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임금들의 임금
잠에서 깨어난 동자는 깜짝 놀랐다. 온몸에 나 있던 상처는 씻은 듯이 낫고, 발톱이 빠져나갔던 발가락과 너덜거리던 살가죽도 감쪽같이 아물어 이제는 생기가 흘렀다.
동자는 그로부터 다섯 낮 다섯 밤을 더 걸어 마침내 천주 동자가 있다는 임금들의 나라 입구에 다다를 수 있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동자를 반갑게 맞이했다.
“오! 동자는 어디에서 오는 나그네이더냐?”
“난 저 사막을 혼자서 걸어 왔어. 한 달도 더 걸렸을 거야.”
“뭐라고? 어린 네가 저 사막을 건너왔다고? 더구나 혼자서 그 황량한 사막에 한 달 동안이나 있었다고?”
“외롭고 쓸쓸했어.”
길 가에는 동자를 보기 위해 몰려든 구경꾼들로 한동안 붐볐다. 사람들은 저마다 동자의 용기를 확인하느라고 여러 가지 질문을 퍼부었다.
동자는 천주 동자를 찾기 위해 다시 길을 떠나야 한다고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천주 동자에 대한 소문을 이야기해 주면서, 임금들의 나라는 매우 이상하다고 덧붙였다.
“임금들만이 모여 사는 나라야. 천주 동자는 임금들의 임금이지. 임금들의 임금은 대단히 훌륭하신 분이어야 할 터인데 사실은 어린 동자가 임금들의 임금이란 말야. 아무튼 천주 동자는 임금들의 임금이니까 뭇 아이들하곤 뭔가 다른 게 있을 거야.”
“우리네 성 밖 사람들이야 임금들의 임금은 그만두고라도 그 나라의 백성인 임금이나마 한 번 보았으면...”
“임금들이 모여 사는 나라라니 얼마나 살기 좋을까?”
도담 동자는 이윽고 성으로 들어갔다. 성문엔 문지기가 없었다. 아무도 동자의 앞길을 막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겠지. 백성들도 모두 임금들로 되어 있다는데 까짓 문지기를 할 임금이 어디 있겠어?”
동자는 성 안에 들어서자마자 광장 가운데 있는 높은 제단을 보고, 그 제단 꼭대기에 앉아 있는 동자가 천주일 거라고 생각했다.
제단 꼭대기엔 금빛 찬란한 옥좌가 있고, 한 볼품 없는 아이가 그 위에 웅크리고 앉아서 헛기침을 연방 뱉어내고 있었다.
동자는 제단으로 올라가 옥좌에 매우 어색하고 품위 없게 앉아 있는 아이에게 다가갔다.
“어서 오너라, 도담.”
앳된, 그러나 근엄을 가장한 목소리로 아이가 말했다.
“네가 임금들의 임금이라는 천주구나?”
아이는 마른기침을 억지로 토해 내며 동자를 노려보았다.
“지, 짐이 바로 임금 나라의 임금이시고, 또한 임금들의 임금이신 천주 임금이시다. 그대는 어서 무릎을 꿇어라.”
천주는 자신을 소개하면서 임금이란 말을 다섯 번이나 썼다.
도담 동자는 임금을 모셔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충성을 강요하는 천주의 말에 깔깔 웃으면서 천주가 앉아 있는 옥좌 주위를 빙 돌았다.
천주도 동자가 도는 대로 옥좌를 돌리면서 동자의 동정을 살폈다.
천주는 어린아이인데도 수염 세 가닥을 새끼손가락의 반 만하게 기르고, 어깨는 꾸부정하게 굽고, 손발은 갓난아이처럼 곱기만 했다.
동자는 한심하다는 듯이 천주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네가 정말 임금들의 임금이란 말이지?”
“글쎄 그렇다니까... 에헴!”
“너같이 어린아이가 임금들의 임금 노릇을 한다면 난 임금들의 임금의 임금도 할 수 있어.”
“뭐라고? 네가 감히 짐을 화나게 하기냐?”
“임금들의 임금이 화가 나면 어떻게 하는데?”
“그야... 벌을 줘야지.”
임금들의 임금이 사는 성에는 문지기도, 궁녀도, 내시도, 군사도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다 임금이기 때문에 임금들의 임금조차 그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없었다.
“천주야, 그러지 말고 내게 이 나라를 구경시켜 줘.”
“너 도담 동자, 내가 정말로 임금이라면 어쩔 테냐?”
“네가 임금이라고 해서 새삼스레 달라질 건 없잖아. 넌 진짜 임금이어 봤자 나하고 놀지도 못할 밖에 무슨 좋은 일이 생기겠어? 내가 훌쩍 떠나고 나면 너는 맨날 그 의자에만 붙어 앉아 헛기침이나 하고 있어야겠지.”
“짐에겐 임금이라는 체면이 있단 말야. 그거 없인 임금을 할 수가 없어. 그러니 너도 날 임금님이라고 불러야 해. 충성도 맹세하고.”
“충성이라니? 그게 뭔데?”
“음, 짐하고 같이 놀아주는 거… 그게 충성이야.”
“그래. 네게 충성할게. 맹세!”
동자가 맹세를 하자, 천주는 기분이 좋아져 헛기침을 다섯 번이나 하더니 비로소 옥좌에서 일어났다.
천주는 동자의 손을 잡고 백성인 임금들이 사는 곳으로 걸어갔다. 백성 임금들은 저마다 화려한 복장을 하고 위엄을 보이려 했다. 그들은 천주가 지날 때마다 정중한 인사를 올렸다.
“천주 임금 나오시냐?”
“오, 짐이 나라를 순시 중이오.”
동자는 어찌나 우스운지 키득거리다가 천주에게 물었다.
“저 사람들은 백성도 없이 임금하는 거니? 너처럼 저 임금들을 백성으로 하든가 하는.”
“저 임금들은 임금보다 못한 건 아무 것도 안 한다. 이 나라엔 신하도 없고, 악사나 광대도 없다. 모두 다 임금이다. 그래서 백성을 만들 수 없다. 그래서 세금을 거둘 수도 없지.”
그때 동자는 그 임금들의 백성 노릇을 천주 혼자서 다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으나 입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동자는 그렇게 많은 임금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몹시 궁금했다.
천주는 몹시 더럽지만 긴 곤룡포 자락을 땅바닥에 질질 끌며 느릿느릿 행차를 계속했다.
동자는 한 임금에게 다가가 배알을 했다.
“임금님, 안녕.”
“오. 우리 천주 임금의 친구인가?”
“그래. 난 임금님의 친구도 될 수 있어.”
“그리운지고, 그리운지고. 전생의 영화와 권력이여. 수백만 군사와 수천의 시종과 수백의 궁녀들이여. 이제는 너따위 꼬마를 만나고도 내가 말을 붙이며 즐거워하다니. 내가 임금일 적에는 아주 뛰어난 백성이 아니고는 나와 대면을 할 수가 없었거늘, 이제는 별이며 달이며 날아가는 새마저 모두 반갑구나.”
“임금님은 어디서 임금을 했어?”
“지금으로부터 아득한 옛날, 코살라 왕국에서 가장 용감한 임금으로 역사에 빛날 찬란한 업적을 세웠지.”
“그 업적은 지금도 빛나나?”
“그건 나도 모른다. 난 임금으로서 성대한 장례식을 받은 이후 수천 년 동안 단 한 번도 그곳에 가 보지 못했다.”
“무슨 업적이었어? 왕국을 온통 꽃밭으로 가꾸어 놓았나? 수선화나 부겐베리아를 많이 심었어?”
“아니란다. 내가 임금으로서 이룩한 업적은 그렇게 시시한 게 아니란다. 임금이란 매우 전설적이며 영웅적이며 위대한 업적을 이룩하여야 한다. 나는 우선 병사를 늘리고 무기를 개발해서 무력을 길렀단다. 그런 다음에 차례로 이웃 나라들을 공격해서 땅과 백성들을 빼앗았다. 우리 코살라 왕국은 어마어마하게 강대해져서 내가 죽을 무렵엔 내 귀로 들어본 적이 있는 나라란 나라는 모두 다 위대한 코살라 왕국의 속국이 되어 조공을 바쳐왔단다. 이런 나의 위대한 업적은 이 임금들의 나라에서도 굉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자는 그 임금을 다시 한 번 올려다보며 감탄했다.
“정말 굉장해.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
“뭐가? 업적은 그걸로 끝이란다.”
“그 업적으로 사람들이 행복해졌어?”
“음... 글쎄... 행복은...”
“행복해졌냐구?”
“그게 말이다, 사실은, 이렇단다. 위대한 코살라 왕국은 전쟁을 늘 승리로 이끌었으니까. 행복은, 행복은 언젠가 올 것이지만, 하여튼 나의 코살라 왕국은 언제나 승전을 축하하는 잔치를 하곤 했어.
그 임금의 방엔 날이 선 창과 칼이 즐비하게 널려 있고, 곳곳에 깃발이 꽂혀 있었다.”
“지금도?”
“응? 아, 그게... 에이, 저리 가서 다른 임금을 만나보렴.”
동자는 한 때 임금이었던 사람들을 차례로 만나 그들의 업적을 들어주었다. 천주도 도담 동자와 함께 임금들의 업적에 귀를 기울였다.
“난 설국의 임금이었어. 설국은 항상 눈이 내리기 때문에 어느 나라보다도 아름다웠지.”
“안 추워?”
“춥긴, 내가 왕이었는데? 왕궁에서 살면 추운 걸 모르지. 왕궁에는 겨울에도 꽃이 피는데?”
“야!”
“전쟁도 없고 식량도 언제나 넉넉해서 백성들은 늘 평화로웠지. 내가 세운 위대한 업적은 세금을 많이 거두어 창고를 가득 채운 거였어. 내가 임금을 할 때 설국은 모두 2만 5천 개의 창고를 세금으로 가득 채웠지. 역대의 어느 임금보다도 가장 많은 세금을 거두었지.”
“그런 업적을 안 세우면 안 되나?”
“그럼. 임금은 언제나 자신의 업적을 쌓아야만 후대의 임금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거야. 업적이 없는 임금은 백성들의 기억에조차 남지를 않아. 세상에는 수만 명의 임금이 있었어. 하지만 사람들은 업적을 세운 임금만 기억해. 적을 많이 죽이거나 큰 건물을 짓거나 영토를 많이 늘린 임금만...”
동자는 모든 임금들이 위대한 업적을 남기기 위해 저마다 독특한 방법을 썼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 업적들은 과연 누가 갖게 되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임금들은 업적의 행방보다는 자신이 그것을 이루어 냈다는 자랑만으로도 앞으로 수만 년은 더 지탱해 나갈 수 있을 듯이 의기양양해 있었다.
그래서 임금들은 서로 서로 다른 임금들의 뒷얘기를 폭로하는 것으로 싸움을 벌이곤 했다. 결국은 온 세상의 임금들이 다 모여 있는 이 나라에서는 아무도 비밀을 지킬 수가 없기 때문에 임금들은 거짓과 위선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임금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물론 늘 만나기만 하면 서로 으르렁댄다는 임금의 말이긴 하지만, 코살라 왕국의 임금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 패망의 처참한 복수를 겨우 면했으며, 설국의 임금은 백성들의 반란으로 임금자리를 쫒겨났다고 했다.
동자는 천주의 행차를 따라 나라 안을 한 바퀴 돌고 난 뒤 천주와 함께 광장의 제단으로 나갔다.
동자는 임금들의 나라가 매우 위선적인 몽상가들로 가득 차 있음을 알아차렸다. 벌써 사라져버린, 오래 묵은 업적을 기억하는 것만이, 임금을 향하여 목숨 이상으로 의지하려는 백성들에게 오히려 다시 의지하는, 임금이라는 한 인간이 살아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처럼 보였다. 임금은 백성을 의지하고, 백성은 임금을 의지하는 세상은 너무 오래 되었다.
동자는 그런 임금들을 백성으로 하는 임금들의 임금 천주를 바라보며 그의 전생을 알고 싶어했다. 적어도 임금들의 임금인 천주만은 더 훌륭한 업적을 이루었으리라고 짐작했기 때문이었다.
“천주, 넌 어디서 임금을 했어?”
“......”
천주는 대답을 하지 않고 옥좌를 돌려앉았다. 그때 단 아래에 있던 어느 임금이 동자에게 소리를 질렀다.
“우리 임금에게 업적을 물어보는 것은 국법으로 금지되어 있어.”
동자는 그 말을 듣고 더욱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마침내 천주는 동자의 끈질긴 추궁에 견디다 못해 귓속말로 더듬거렸다.
“사실 난 임금이 아니었어. 임금이 되고 싶어 스스로 거짓 임금 노릇을 하곤 했어. 남들이 안 보는 창고에서나 어두컴컴한 밤에. 난 언제나 임금들의 시종 노릇만 하다가 나도 임금을 했으면 하는 희망을 갖고 쭉 연습해 왔어. 그래서 임금들의 임금까지 된 거야.”
그제야 동자는 천주의 전생을 묻는 것이 그 임금 나라의 법으로 금지되어 있는 이유를 알았다.
백성은 임금에게 의지하고, 임금은 백성에게 의지하던 전생의 임금들이 모인 임금들의 나라는 서로 자존심을 지켜줘야만 했다.
동자는 가장 높은 자리는 가장 낮은 것이라고 천주에게 말했다.
“넌 지금도 시종이나 마찬가지야. 이 나라에서 도망쳐 다른 데로 가. 이 세상엔 재미있는 곳도 많아. 언제까지나 옥좌에 앉아 거드름만 피울 거야? 아무도 너의 헛기침 소리를 무서워하지 않아.”
“그래, 네 말이 맞다. 난 차라리 이곳을 도망쳐 나갈까 보다.”
임금들의 임금 천주는 옥좌에서 일어나 제단을 내려갔다.
동자는 천주의 손을 잡고 임금들의 나라를 빠져나가기 위해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거리의 곳곳에서 수많은 임금들이 몰려나와 임금들의 임금을 막아섰다.
임금들은 달아나는 임금들의 임금을 붙잡아 제단 위 옥좌에 다시 앉혔다.
“이번으로 꼭 삼천이백세 번째 도망을 치려고 했단 말야.”
“난 놀고 싶어. 임금 안 할 거야.”
“임금아, 임금이 백성을 지켜 주지 않으면, 누가 백성을 돌보며, 이 나라는 어떻게 되겠느냐?”
임금들은 천주에게 애원하듯이 명령했다. 임금들은 임금들의 임금으로부터 다시는 도망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뒤 어디론지 뿔뿔이 흩어졌다.
“도담아, 난 어쩌지? 몇 천 년이나 이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하는 거지? 벌써 지나온 세월이 얼만데...”
“천주 임금아! 그렇게도 도망하기가 힘이 들어?”
“너도 보았잖아. 멀리도 못 가고 바로 저 분수대 앞에서 잡히곤 한단 말야.”
동자는 문득 임금들의 임금을 바라보면서 탄성을 울렸다.
“됐다, 됐어. 내가 임금하면 되잖아?”
“정말, 그래줄 수 있어?”
“그럼, 그럼. 그러면 네가 도망쳐도 붙잡을 임금은 아무도 없을 거야.”
“오.”
동자가 천주 대신에 임금이 되는 것은 매우 쉬웠다. 서로 임금 자리를 피하는 형편이기 때문이었다.
동자는 임금들의 임금이 되어 천주와 자리를 바꾸어 옥좌에 앉았다. 동자는 나라 안에 널리 이 사실을 알렸다.
곧 임금들의 나라에선 동자의 임금 즉위를 축하하는 성대한 잔치가 열려 몇날 몇밤 동안 계속되었다. 천주도 임금들의 무리에 섞여 동자의 즉위를 축하했다.
잔치가 끝나자 동자는 천주가 하던 대로 옥좌에 잠자코 앉아 있어야 했다.
동자는 그때부터 울기 시작했다. 쉬지 않고 울기만 했다.
동자의 울음소리를 들은 임금들이 달려와 위로하는 말을 퍼붓고 갔으나 동자는 조금도 그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임금들이 화가 나서 동자를 윽박지르기도 하고 얼르기도 해 보았으나 여전히 소용이 없었다.
“임금은 울어서는 안 된다. 임금이 그토록 슬피 우니 우리 임금들 마음마저 개운치 않다. 우리 임금들은 울 일이 너무 많단다. 울 일이 있을 때마다 꼿꼿이 앉아 있는 임금을 바라보며 울음을 삼키곤 했는데, 이젠 어찌 하란 말이냐.”
임금들은 며칠을 두고 동자를 달랬다. 동자는 임금들의 말은 조금도 듣지 않고 울기를 계속했다.
드디어 한 임금이 제단 아래에 와서 같이 울기 시작했다.
“임금아, 난 너무도 약하단다. 아무런 힘도 없다. 누군가한테 끌려가고 있는 것 같구나. 그러면서도 나의 임금 시절의 업적과 너를 의지해서 하루하루 버티어 왔는데, 이젠 어쩔 수가 없게 되었나 보다. 왜 우리 임금은 그토록 힘이 없어 보이는 거냐?”
“그대가 힘이 없으니까 나도 힘이 없는 거야.”
“난 임금이 울기 때문에 울기 시작했는데.”
“나도 그대의 슬픔으로 여태 울고 있었어.”
그 임금은 동자의 말을 듣고 더욱 소리 높여 울었다.
얼마 후에 또 한 임금이 찾아와 눈물을 글썽거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임금들까지 차례차례 제단 아래로 몰려와서 울기 시작했다.
동자가 목청을 돋우지 않아도 울음소리는 임금들의 나라를 구슬프게 울렸다. 임금들의 나라는 임금들의 울음소리로 가득찼다. 임금들은 저마다 자리를 잡고 앉아 자신의 울음을 꺼내어 한껏 토해 내었다.
동자는 옷소매로 눈가를 훔치고, 옥좌에서 일어나 제단을 내려갔다.
어느 임금도 일어나 동자를 잡으려 하지 않았다. 모두들 북받쳐오르는 슬픔을 억제할 힘조차 없었다.
동자는 광장을 가로질러 성문을 나섰다.
동자가 마악 성문을 나와 거리를 나설 때 멀리서 천주가 걸어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동자는 그를 기다려 작별을 고했다.
천주는 동자에게 나그네의 여인 이사나가 길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이른 뒤 총총걸음으로 임금들의 나라로 들어갔다.
동자는 천주에게 왜 되돌아가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울음을 울지 않기 전엔, 그래서 닳은 혀를 풀어내기 전에는 부르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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