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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전원 이야기

전원주택용 땅 사는 법

2008/11/24 (월) 10:34

 

나도 처음에 전원생활을 꿈꾸며 시골에 내려올 때 땅 사는 문제로 고민하고, 후회하고, 땅을 쳤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도회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특히 은퇴 후 퇴직금 들고 땅 고르는 이들은 눈여겨 읽어주시길 바란다.
 
어떤 땅이 좋으냐, 이 문제는 저 아래 어딘가 전원주택이란 제목이 들어간 글로 웬만큼 설명한 것같으니 생략한다.
중요한 것만 다시 적으면 습기 없는 땅, 햇빛 잘 비쳐 양명한 땅, 근처에 공장이나 축사가 없는 땅, 너무 외지지 않은 땅 등이다.
길없는 땅 같은 건 부동산의 상식이니 말할 것도 없지만, 그런데도 잘 속는 사람들이 있으니 시시콜콜 말해줄 수도 없고...
 
오늘의 주제는 땅값이다. 다른 문제는 이 칼럼을 찬찬히 읽어보면 배울 수 있는 것들이니 죄다 생략한다.
이 세상에 땅값처럼 들쭉날쭉인 것도 없다. 땅값은 정찰제가 없다. 가끔 토지공사가 정찰제 가격으로 팔기는 하지만, 엄청나게 비싸다. 그래도 법률적으로 안전한 땅이니 돈 있는 사람들은 그런 데가 좀 낫다. 주변 환경도 말끔하게 치우고 다듬어 파는 거니까.
하지만 좀 싸게, 그러면서 전원을 만끽하고 싶은 분들은 부득이 취락지 인근으로 가기 마련인데, 여기서 매우 복잡해진다.
원래 정찰제가 아니고 흥정제가 되면 태국이나 베트남 가서 길거리 행상들한테서 조잡한 기념품을 사는 거나 비슷해진다.
처음에는 백 달러라고 하던 물건이, 버스가 출발하려고 시동걸어 붕붕거리면 50달러로 내려가고, 차에 올라타 차창을 내다보면 20달러로 내려가고, 차가 슬슬 움직이면 10달러로 내려가는 그런 풍경과 다를 바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제조원가는 1달러도 안되기 때문이다.
 
땅이 그렇다.
땅값을 부르는 기획부동산업자들 말에 구구단이란 은어가 있다. 워낙 은밀한 말이라 중개사들도 잘 모른다.
예를 들어 땅 1000평(3305평방미터)을 사려고 들면 부동산에서는 이런 셈을 놓는다.
3만원에 팔면 3천만원, 10만원에 팔면 1억원, 100만원에 팔면 10억원... 이런 식으로 암산하는데 이런 셈법을 구구단이라고 한다.
원가는 결코 밝히지 않는다. 그러고는 구매자의 의식 수준, 교육 정도, 재산 상황 등을 짐작하기 위해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는다.
 
주말에는 운동을 하시느냐? - 골프한다고 하면 골프 8학군 운운, 인근 골프장 때문에 찾는 분들이 많다는 등 하여 구구단이 높아진다.
자제분들이 찾아와 쉬기 좋다. - 애들이 시골을 좋아한다고 하면 역시 땅의 장점을 있는 것, 없는 것 다 쳐서 구구단이 높아진다.
혹시 하시는 일은? - 은퇴했다고 하면 바로 공격당한다. 만만한 게 은퇴자들이니까.
 
내가 들은 얘기가 많지 않아 경우의 수를 다 늘어놓지는 못하는데, 이렇듯이 구매자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부동산 선수들의 표적이나 땅값을 계산하는 변수가 된다. 특히 넓은 땅일수록 구구단 셈이 아주 간단해진다. 1만 원만 올려도 수천 만원이고, 10만 원을 올리면 수억 원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적고 보면, 누가 당하겠느냐 싶지만 아주 많은, 정말 많은 도시인들이 땅 잘 샀다고 즐거워하다가 그야말로 땅을 치는 경우가 많다. 몇 년 전 수도 이전 문제로 인근 땅값이 들썩거릴 때 이런 구구단이 적잖이 작용했다. 그런데 반쪽 수도가 되기로 결론이 나는 순간 땅값은 원가 이하로 떨어져버려 그때 큰돈 주고 산 분들은 처분하지도 못하고 버리지도 못하고 애물단지처럼 등기부등본만 쥐고 있다.(부동산 사무실이 허접해보이고, 사람들이 점퍼차림으로 순박하게 앉아 있으니 논에서 일하다 온 줄 알고 만만하게들 보겠지만, 실은 다 선수들이다. 거미줄 쳐놓고 어리버리한 도시놈 안걸리나 기다리는 중이다)
 
이곳 수도권도 마찬가지다. 내가 잘 아는 곳에 원가 3만원 짜리 땅을 70만 원에 산 이들이 여럿 있었다. 그곳 땅은 비싸봐야 10만원인데도 그랬다. 도로 가까운 평지 밭이 10만원이므로, 도로에서 무려 1.5킬로티미터나 떨어지고, 길도 편도 경운기 길이 나 있고, 물도 안나는, 그러면서도 아랫마을보다 온도가 평균 2~3도 더 낮은 땅, 지목이 임야라서 용도변경하려면 골치 아픈 땅이 왜 70만원이나 해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이 구구단 고수들은 구매자를 현혹시킬 드라마 대본을 충분히 갖고 있다.
 
구구단을 믿게 하려면 그에 따른 대본이 있어야 한다. 이들은 구매자가 없는 날에는 찻집이나 식당 구석방에 모여 은밀해 드라마 대본을 꾸민다. 언제 찾아올지 모를 서울내기를 잡아채기 위해 그럴 듯한 대사, 플롯을 꾸민다. 지난 지방선거에 출마한 어중이떠중이들의 공약을 밑줄 쳐가며 대사로 쓴다. 증거물이 있으니 오죽 좋은가. 이들 대본에 따르면 시장, 의장 정도는 주말마다 골프 같이 치는 친구로 삼고, 국회의원 서넛은 기본으로 데리고 있다시피 한다. 또 이들에게서 땅 산 사람들 중에서 되팔아 수백 억 이익 본 사람도 여나믄 명 된다. 물론 다 대본상에나 있는 말이고, 실제로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기껏 알아야 지능지수  떨어지는 시의원 정도 하나쯤 붙잡고는 있을지 모른다.
 
모든 제품 설명서에 단점은 일부러 감추듯이 땅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공동명의 땅, 즉 등기필지를 여러 사람이 나누어 사는 것도 아무 문제없이 팔아치운다. 이쪽 A 지역은 한의원 원장이 샀고, C 지역은 정형외과 의사가 샀고, D 지역은 어디 지법 판사가 샀고, F 지역은 모대학 교수가 샀다, 이런 드라마 대본이면 대개 넘어간다. 사실 공동명의로 된 땅은 그 모든 등기인이 동의해주지 않는 한 재산권 행사가 불가능하다. 이런 식으로 땅사서 지금 땅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집 좀 지어보려고 아무리 그놈의 원장, 판사, 의사 연락하려고 해도 연락이 안되니까. 그냥 무용지물이 되고 마는 것이다. 업자들 지도에만 분할이 되어 있지 등기소 등기부에는 그냥 한 덩어리이므로 그 많은 의사, 판사, 교수가 다 모여 동의하지 않는 한 삽질조차 못한다.
 
* 부동산 가치 올릴 때 이미 구매한 사람들 명단에 잘 들어가는 게 의사, 한의사, 판사, 검사, 변호사, 교수다. 알고들 있으시길. 이 사람들 거론되기 시작하면 사기가 시작되었구나, 이렇게 알면 간단하다. 이름만 보고는 판산지, 검산지 누구도 모르거든. 그러다 혹 검찰청 명단 보고 그런 검사 없다 따지면, 얼마 전에 퇴임하여 변호사한다고 하면 그만이고.
 
하지만 운이 좋아 어찌어찌 해 분할을 하여 단독 등기를 내는데 성공했다 치자. 그 다음에는 용도변경이다. 시골 공무원들 만만한 줄 알고 덤비다가는 큰코다친다. 이놈들(내가 아는 몇몇 놈만을 지칭하는 말임. 좋은 공무원들은 신경쓰지 마시오)이 어찌나 영악한지 잘못 걸리면 시간 엄청 잡아먹는다. 될 일도 안되고, 안될 일도 되는 게 이놈의 공무라는 것이다. 담당자 아니면 말도 붙여볼 수가 없는데, 이 담당자란 놈은 걸핏하면 출장이다. 전화도 안된다.
 
그래도 운이 좋아 담당 공무원을 만났다 치자. 공무원 입장에서 보면, 땅 문제 만큼 골치 아픈 것도 없다. 벼라별 법이 거미줄처럼 늘어져 있어 자칫하다간 나중에 자기 목이 날아가기 딱 좋은 것이 땅 관련 허가다. 건축법은 둘째 치고, 무슨 수질보전이니, 환경이니, 뭐니뭐니 걸리는 법이 수두룩하다. 이런 걸 겨우 시골에서 9급 시험쳐 들어간 공무원한테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사시 정도는 패스해야 겨우 보일 정도로 법이 복잡하다. 아무 거나 걸고 들어가면 안되기 십상이다. 무슨 법 때문에 안돼요, 이러면 속수무책이다.
 
결국은 땅판 그 부동산업자가 나서서 로비 명목으로 돈을 요구한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거미줄 같던 '안돼요 법망'을 헤치고 되는 길이 나온다. 참 묘하다. 이게 뭔지 나도 모르겠다. 하여튼 허가가 나온다.
 
그렇다고 끝이 아니다. 허가가 나와 어느날 건축업자하고 계약을 맺었다 치자. 여기서도 어떤 건축업자냐, 대개 그 부동산업자, 바로 자신을 사기친 그 업자 소개로 또다른 바가지 건축업자를 만나는 게 거의 정해진 코스다.
기분이 좋아가지고 불도저를 앞세워 그 땅으로 진입하는 순간, 또다른 절망에 부딪힌다.
- 중장비 마을 도로 진입 금지!
- 8톤 트럭 마을 진입 금지!
으레 이런 플래카드가 먼저 눈에 띈다. 어쩌면 터고르기 작업을 한다는 소문을 들은 마을 청년들이 경운기를 갖다 마을 입구를 막아놓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주택이면 대화의 여지나 있지 공장이라도 지을라치면 마을 주민들이 다 나서서 머리끈매고 달려들 것이다. 시뻘건 글씨로 휘갈긴 섬찟한 플래카드가 몇 장 걸릴지도 모른다.
- 돈이면 다냐! 우리 마을이 서울사람들 양로원이냐!
- 불도저 소리에 우리 송아지 놀라 죽는다!
- 중장비 소음에 놀라 젖소 젖이 안나온다!
- 아름다운 우리 마을, 공장으로 더럽히지 말라!
- 아이고, 우리 아이들더러 공장 오폐수를 먹으며 살라는구나!
- 결사반대!
지방 다니다 플래카드 보면 재미난 문구가 참 많다.
어쨌거나 당신이 절망하고 있을 때 건축업자가 다가온다.
 
- 그러지 마시고 마을 이장님 찾아가 인사를 드리세요.
이장 만나는 게 무슨 대통령 만나는 것처럼 어려운지 건축업자가 나서서 이리저리 주선해야 논에 갔다, 면에 갔다, 밭에 갔다던 이장을 어렵게, 정말 힘들게 만날 수 있다. 그러고도 그 높은 콧대는 청와대나 재벌 저리 가라다.
눈치없이 '이장님'을 뵙고도 박카스 한 박스 정도나 내놓고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생각하면 큰코 다친다. '이장님'은 면사무소에 긴할 볼 일이 만들어지고, 그는 오토바이를 타고 휭하니 사라진다. 여전히 중장비는 마을 입구에서 한 발도 움직이지 못한다.
이러면 마을 청년 하나 정도가 따라오고, 건축업자하고 입씨름을 하는 드라마가 연출된다. 이게 원래 각본이 있다.
그러다 건축업자가 마지 못해 나오는 듯이 돈을 얼마 건네라고 부탁한다. 마을발전기금, 경로당월동비, 뭐 명목은 수두룩하다.
거기서 돈을 뜯기고 나면 신기하게도 '결사반대'하겠다는 마을 사람들이 싹 없어지고 경운기도 다 제자리로 돌아간다.
바쁘다는 이장은 아침저녁으로 찾아와 이것저것 돌봐주고, 신경써주고, 어떤 때는 음료수도 사다준다. 본디 착한 사람들인지는 모르겠는데, 시절이 그들을 이렇게 만들어놓았다.
 
그렇게 해서 집을 짓기 시작했다고 치자.
이번에는 건축업자가 드라마를 쓸 차례다. 이 사람은 왜 그렇게 설계변경을 자주 하자는지 모른다.
창호가 조금 더 나은 게 있는데, 그걸로 하자.
뭐가 어쨌다, 이상한 건축용어를 들고나오기 시작할 것이다.
뿐인가. 건축비를 수시로 선지급해 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다 공정보다 돈이 더 갔다고 생각되어 지불을 미루면 당장 공사는 중단되고, 일하던 사람들이나 장비는 다른 곳으로 가버린다.
낯선 시골에서 어디 하소연할 데가 없다. 법으로 해결하기에는 손해가 더 크다.
 
또 천신만고 끝에 집을 지었다 치자.
겨울이면 바람이 숭숭 들어오고, 어쩌면 1년이 안가 수도꼭지가 비틀리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장마철에 누전이 되어 차단기가 내려갈지도 모르고,
화장실 하수도는 막혀 냇물에서 목욕하듯이 해야할지도 모르고, 문짝이 뒤틀어질지도 모른다. 그때 가서 보증수리는 불가하다.
알아서 수리해가며 살아야 한다.
 
수리까지 해서 집에는 문제가 없다 치자.
그 다음 마을에서 무슨 잔치 때마다 나와라 들어가라, 회비 내라, 부역 나와라, 온갖 시비가 들어온다.
부역, 이건 조선조에나 있던 건데 시골에는 아직도 있다.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라서 마을 주민들이 알아서 풀 깎고, 청소하는데 그때마다 마을 주민들이 우르르 나와 일한다. 그때 나가서 얼굴이라도 비쳐야지 안그러면 왕따당한다.
일년에 한번 이장조라는 租도 내야 한다. 조세할 때의 조가  바로 이건데, 한자로 구실 조 자다.
이장조를 낼 때면, 아 내가 치외법권지대에 살고 있구나 하고 절감하게 될 것이다.
그때는 이미 늦었다. 그냥 적응하며 살다보면 비로소 하나둘 전원에 사는 즐거움이 눈에 보이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전원주택에 입주한 지 한 3년은 돼야 그 맛을 누리지, 이전에는 열이 나서 제대로 보이는 게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시골에 살 가치가 있는가?"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고 답한다. 모순 같지만 막상 이런 과정을 거치고나면 나머지는 '행복' 뿐이다. 행복의 관문이 이렇게 복잡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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