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20 (월) 20:09
가슴이 아프다.
벼농사로 먹고사는 농민들이 대체 벼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트랙터를 끌고가 다 갈아엎는단 말인가.
사람은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돼지 사육하는 놈이 돼지값 떨어지면 돼지 갖다 길거리에 내다버리고, 소 사육하는 놈이 소값 떨어지면 광화문이나 고속도로에 송아지 갖다 풀어놓고, 배추 농사 지어 먹고사는 놈이 배추값 떨어진다고 배추가 한창 자라고 있는 밭을 통째로 갈아버리고, 군부대 오는 거 싫다고 이천의 몇몇 놈들은 돼지를 찢어죽이더니, 그네들 속이 놀랍고도 무섭다. 대체 직불금 타먹은 놈들하고 벼가 무슨 상관이길래 그런 몹쓸짓을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농민이 순박하다는 말에 동의하기 싫다. 이런 농민들을 어찌 순박하다고 말하란 말인가.
뭘 먹고살았는지, 누구 덕에 먹고살았는지 잊었든지, 아니면 애당초 은혜는 모르고 다 자기가 잘나 이 날 이때까지 살아온 줄 아는 모양이다.
저들이 이때까지 목숨 부지하고 살아온 게 벼 덕분이거늘, 어찌 벼를 원수보듯이 한단 말인가.
이럴 때마다 인간이라는 종을 믿을 수가 없다. 시시각각 감사하며 살아도 그 은혜를 다 깨우치지 못하는데 왜 이리 세상을 향해 악다구니를 쓰며 살아야 하는가. 미처 알알차리지도 못하는 수많은 고마움 때문에 세상이 유지되고, 그나마 이렇게들 살아가는 것 아닌가.
감사하자. 벼에 감사하고, 보리에 감사하고, 공기에 감사하고, 햇빛에 감사하자.
수천년간 인류를 먹여살려온 벼 앞에 무릎을 꿇지는 못할망정 다시는 그런 무례한 짓은 저지르지 말기를 부탁한다.
화는 나겠지만, 직불금 몰래 타먹은 놈들은 법으로 정리하면 된다. 정말 성질나면 검사, 판사 돼서 그이들 잡아 족치든지, 나이 먹어 안되면 자식을 그렇게 길러 원수를 갚든지 하면 되지 왜 고마운 벼한테 분풀이를 하는가 말이다.
또 이장들이 확인 도장만 안찍어줬어도 직불금 몰래 타먹을 수가 없다. 수도권 이장 중에서는(다른 지방은 안봤으니 모르고 하여튼 내가 보니 이쪽은 그렇더라는 말임) 그 지위를 악용해 고급 승용차 타고 다니면서 건설 현장이나 개발 현장을 어슬렁거리며 한 몫 챙기는 사람들도 있다. 이번에 사기로 직불금 타먹은 사람들 이면에는 이를 허용한 이장들이 있다는 것도 잊지는 마시라. 그렇다고 또 이장 멱살잡이하러 가지 말기 바란다. 이장도 무슨 사정이 있었겠지.
하여튼 좀 겸허하고, 여유있게들 살아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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