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15 (수) 11:21
혼자 살면 좋은데, 그렇지 못하고 어울려 살다보니 식구가 자꾸 는다.
전에 개를 열 마리 정도 기를 때는 아무리 단속해도 새끼가 자꾸 생겨 이놈들을 분양하느라 애를 먹었다.
아무 데나 분양하면 나중에 잡아먹을까봐 겁이 나 인상 좋고 마음씨 좋아 보이는 사람에게, 아는 사람에게, 믿을 만한 사람에게 분양하느라고 고생하곤 했다. 분양해 놓고도 혹시나 아이들이 학대받지 않나 걱정되어 몰래 가보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음이 쓰렸다.
그런데 분양이란 동물만이 아니라 식물도 하는 것이다. 우리집에 몇 년 전부터 길러온 알로에와 산세베리아가 있는데, 이 녀석들은 가을철만 되면 새끼가 너무 많이 생겨 처리가 곤란할 정도다. 그간은 어떻게든 수습하여 화분으로 독립시켜 주곤 했는데, 이젠 너무 많아 그럴 수가 없다. 알로에는 자라는대로 잘라 먹는다지만 이젠 그걸 다 먹어줄 식구가 줄어 지금도 감당이 안되는데, 새끼들이 스무 개쯤 생겨났다. 산세베리아도 그렇게 늘어났다.
지난 봄에는 칸나뿌리가 너무 많아 '아무나 갖다 기르세요' 하고 넘치는 뿌리를 골라 대문 앞에 놓아두었더니 앞집 아저씨가 가져다가 화단에 잘 심어 보기 좋게 자라고 있다. 우리집 칸나보다 더 키가 크다. 이러면 참 기분이 좋다.
나만 이러는 게 아니라 동네 사람들도 배추모종이 넘치면 회관 앞에 갖다 놓고 아무나 가져가라고도 하고, 고추 모종이 남으면 소문내서 누구든 갖다 심으라고들 한다. 나도 배추모종 얻어다 심고, 더러 고추도 갖다 심기도 한다.
그래서 오늘 대문 앞에
알로에 - 위장에 좋음
산세베리아 - 공기정화식물, 음이온 방출
아무나 갖다 기르세요!
이렇게 A4 용지에 크게 적어 알로에와 산세베리아 새끼들을 내놓았다. 햇빛이 뜨겁기는 하지만 이 녀석들은 결코 목이 말라 죽지는 않는다. 이 정도로 일주일을 두어도 기어이 살아남는다. 내가 작년에 열흘인가 입원했을 때 화분에 물을 주지 못해 다른 놈들은 다들 이파리가 떨어지고 열매가 떨어지고 가지가 말라 난리가 났었는데 이 녀석들은 꿋꿋했다.(물 안줘 죽는 놈 별로 없다더니 당시 죽은 줄 알았던 식물들은 나중에 다 살아났다. 그 정도는 생사에 지장이 없는 모양이다. 중상을 입은 정도다.)
오늘 안으로 분양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안그러면 또 화분을 구해 심어야 하는데, 그러자면 손이 많이 가고 언제고 또 분양해야 한다. 오늘은 아무래도 대문 앞에 여러 번 나가봐야 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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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나절에 대문 앞을 살펴보니 산세베리아는다 분양되고, 알로에도 크고 실한 놈들은 다 분양이 되고 작고 죽을 것처럼 여린 것들만 남았다. 그나마 다행이다. 남은 것들은 도로 갖다가 넓은 화분에 다 심어놓았다. 웬만큼 키워서 재분양을 시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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