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파란태양/전원 이야기

숙살의 아침

2008/11/04 (화) 09:29

 

어제 저녁 약속이 있어 안성에 갔다가 아홉시쯤 돌아왔다. 오는 길에 계기판을 보니 섭씨4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래서 알았다. '오늘 밤 우리집 텃밭에 잔인한 숙살이 일어나겠구나.'하고.

하지만 아침 일찍 운동나갔다가 점심약속, 저녁약속까지 잇따라 있는 데다, 일이 밀려 있는 바람에 상추만 비닐로 덮어주고, 밖에 사는 강아지를 안으로 들여놓고는 다른 볼일을 보았다. 그래서 녀석들과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못했다.

하다못해 마당에 나가 소변이라도 보며 아무말이라도 중얼거렸어야 하는데, 그네들에겐 생사의 초조한 그 시각에 난 컴퓨터 모니터만 들여다보았다. 하필 요즘 가입한 카페에서 쪽지가 무더기로 날아오는 바람에 일일이 답한다고 더더욱 시간을 내지 못한 것이다. 

 

오늘 아침, 바니를 깨워(깨우지 않아도 먼저 일어나 주인을 기다리지만 표현상) 밖으로 데려다 주고 사료 주어 햇볕을 쬐게 해주었다.

그제야 텃밭을 바라보니 차마 미안해 그들을 똑바로 바라보기가 미안했다.

어떻게든지 꽃을 피워 씨앗을 맺으려 하던 봉숭아들이 가장 참담한 피해를 입었다. 그중 씨앗을 맺은 것들도 많지만, 어린 것들 중에서는 꽃 하나 달랑 피웠다가 죽은 것도 있고, 아예 꽃을 피우지 못한 어린것들도 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큰키를 자랑하며 붉은꽃을 하늘높이 피워올리던 칸나도 떼죽음을 당했다. 뜨거운 물에 삶아놓은 듯 줄기가 짙은 녹색에 블랙이 20%는 먹은 색으로 변했다.

호박은 반쯤 죽어 중상을 입었다. 어제 땄어야 할 호박 여섯 개를 뒤늦게 땄다. 조금씩 냉해를 입었지만 그런대로 먹을 만하여 따로 거두었다.

또 8월에 뒤늦게 나서 씩씩하게 자라 열매까지 맺고 있던 아주까리도 축 늘어졌다. 씨앗이 여물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식물이나 사람이나 씨로 생명을 이어가는 법이니까.

고추와 가지, 토마토는 겉으로는 멀쩡한데 가까이 가보니 조금씩 상한 티가 난다. 오늘 중으로 고추 한 포기, 토마토 한 포기를 화분에 옮겨 안으로 들일 것이다.

나머지 아욱, 파, 무, 배추, 부추, 깨, 구기자, 국화 따위는 아직 냉해를 입지 않았다. 비교적 낮은 온도에 강한 놈들이다. 씩씩하게 자라고 있다.

한편 비닐로 덮어둔 상추는 색깔도 보기 좋은 짙은 연두색으로 아주 씩씩하게 그 잔인한 밤을 견뎌냈다. 따사로운 아침 햇살을 받으며 안도하는 듯하다.

오후 두 시경에 칸나 줄기를 베어 뿌리를 캐낼 것이다. 그래야 칸나가 내년을 맞을 수 있으니까.

아욱도 잎을 따 비닐에 넣어 냉장고에 보관할 참이다. 올해 아욱 농사는 오늘로 끝이다.

붉게 익은 구기자는 따봐야 얼마 안되니 그냥 바람에 건조될 때까지 두고 볼란다.

고향 생각하여 심은 구기자 다섯 그루에 열린 빨간 열매가 참 보기 좋다.

토마토와 고추, 가지는 화분에 옮길 것을 골라 낸 다음에는 역시 정리를 해줘야 마당이 을씨년스러워 보이지 않을 것이다.

토마토에는 여전히 스무 개가 넘는 푸른 토마토 열매가 맺혀 있다. 익지 못했으니 먹을 순 없을 것이다. 토마토 농사 역시 오늘로 끝이다. 지난 주부터 덜 익은, 붉은 기운이 살짝만 비쳐도 따먹었는데 지금은 너무 퍼렇다. 온도가 낮아지면 익질 않는다. 익지 않은 토마토는 밭에 버린 다음 흙으로 묻어야 한다.

 

아는가. 이것이 전원의 가을이다.

살아남는 법의 진수를 보여주는 계절이 가을이다. 씨앗으로 변신하든가, 뿌리로 변신하든가, 번데기로 변신하든가, 아니면 그 무성하던 이파리를 다 떼어내는 구조조정을 하여 뿌리와 몸통으로만 남든가 해야 한다. 뱀, 개구리, 다람쥐는 땅속이나 돌밑으로 기어들고 곰은 겨울잠 자러 굴속으로 들어가고, 개와 고양이조차 털갈이를 하여 추위를 대비한다.


그러나 사람만이 저 홀로 고고하여 조금도 수고하지 않고 감히 내년을 기다리기만 한다. 출근만 하면 월급 나오고, 그러면 저절로 연말되고, 연시되고, 새해가 된다고 믿는다. 이 숙살의 아침을 보았다면 겨울을 위해, 내년을 위해 단 한 권의 책이라도 읽어 자기 자신을 위한 지방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미련 떨다가 무슨 생존권 운운하면서 정부더러 도와달라고 떼쓰지 말고. 정부에 도와달라고 떼쓰는 건 결국 납세자인 이웃에게 돈 내놓으라고 떼쓰는 것 아닌가. 뭘 맡겨놓은 것 내놓으라는 식으로, 세금도 별로 내지 않던 사람들이 과격하게 나서는 걸 보면 뭔가 도덕 교육이 잘못되지 않았나 싶다. 국민기초생활대상자라면 국가가 적극적으로 도와야 하지만 자신의 실수까지 책임져달라는 건 넌센스다. 은행, 건설회사, 피코인지 뭔지에 당한 중소기업, 작년에 배추농사가 재미보았다고 올해 또 심었다가 값이 폭락하자 남 원망하는 사람들...연탄값 걱정하고, 당장 오늘 점심 먹을 일이 막막한 국민기초생활자들도 있는데, 제발 자기가 한 짓에 대해서는 조용히 감수하며 살아줬으면 좋겠다. 저 불쌍한 초목들도 아무 불만없이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는데 왜 인간들만 이렇게 목소리가 큰가. 살 길을 찾아 살아온 것이 오늘날 인간 진화의 결과다. 지혜로 극복해야지 남 밟아, 남의 것 뜯어, 남 도움 구해 어떻게 해보려는 건 인간이라는 종의 발전에 아무 도움이 안된다.

 

우리집 초목들에 경의를 표한다. 내가 너희들에게 참 많은 걸 배우고 덕분에 깨닫는다.

내년에 다시 보자. 내가 너희들 영혼같은 씨앗을 잘 거두어 소중히 지녔다가 아지랑이 오르는 날, 거름 넉넉히 내고 땅에 묻어주마.

그러거든 씩씩하게 다시 자라다오. 가물면 물 주고, 비오면 물 빼주마. 그러니 오는 겨울, 편히 쉬거라.

나는 너희들 씨앗을 지켜야 하니 겨울잠 안자고, 굴 속에 안들어가마. 이게 끝이 아니야. 그럼 마음이 놓이지? 안녕.

===================

오후에 화분 네 개를 내어 고추 두 포기, 토마토 한 포기, 숙살에도 살아남은 어린 봉숭아 열 포기쯤 뽑아 심었다.

일단 물을 주어 화분을 적셔준 다음 현관에 들여놓고, 며칠간 해가 날 때마다 화분을 내놓아 햇빛을 보여준 다음 거실로 들여올 것이다.


- ㅅ리 내리기 전에 찍은 칸나. 뿌리를 캐어 내놓고 마음대로 가져가라고 쪽지를 적어 놓으니 동네사람들이 가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