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아직도 굶어죽는 사람이 있는가?
- 왜 아직도 슬픈 사람이 있는가?
- 왜 이렇게 아픈 사람이 많은가?
- 왜 이렇게 괴로운 사람이 이다지도 많은가?
인류 역사 약 10만 년이라고 한다. 연구 결과에 따라 더 길어질 수도 있다.
기독교 일부 목사들의 주장대로 5천년 뿐이라고 쳐도 그렇다.
인류는 수렵채집시대에도 존재했다. 그때는 도리어 빈부격차는 적었다. 욕심만 부리지 않는다면 누구나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
다만 자연재해 때문에 먹을거리 자체가 없어 굶어죽는 일이 자주 생겼다. 또 맹수나 천재지변으로 죽는 일이 많았다. 먹고살기 위해 짐승을 뒤쫓다 도리어 그들에게 잡아먹히는 일도 생기고, 벼랑에서 떨어지거나 먹을거리를 두고 이웃부족과 싸우다 죽는 일쯤은 아주 흔했다. 그래도 특별한 시기가 아니면 행복했다.
이 시기의 고통을 해소하고자 일어난 문명이 농경이다. 수렵이나 채집 방식으로는 인류의 생존이 안전하게 보장되지 않았다. 식량 자체가 부족했다.
그래서 강가에 씨앗을 뿌려 열매를 따거나 채소를 뜯어먹었다. 고기는 위험천만한 사냥으로 충당하는 게 아니라 돼지새끼를 주워다 길러 나중에 크면 잡아먹는 <축산>을 일으켰다. 그렇게 소, 토끼, 양, 말, 닭 등을 길러 고질적인 식량 문제를 해결했다. 수렵채집 시대에 비하면 농경시대에는 비교적 안전하게 생존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잉여농산물, 잉여축산물이 생기면서 이것이 권력으로 발전했다. 넘치는 것이 썩자 권력이 돼버린 것이다.
쓸데없는 부족장, 왕이 생겨 전쟁을 치르거나 아집과 망상으로 다른 사람을 통제하는 인간 내면의 나쁜 버릇이 도졌다. 이른바 천재지변을 대체할만큼 악랄한 '독재자'라는 괴물이 등장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인류는 사실상 농경시대에 이미 모든 사람이 다 먹고살고도 남을만큼의 식량을 생산해냈지만 여전히 굶어죽는 사람이 나타났다. 1950년대에 중공에서는 수천만 명이 굶어죽는 사고가 모택동 한 사람의 오판으로 발생하고, 그 이전 식민지 인도에서도 뱅갈주 사람들이 처칠 한 사람의 오판으로 수백만 명(300만 명에서 최대 700만 명까지로 추정)이 굶어죽는 사고가 생겼다. 식량이 남아도는 데도 이런 일이 생긴 건 오로지 인류가 가진 탐욕과 분노, 무지 때문이다.
그런 중에 그만 산업시대가 일어났다. 농경시대 인간 탐욕의 부조리가 개선되지 않은 채 인류는 몇몇 엘리트에 의해 그만 산업시대로 펄쩍 뛰고 만 것이다. 농경시대의 부조리를 해결하기 위해 석가모니 붓다가 나타나 자비, 보시 등을 강조하고, 예수가 사랑을 외쳤지만 거의 실천되지 않았다. 불교교단이 권력집단으로 변하고, 기독교, 천주교, 이슬람교 등 그 어떤 종교도 농경시대 인류가 안고 있는 소수권력에 의한 폐해를 해결해내지 못한 채 스스로 높고 두터운 성을 쌓았다. 그런데도 하늘은 급한 마음에 인류를 산업시대로 진입시키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일개 미친 왕이나 무지한 왕에 의한 피해보다 더 무서운, 윤리나 도덕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 얼굴 없는 <자본>이 인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자본의 넘치는 힘은 서양 여러 나라를 강하게 만드는 대신 동양 여러 나라를 미개국으로 만들어버렸다. 먹고사는 문제에서 동서양 모두 충분하고 넉넉하였지만 이 <자본>은 기어이 동양을 가난한 대륙으로 만들어버렸다.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는 탐욕으로 가득 찬 <자본>의 먹이가 되어 굶고, 인신매메에 희생되고, 인권이 유린되는, 인류 역사상 가장 악랄하고 나쁜 형태로 나타났다. 수렵채집 시대에는 아주 소수가 인권유린으로 고생했으며, 농경시대에는 약간의 다수가 희생되었지만 산업시대를 지배하는 <자본>은 절대 다수를 굶기고 학대하고 시련에 빠뜨렸다.
이런 중에도 산업사회의 <자본>으로부터 인류가 해방되기도 전에 그만 정보화사회가 닥쳐 역시 <자본>을 더 살찌우고, 그러고도 IT사회가 급히 달려오면서 인류는 바야흐로 소수의 3~4%가 90% 이상을 착취하는 악마의 시스템으로 자리를 잡아버렸다.
식량이 넘치고 의료 기술과 의약이 넘치고, 소비재가 백화점이며 마트마다 산같이 쌓여 있는 이 시대에 아직도 배고픈 사람이 존재하고, 아파도 치료받지 못해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인류의 치욕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이 모든 것을 해결할 유일한 길은 오직 <반야> 뿐이라고 추정한다. 반야는 다이아몬드와 같아서 결코 부서지지 않으며, 무뎌지지 않는 시퍼런 날 같은 것이다. 자본의 탐욕을 베어버릴 것이며, 인류를 옥죄는 그 오만하고 편협한 자본이라는 허깨비를 쳐부술 것이다.
아나파나가 인류의 반야를 벼릴 것이다. 반야는 바이오코드라는 금강저로 온세상의 무지와 탐욕과 어리석음을 깨부술 것이다.
인류는 넘치는 풍요 속에서 스스로 가난하고, 스스로 고통받았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한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사실은 공기나 물처럼 넘치고 넘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인류는, 이 아름답고 풍요로운 지구에서 더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려야 한다.
인류 개개인은 누구다 다 신성(神性, 佛性)을 갖고 있다. 누구도 누구보다 높지 않으며 누구도 누구보다 낮지 않다. 모두 다 행복할 권리가 있고, 모두가 다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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