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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힘/가던 길 멈추고 2017

긴 추석, 짧은 만남

이번 추석이 열흘이나 쉬는 긴 휴식이지만, 나는 쉬는 날이면 더 바빠지는 곳에서 일하는 딸의 근무일을 맞추느라 2일과 3일에는 김해의 장인장모 성묘를 가고, 3일 저녁 늦게 시골 집에 갔다가 이튿날인 4일 아침 일찍 올라왔다.

 

김해에서는,(여기에 쉼표를 끊어 찍지 않으면 '김해라는 시 안에서 자주 못보는 것으로 되므로) 자주 보지 못하는 처제들을 만나 오랜 얘기를 꺼내 이리저리 맞추고 더듬느라 바쁘게 보냈다. 김해도자박물관과 미술관을 구경한다고 갔지만 문이 닫혀 있어 거리의 가게 몇 군데만 들러 작품을 감상했다. 그러고는 낙동강레일바이크를 탄다고 갔는데, 예약이 밀려 못타고 와인동굴만 구경했다. 지금은 쓰지 않는 기차 터널에 와인동굴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런대로 구경할만했다.

 

시골에서는 아침 차례를 지내기도 전에 나와 섭섭하지만, 딱히 크게 아쉽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어머니 안계시고, 아버지 안계시니 그냥 남의 집같다. 딸도 동생들 보았으니 그로써 됐단다. 게다가 형수들이 날이갈수록 남성호르몬이 넘치는지 목소리가 커서 그것도 듣기 싫고, 얼굴 익힌 동네사람들이 날로 줄어 지금은 몇 안되다 보니 낯선 얼굴 마주치기도 싫어서 그런가보다. 산천이야 그대로지만 어머니, 아버지 없는 그 산천은 이미 의미가 없다. 부모님 계실 때는 언제고 고향으로 돌아가 집 짓고 살아야지, 그런 생각으로 지금 있는 집도 새로 지었건만 지금은 아무런 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하늘 위, 하늘 아래 딱 나 하나뿐이더니, 추석 연휴 내내 정말 이 넓은 우주에 나 홀로 있다는 사실이 뚜렷하다. 나를 나누면 두 개가 되고, 네 개가 되고, 그렇게 벌어져 하늘의 별처럼 늘어나겠지만 본질은 역시 나뿐이고, 나조차도 그림자 없는 허망한 존재다. 반야로써 세상을 바라보니 나는 점점 흐려지고, 내가 누구였는지 잘 모를 때도 있다. 두뇌라도 있어 지난 날의 기억이라도 있으니 망정이지 혹시라도 길가다 넘어져 다치기라도 하면 그때는 정말 내가 없어질 것같다. 굳이 움켜쥘 마음도 없으니 더 그러하다. 그래도 기록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