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나그네의 여인 이사나
동자는 임금들의 나라를 나와 북쪽으로 난 큰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길은 말끔히 단장되어 있다. 길바닥이 패이거나 울퉁불퉁하지 않고 매끈한 것은 수많은 나그네들의 발로 잘 다져진 탓이라고 동자는 생각했다.
동자는 물빛 옷깃을 휘날리며 기운차게 걸었다. 이따금 허리춤에 매달아 놓은 열매 주머니가 앞쪽으로 밀려나와서, 동자는 그걸 되돌려 놓기 위해 발걸음을 잠시 늦추기도 했다.
동자는 길을 가면서도 깊은 명상에 잠겼다. 처음 생각을 시작한 화두(話頭)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져 끊이질 않았다.
“이 길은 어째서 이다지도 매끄럽게 단장되어 있을까? 길도 얼굴이 있는 걸까? 길이 가는 나그네의 얼굴을 닮는다면, 누가 어느 길을 가든 길은 늘 나그네의 친구가 될 수 있을 거야. 사막의 길 없는 길도 내 친구가 되었듯이. 외롭지만 않으면 길은 누구에게나 친구가 될 수 있어. 이 길이 지금 내게 희망을 주고 있는 것은 이 길을 가는 나그네들의 마음이 희망에 가득 차 있다는 뜻일 거야.
길에는 동자 말고도 여러 사람이 오고 갔다. 오는 이 가는 이 모두 바쁜 걸음으로 저마다 길을 갔다.
길은 언제나 어떤 나그네나 차별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가든지 오든지 상관하지 않는다. 가다 돌아와도 된다. 어떤 나그네라도 그가 가야 할 길을 가면 길은 언제나 거부하지 않고 몸을 내어 준다.
그래서 길은 곧기도 하고, 굽기도 하고, 강이나 바다 위로 뻗기도 하고, 때로는 험한 벼랑 사이나 전쟁터에 뻗어 있기도 한 것이다. 사는 길도 있고 죽는 길도 있지만 이 역시 구분하지 않는다.
진한 황토빛으로 물들어 얼굴 붉히는 다소곳한 길이 있기도 하고, 마녀의 눈꼬리처럼 가늘고 급하게 떨어져 내린 내리막길도 있다. 길은 저마다 제 얼굴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 못해 그리움으로 먼 길에 오른 한 여인의 얼굴이나, 배신자의 목에 꽂을 비수를 품고 가는 피끓는 싸울아비의 얼굴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길은 누구에게든 같은 기회를 준다. 그래서 길은 항상 공평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길은 언제나 나그네의 운명의 실이 되어 그것을 즐긴다. 길은 곧 숙명이다.
동자는 오랫동안 이같은 생각을 하면서 길을 걸었다.
동자는 끝도 없이 가물거리는 길머리에 지쳐 잠시 길 가에 앉아 쉬거나, 지나가는 나그네들에게 말을 붙여 보았다. 안녕하세요, 그러면 웃는다. 목이 마른데 물 좀 주시겠어요, 그러면 물을 주기도 하고 모른 척 지나가기도 한다.
동자가 이야기를 나눈 나그네 가운데는 동자와 비슷한 또래의 계집아이도 있다. 이 아이는 소원을 빌러 가는 중이었다.
“이 길을 줄곧 가면 마술의 성이 나온대. 그 성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누구든지 소원을 이룰 수 있대.”
그제야 동자는 나그네들의 얼굴에 왜 희망이 넘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더불어, 길이 왜 그다지도 매끈하게 뻗어있는가도 알 수 있었다. 길이 잠자거나 병들어 있는 쇠약한 길이 아니었던 까닭이 분명해진 것이다. 소원을 이루기 위해 길을 가고 있는 나그네마다 희망찬 발걸음으로 길을 깨워 길의 얼굴을 활기차게 빚어 놓았던 것이다.
밤이 되었다.
동자는 쉴 곳을 찾지 못하고 피로한 다리를 끌면서 길을 밟아 나갔다.
산과 하늘이 슬며시 어둠 속으로 잠겼다. 찬란한 빛 속에 나타나 친구처럼 느껴지기만 했던 온갖 사물들이, 마치 원래부터 서로 모르는 사이였음을 강조라도 하듯 동자 곁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길도 먼 꼬리부터 길게 누워 깊은 잠을 청했다.
동자는 사막을 건널 때의 외로움을 떠올렸다. 그때 동자는 이 세상 어느 것도 나와는 무관한 것이라고 수만 번도 더 다짐하지 않았던가. 무심한 어둠 속에서 동자의 작은 숨결은 홀로 헐떡였다.
그러나 동자는 역시 사막을 건너던 마음으로 용기를 다시 얻어냈다. 그래서 동자는 그만큼씩 더 갈 수 있었다.
동자는 제 숨결을 확인하는 것으로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 오직 거친 숨결만이 그의 존재를 확인해 주었다. 힘들수록, 아플수록 존재는 더 확실해진다.
동자는 걸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지친 동자의 의식들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가 꿈의 장면을 그려내었다.
꿈은 여인의 촉촉한 음성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동자여. 밤 늦은 이 시각에 어찌하여 길을 방황하시나요?”
동자는 말했다. 꿈처럼.
“머물 곳이 없어...”
“등을 밝힐 터이니 이리로 오셔요.”
동자는 여인의 목소리에 이어 점 같은 빛을 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한 여인의 영상으로 스르르 확대되었다. 여인은 안개처럼 하얀 옷자락을 땅바닥에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 아슴한 환상 속에서 별처럼 떠 있는 여인의 두 눈이 동자의 시선을 끌었다.
여인은 초롱을 들어 동자의 앞을 환히 밝혔다. 동자는 무거워진 눈꺼풀을 올려 떠 가까스로 여인의 등불에 시선을 맞추었다.
여인이 앞서 걸었다.
동자는 따라가려는 생각을 내기도 전에 이미 여인의 등뒤에 붙어 있었다.
여인은 스르르 떠가는 듯했다. 여인의 발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데 길이 밀려오고 있는 듯했다. 길을 깨우는 마력이 있는지, 여인은 길을 가지 않고 길이 오게 하고 있었다.
동자는 눈꺼풀에 앉아 있던 피로와 졸음기를 털어 버리고 길이 걷는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여인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길이 여인을 향해 걸었다.
그런데 동자는 여인과는 달리 계속 다리를 움직여야만 했다. 동자는 발이 무척 무겁다는 걸 느끼면서 여인을 따라가기 위해선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동자가 조금이라도 걸음걸이를 늦추면 여인은 어느새 저만큼 앞서 가 있곤 했다.
“같이 가. 난 지쳤어...”
동자의 입에서 맴돌던 소리가 힘겹게 말이 되었다.
동자의 안타까운 외침에 여인은 돌아서서 동자를 바라보았다.
여인이 멈춰서자, 여인의 길 역시 오지 않고 그대로 멈추었다.
“동자여, 그대는 어찌하여 스스로 지치는가요?”
“난 많이 걸었어... 내내 쉬지 않고 걸었단 말이야.”
“호호호. 그러니까 지칠 수밖에요. 걷는다고 해서 꼭 동자님만 걸으실 필요는 없잖아요? 길을 깨우세요. 그래서 같이 걷거나, 길이 혼자서 걸어오도록 하셔요. 그럼 동자님은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저절로 목적지가 나타나니까요. 목적지가 동자님에게 걸어온답니다.”
“내가 움직이지 않고 어떻게 갈 수 있어?”
“아니어요. 동자님. 그것은 동자님 혼자만의 생각일 뿐이어요. 이 세상의 주인은 동자님이시고, 동자님의 뜻대로 세상은 돌아가는 거예요. 별도 달도 산도 강도, 모두 동자님을 중심으로 움직인답니다. 이 세상의 주인은.”
“쿠르릉 쾅! 쿠르릉 쾅!”
갑자기 천둥소리가 울리면서 여인의 말이 흩어져버렸다. 하늘은 북을 두드리는 듯했다.
동자가 말했다.
“난 밤이면 외로워져. 아무리 친하려 해도 잘 되지 않아.”
천둥소리가 그쳤다.
“밤도 동자님 밤인 걸요. 아끼는 마음을 내셔요. 동자님의 세계를 모두 사랑하시는 거예요. 동자님과 세계를 분리시키지 말고 합쳐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 사랑하는 거예요. 크게 사랑하셔야 합니다. 사랑은 분별을 무너뜨려요. 세계를 온통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셔야만 올바른 진리를 볼 수 있게 된답니다. 동자님은 그런 큰 사랑을 경험하시게 될 거예요.”
여인은 말을 마치자 다시 길을 타기 시작했다. 동자도 그 뒤를 따라서 부지런히 걸었다. 동자는 기를 쓰고 길을 사랑하려 했지만 길은 도무지 반응이 없었다.
동자가 거의 쓰러질 정도로 지쳐 버리자 여인은 마치 미리 쳐놓은 장막을 거두는 어둠을 밀어내고 동자를 커다란 장원으로 이끌었다.
어디서 갑자기 나타났는지 모를 그 장원은 이미 동자를 맞이할 채비를 말끔히 차려놓고 있었다. 처음 보는 장원이지만 전혀 낯설지 않았다. 동자는 성큼 안으로 들어섰다.
여인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동자를 이끌어 장원 안으로 들어갔다.
동자는 장원에 들어선 지 얼마 안 되어 완전히 정신을 잃은 채 쓰러지고 말았다.
정신을 잃은 동자는 여인의 품에 안겨 욕실로 옮겨졌다.
탕 안에는 소녀 여섯 명이 모든 준비를 마치고 단정한 옷차림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소녀들은 여인이 동자를 안고 들어가자, 여인에게서 동자를 받아 길다란 침상에 뉘었다.
소녀들은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동자의 몸을 부드럽게 문지르면서 혈맥을 눌러대기 시작했다. 여섯 소녀는 동자의 몸을 조금씩 나눠 맡아, 혈맥을 짚어 엉킨 피를 풀었다. 그러는 동안에 여인은 탕에서 솟아오르는 뜨거운 온천수를 떠 동자의 살갗에 마찰시켰다.
동자의 몸은 축 늘어진 채 깊은 혼수에 빠져 있었다. 소녀들은 동자의 몸 속에 들어 있는 모든 찌꺼기를 남김없이 걸러내기 위하여 근육을 당기고 관절을 꺾었다.
얼마 후 동자는 한 소녀의 가슴에 안겨 다른 방으로 옮겨졌다.
새로 들어간 방은 아름다운 선율로 가득찬 곳이었다. 그곳에서 동자는 귀에 맺혀 있던 여러 가지 깨끗하지 못한 소리들을 털어냈다. 천주동자의 울음까지 씻어냈다.
어떤 선율도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동자의 의식을 깨우지는 못했다. 아무리 높은 선율일지라도 동자는 전혀 반응을 나타내지 않았다. 소리란 소리는 모두 동자의 귓속으로 물이 흐르듯 깃들었다. 동자는 그동안 들어온 옛 선율들을 털어내고 깨끗하게 맑아져서 도무지 소리라곤 없는 텅 빈 경지에 이르렀다.
동자는 또 다른 방으로 옮겨졌다. 이번에는 말을 하느라 굳어진 혀를 풀어내는 시술을 받았다. 그리고 또 다른 방으로 옮겨져서는 시선을 독수리나 매처럼 모아 바라보는 훈련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동자는 무엇을 듣고, 말하고, 보았는지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
동자는 이튿날 오후가 되어서야 밀림의 늪처럼 깊은 혼수에서 벗어나 긴 하품을 들이켰다. 호흡은 소리도 없이 잔잔하고, 맥박은 힘있게 뛰었다.
동자는 새 눈으로 장원을 둘러보고, 입을 열면 천 년을 흐르는 강물처럼 깊은 목소리가 나왔다.
“참, 누구야? 혹시 이사나?”
“저는 모든 길 가는 나그네의 여인 이사나예요. 지금은 동자님의 여인이어요.”
“왜 나를 데려 온 거야?”
“동자님에게 사랑을 가르쳐 주려고요. 동자님과 제가 사랑을 나누면 우리들 사이에 있는 너와 나, 혹은 남녀라든가, 모르는 사이라든가, 여인과 동자라든가 하는 경계가 다 없어져요, 우리는 하나가 되는 거예요. 서로를 호흡하고, 느낄 수 있게 돼요. 사랑이란 서로 녹이고 다듬고 쓰다듬어서 둘 사이에 진리가 깃들도록 하는 거지요.”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하나?”
“그럼요. 우린 두 마리 뱀처럼 서로의 꼬리부터 먹어 들어가는 거예요. 동자와 저는 서로를 먹어야 해요. 조금도 남김없이 다 먹어야 해요. 아아, 동자는 아직 너무 어리고, 사랑할 줄 모르지요. 저는 그것마저 먹을 거랍니다. 우리 사이에 다른 것들, 그게 사랑이 먹고 자라는 자양분이지요.”
“무슨 뜻이야?”
동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볼이 발갛게 달아오른 이사나에게 물었다.
“호호호. 아직 동자님은 모르셔요. 동자님 살 속 깊이 잠들어 있는 시바새 한 마리를 꺼내기 전까지는요. 그 새를 제가 꺼내드릴 거랍니다. 계곡의 바람을 타고 정상으로 날아오를 멋진 시바새를 저는 기다릴래요. 그래서 저는 그 새를 죽이고 말 거예요. 달구고 달군 불바람으로 새의 날개를 부러뜨리고, 끝내 제 가슴에 머리를 박고 들어와 숨을 끄겠지요. 호호호. 제 몸 속엔 그렇게 죽은 새들이 있어 살아 있는 새를 유혹한답니다. 저는 이 세상 시바새들을 모두 잡을 거예요.”
“아, 몰라. 몰라.”
“알든 모르든 세상은 멈추지 않아요. 누가 뭐라든 동자님 몸에는 시바새가 숨어 있어요. 그것만 꺼낸다면...”
이사나는 동자의 손을 잡아 끌어 장원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방을 스무 개나 지나고 긴 복도를 한없이 걷자 붉고 노란 휘장이 길게 쳐져 있는 비밀의 방이 나타났다. 이사나는 그 방으로 동자를 안고 들어갔다.
방에는 이미 다섯 명의 소녀들이 복숭아 꽃빛같은 속살을 모두 드러낸 채 다소곳이 서 있었다.
동자는 놀란 표정으로 이사나를 올려다보았다.
이사나는 잠자코 미소를 지어보이면서 소녀들에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소녀들은 사뿐한 걸음으로 걸어와 동자를 둘러쌌다. 그리고 동자의 물빛 옷을 벗겨냈다. 사막을 건너느라 때묻고 해진 옷이다.
동자는 부끄러움도 없이 여러 알몸 속에 자신의 작은 알몸을 내놓았다.
이사나가 그 사이에 또 하나의 알몸으로 다가왔다.
동자와 이사나가 밀실로 들어간 지 엿새가 되었다.
동자의 몸에 숨어 있던 작은 시바새가 푸드덕거렸다. 이사나와 다섯 소녀들이 결국 동자에게서 새끼 시바새를 찾아낸 것이다.
이사나는 시바새를 돌봐가며 정성을 다해 길렀다. 새끼 시바새는 점점 자라 날개짓을 시늉하고, 부리를 곧추 쳐들기도 했다.
이사나는 시바새의 날개를 펼쳐주면서 비상을 가르쳤다. 새끼 시바새는 조금씩 날개짓을 해 보이며 무럭무럭 자랐다. 부리도 단단해졌다.
한 달이 지나자 시바새는 방 안을 날아다니며 비상을 익혔다. 그러면서 파란 하늘을 날 기세로 꾸준히 연습하고, 이사나의 큰 계곡과 작은 다섯 계곡을 넘나들며 날개와 발톱과 부리를 흔들어댔다.
시바새는 거의 다 자라게 되자 계곡 아래로 흐르는 기류 따위에는 아랑곳 없이 하늘 높이 날아오르곤 했다.
그러나 큰 계곡만은 쉽사리 시바새의 날개를 놓아 주지 않았다. 큰 계곡엔 바람을 빨아들이는 강한 기류가 있어서 시바새의 비상을 방해하였다. 시바새는 며칠째 계곡 위를 맴돌기만 했다.
차츰 시바새의 눈이 맑아지고 날개가 가벼워졌다.
계곡은 불어난 시냇물로 흠뻑 젖었다. 그래도 시바새는 계곡으로 날아들지 않았다. 계곡은 시바새를 금방이라도 빨아들일 기세로 입을 벌렸다.
시바새는 마침내 계곡이 온통 시냇물로 넘쳐 산이 녹아내릴 듯이 젖은 뒤에야 마지막 숨 한 점까지 모아 계곡을 향해 온몸으로 날아들기 시작했다. 문을 활짝 열어젖힌 계곡은 폭포수 같은 샘물을 분출시키며 시바새를 기다렸다.
시바새는 곤두박질치듯 계곡으로 내리꽂히고, 마지막 순간 계곡은 시바새를 위해 숲을 열고 물길을 완전히 드러내었다.
시바새가 마침내 계곡에 뛰어들자 계곡이 입을 다물기 시작했다. 그러자 시바새는 갑자기 수직으로 비상하여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시바새는 더욱더 아득히 떠올라 점까지 떨쳐 버렸다.
이윽고 물에 젖은 산이 무너져 내렸다. 홍수에 밀려 계곡은 가라앉고, 산은 물에 휩쓸려 사라지고 말았다.
동자는 장원에 이른 지 한 달만에 이슬에 맺힌 아침 햇살처럼 맑고 깨끗한 몸으로 이사나의 이별을 받았다. 이사나는 아직 회복하지 않은 몸으로 동자를 배웅하느라 이따금 비틀거렸다.
“처음으로 시바새를 놓쳤어요. 지금까지는 어떤 새도 계곡을 빠져 나가지 못했는데, 그래서 모두 죽었는데 너무도 뜻밖이었어요. 오히려 계곡이 가라앉고 산이 무너지다니요. 저는 더 가르쳐 드릴 게 없어요. 이 길로 가면 마술의 성이 나와요. 거기서 푸른색 마술사를 만나요.”
동자는 이사나를 떠나가는 발걸음이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동자는 이미 길이 되어 있었다. 길을 사랑하니 그가 길이 된 것이다.
동자가 바라보자 길이 일어나 그에게 다가왔다. 동자는 그 길을 타고 마술의 성을 향했다. 동자는 작은 점으로 멀어져 가는 이사나를 돌아보았다.
“결국 모두 점이 되어 사라지는구나. 할아버지도, 천주도, 이사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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