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파란태양/*파란태양*

일본인들에게 ‘천하(天下)’를 가르쳐 준 사람

파란태양 | 2007/05/19 (토) 19:30

 

 

일본인들에게 ‘천하(天下)’를 가르쳐 준 사람 <오다 노부나가>

 

 

일본인들은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이 세 사람에 유난히 집착하는 듯하다. 관련 소설, 연구서도 엄청나게 많고, 새 책이 발표될 때마다 새롭게 바라본다. 아마도 분열되어 있던 일본을 통일시키고, 나아가 조선, 청, 동남아시아 등을 지배했던 20세기 초의 일장춘몽(一場春夢)의 원동력을 그때 그 시절에서 찾는지도 모른다.

 

 

잠옷바람으로 골목길을 누비던 ‘골통’ 노부나가는 120년 전국(戰國)의 소용돌이에 어떻게 마침표를 찍었는가, 바늘장수 출신의 ‘원숭이’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통천하(一統天下)를 어떻게 운영했는가, 살아남기 위해 아내와 장자를 죽인 ‘졸장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두 차례에 걸친 조일(朝日) 전쟁의 후유증과 분열된 민심을 어떻게 수습해 나갔는가 꼼꼼히 따져보고, 갖가지 시뮬레이션으로 역사를 현실에 적용해 본다. 그렇게 쓰고 또 쓰고, 읽고 또 읽는다. 그 세 사람이 했다고 전해지는 말은 금언, 격언이 되어 어린아이들까지도 외워 일상 대화에 쓴다.

우리가 ‘유신은 김유신, 성웅 이순신’ 하면서 극소수의 이름만 갈고닦을 때 일본인들은 역사인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검증하고 승인과 패인을 캐고, 그 결과를 확인한다. 그리고 현실에서 외운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만일 이순신의 난중일기에 동료들을 욕하는 내용이 왜 그렇게 많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면 그것은 발칙한 도전으로 간주된다. 미사려구와 찬사만 원하는 일부 문중에서는 역사소설의 구절구절 줄을 치며 따지고 들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소송도 불사한다. 그러면서 한 점 흠이라도 밝혀질까봐 전전긍긍한다.

 

 

이 소설 <오다 노부나가>는 그런 점에서 주인공과 주변 인물을 깜짝 놀랄만큼 치열하게 분석하고 있다. 일본사에 어두운 독자라면 짜증이 날 정도로 왜 그랬을까, 왜 이겼을까, 왜 졌을까 하는 탐구가 줄기차게 이어진다. 부끄러운 건 부끄러운 대로, 멋있는 것은 멋있는 대로 그린다.

 

 

오다 노부나가는 당시 조선의 양반들이 가지고 있던 성리학적 엄숙주의와는 정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던 실용주의자였다. 어쩌면 그는 비효율적이고 매사 유명무실하고, 120년이나 내전을 하고도 지지부진하기만 한 일본이란 부실기업을 철저하게 구조조정시킨 사람이었다. 사무라이식의 칼싸움보다는 철포군을 앞세우고, 농민군 대신 급료를 지급하는 직업군인을 양성하고, 막연한 권위만 가지고 있는 천왕 제체를 거부하면서 능력 있는 자를 그 능력에 맞는 자리에 속속 앉혀 놓았다. 혈통과 가문을 자랑하며 거드름을 피우던 귀족과 왕족을 응징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처럼 천하지만 실력있는 인재를 중용했다. 그런 일본이었기에 나중 임진・정유 두 번에 걸친 전쟁에 패하고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가 비록 부하에게 피살되어 또다른 부하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유산을 넘겨주었지만, 그가 이루어낸 나라는 조선이나 명나라로부터 멸시를 받던 왜국이 아니라 그들과 전쟁을 벌이고, 미국과 맞짱뜰 수 있는 일본이었다. 오다 노부나가는 천하포무(天下布武)를 외쳤고, 그 영향을 받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과 명나라를 쳐서 정말로 천하를 통일하겠다며 군사를 일으켰다. 일본인들에게 그러한 상상력과 실천력을 심어준 것만으로 오다 노부나가는 일본의 영웅이요, 주변국인 우리의 우환이었음에 틀림없다. 더 큰 우환은 우리는 아직도 귀천을 가리는 유교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끊임없이 오다 노부나가를 추구하는 일본이 가장 가까운 이웃에 있다는 사실이다.

 

- 연도와 발표 시기는 나중에 확인해 싣기로 한다. 조선일보에 쓴 서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