버렸다.
동자는 아픔도 잊고 손을 구덩이 속으로 집어넣어 조금씩 모래를 집어 내었다.
이게 웬일일까? 동자의 손끝에 갑자기 찬 기운이 느껴졌다. 물이다. 동자가 한번 더 모래를 집어내려고 손을 찌르자 모래가 툭 터지면서 물줄기가 솟아올랐다.
동자는 할아버지가 준 주머니를 열매 씨앗을 꺼내 물에 던졌다. 이윽고 씨앗이 물에 불더니 먹기 좋게 부풀었다.
열매를 먹고나니 기운이 났다.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상처는 씻은 듯이 사라지고 발가락, 손가락도 새 살처럼 돋아나 있었다.
“목숨이 남아 있다는 것은 희망이 남아 있다는 것. 몸이 다 깨지고 찢어져도 아직 죽지만 않았다면.”
동자는 하늘을 향해 씩 웃었다.
“할아버지, 나는 이제 세상의 비밀을 알았어.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거지? 저 무수한 별이 바로 할아버지의 눈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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