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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전원 이야기

가을 다음에 여름이 오려나?

2008/10/18 (토) 21:52

 

지난 주 한때 밤 온도가 영상 5도씨까지 내려간 적이 있다.

며칠 그러다보니 고추도 안달리고, 가지도 생장을 멈춰버리고, 기껏 심어두었던 아욱은 도무지 자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잡초가 잘 안자라 김맬 일 없다고 좋아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토마토, 오이, 고추, 가지 따위가 잘 안열려 서운했다.
어머니는 시골 고구마는 벌써 캐셨다며 우리 고구마도 어서 캐라, 둬봐야 자라질 않는다고 성화셨는데, 캐서 보관하는 것보다는 서리가 내릴 때까지 더 버텼다가 캐자고 고집을 부렸다. 너무 웃자라 걱정이던 배추는 속이 차기 시작해서 다행이었다. 찬 기후를 좋아하는 무도 쑥쑥 자라는 듯했다. 며칠 내로 서리가 내릴 듯한 긴장되는 시기였다.
 
그러나.
이번주 들어 갑자기 온도가 올라가더니 모든 상황이 바뀌었다. 다시 고추가 열리고, 고추꽃이 피고, 토마토 역시 새로 열매가 열리고, 더 크게 자라기 시작했다. 오늘 먹다남은 토마토를 열 개쯤 냉장고에 보관했다. 가지도 몇 개나 더 달렸다. 포기했던 아욱은 성큼 자라 다음 주 초에는 '문닫아 걸고 먹는다'는 그 가을아욱국을 먹게 생겼다.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몰라 걱정하던 봉숭아도 기세 좋게 꽃을 피우고 씨를 맺고 있다. 잘 안크던 호박도 마구 열리기 시작하여 이번 주에만 먹고남은 호박 다섯 개 정도를 썰어 햇볕에 말리고 있고, 지금도 대략 10여 개 정도가 자라고 있다. 날씨가 따뜻해진 걸 가장 실감할 수 있는 게 엊그제 김을 맸다는 사실이다. 이 한가을에 김을 매다니 내가 생각해도 이상하다.
 
하지만 나쁜 점도 있다. 가까스로 배추 속이 차기 시작했는데, 이번 주초부터 배추는 헤벌쭉 잎사귀를 벌려놓고 싸구려 무엇처럼 퍼져 있다. 덩치는 커져가는데 도무지 맛이 들어보이질 않는다. 무도 산발하듯이 잎사귀를 늘어뜨리고 멋대로 자란다. 아마 이런 식으로 계속 자란다면 무 맛도 심심해질 것이다.
 
감국도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조금씩 피어야 할 꽃이 갑자기 만발해버려 꿀벌들이 너무 좋아 미칠 지경인 모양이다. 벌통 앞에서 벌이 날아다니는 것처럼 많은 벌이 윙윙거리면서 급히 꿀을 따나른다. 나도 이러다간 빈손이 될 것만 같아 어젯밤에 커다란 대야에 감국을 가지째 잔뜩 꺾어다 놓고 거실에서 다듬었다. 오늘 아침에도 해가 뜨기 전 감국을 마구 꺾어다 놓고 다듬었다. 감국차를 만들고, 베갯속으로 쓰자면 양이 적잖이 필요해서 오전 내내 다듬어 겨우 소금물에 데쳐 말리기 시작했다.
 
여름 날씨가 되면서 뭘 어째야 할지 당황스럽다. 고구마도 안캔 게 다행이지 한낮에 바라다보면 쑥쑥 자라는 것같다. 이런 날씨가 두 주만 계속된다면 상추 모종을 내도 괜찮을 것같다. 앞집 아저씨가 열흘 전 용기있게 상추 모를 냈는데 지금은 잘 따먹고 있다. 부럽다. 그래도 고구마 안캐고 버틴 걸 다행으로 여기고, 고추, 가지, 토마토, 아욱, 부추가 씩씩하게 자라는 걸 보고 위안을 삼아야겠다. 비 기다리는 남부 주민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어쨌든 날씨가 따뜻해서 우리 텃밭 식물들이 너무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