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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운 작품/태이자 우리말 사전 시리즈

교황이 총애한 멜론? 영혼이 없는 표현이다

조선닷컴에 아래 사진과 함께 기사 하나가 올라왔다.

그런데 제목이 매우 불편하다. 이 말을 뒤집으면 교황이 먹은 채소이니 '기가 막히다'는 논법이다.

교황은 한 인간이다. 커피를 좋아할 수도 있고, 밀가루 음식을 싫어할 수도 있다.

한 인간의 기호를 놓고 그 식품의 가치를 절대 평가하는 건 큰 잘못이다.


조선일보 본문 기사에 이런 내용이 실제로 나오니 조선닷컴 편집자가 제목을 저렇게 뽑은 것이다. 한 사람이 거짓말하면 다른 사람도 그 거짓말을 따라온다.


조선일보 ; 이 멜론은 그냥 멜론이 아니다. 프로방스 카바용 지방에서 재배된 카바용 멜론. 교황이 총애한 과일로, 아비뇽 유수로 교황이 거처를 로마 근처에서 아비뇽으로 옮기면서 멜론이 따라왔고, 아비뇽 인근의 카바용에서 재배되며 ‘카바용 멜론’이 되었다고. 얼마나 기가 막힌 맛인지 카바용에서는 매해 7월 ‘멜론 기사단’이 조직되고, 소설가 알렉산드르 뒤마는 자신의 책을 카바용 시립도서관에 기증하고 죽을 때까지 매해 열두 개의 카바용 멜론을 받았다고 한다. 


이 글에서 '총애한'은 잘못 쓰인 말이다. 금 그은 말은 무슨 뜻인지 몰라서 그었다. 

채소나 과일은 즐기는 것이지 총애하는 게 아니다. 또 '얼마나 기가 막힌 맛인지'라는 표현은 글쓴이 개인 주장이다. 멜론은 우리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 마트에 쌓여 있다. 내 고향 청양에서는 멜론을 많이 재배한다. 다만 카바용 멜론의 맛은 안봐서 모르지만, 그래도 이렇게 표현될 수는 없다. 먹을거리 하나 가지고 교황 끌어들이고, 소설가를 끌어들이는 거야 재미삼아 그럴 수 있다지만, 그렇게 해서 사실을 비틀려고 대들면 안된다. 글은 정직해야 한다. 사족이지만 멜론을 과일이라고 표현한 것도 틀렸다. 과일 아닌 채소다.





양귀비가 먹었다 하여 유명해진 과일 용안(龍眼) 혹은 리치도 있지만, 그냥 양귀비란 한 여성이 좋아한 과일이라는 사실 정도로 소개하면 그만이지 그래서 천하별미다, 이러면 거짓말이 된다. 못보고 못먹을 때는 거짓말이 통하지만 리치는 뷔페 식당에 가면 흔하게 나온다. 

대통령이 읽었다는 책이면 금세 베스트셀러가 되는 이런 종 문화에서 비켜 서 있어야 한다. 자주적으로 생각하고 자주적으로 생각해야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그나마 바른 길을 갈 수 있다. 


* 멜론 ; 서양 참외. 제211대 교황 바오로 2세가 멜론 애호가였다고 한다. 그런데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멜론이 원인이라고 당시 기록에서 지목했다. 달콤한 멜론을 평소 너무 많이 먹었다고 한다. 제213대 교황 이노센트 8세도 멜론을 즐겼다. 멜론을 반으로 잘라 와인을 부어 반주로 마시고, 아침 공복에 멜론을 서너 개씩 먹었다고 한다. 

사실 멜론은 늙은 호박, 늙은 오이라는 뜻으로, 원래는 맛이 없는 채소였다. 14세기경, 품종개량이 이뤄졌는데, 사향노루 분비물인 사향 향기가 나도록 바꾼 뒤로 몇몇 음식을 탐하는 교황들이 이 맛에 푹 빠진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개량된 멜론은 사실 머스크 멜론이라고 불린다. 오늘날의 멜론은 다 머스크 멜론인데, 머스크는 사향이란 뜻이다.

-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머스크 멜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머스크가 뭔지 모르기 때문에 그냥 멜론이라고 불린다.


* 사향 ; 사향노루의 자지 앞에 공프공 정도 크기의 사향샘이 있다. 암컷을 유혹하기 위한 분비물이 나온다. 즉 이 사향노루의 향낭을 떼어 갈라 말리면 사진처럼 가루가 나오는데, 알콜에 몇 년 정도 담가둬야 한다. 지금은 사향노루 향낭을 채위하는 게 금지되어 화학적으로 합성하거나 대체물질을 쓴다. 어쨌든 교황이 이성을 유혹하는 냄새에 탐닉했다는 것 자체가 부적절한 것이다. 불교에서는 향수를 금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