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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소나무는 왜 곧게 자라지 못할까?

파란태양 | 2007/05/26 (토) 23:34

 

 

우리 소나무는 왜 곧게 자라지 못할까?

   

소나무는 우리나라를 상징할만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종(樹種)이다. 그 푸르름 때문에 고려 시대부터 왕실에서 적극 장려하게 되었고, 동방목(東方木)이라는 음양 오행의 이치 때문에 더더욱 사랑을 받은 철학적인 나무이다. 동방 목기(木氣)를 생산하는 청색(靑色)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그 옛날의 소나무는 어떻게 생겼는지 잘 알 수 없으나 현재 남아 있는 소나무를 볼 때 그 특징은 꾸불꾸불하게 자라오른 그 질긴 생명력이 으뜸인 것같다. 그러한 생명력 때문에 소나무가 우리 민족의 사랑을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소나무 하면 휘휘 가지를 늘어뜨리고, 가능하면 서너 바퀴쯤 빙빙 돌아 구부러지면 더 아름답다고들 한다. 정원수로 쓰이는 소나무는 구부러질수록 더 값이 나간다. 그래서 그 구부러짐을 찬미하는 시가 어디 한두 수 씌여졌던가.

 

 

나도 그런 줄만 알았다. 우리 소나무는 휘돌아감기듯 세상을 원망하듯 인내하듯 그렇게 구불구불 자라는 게 소나무의 본질인 줄 알았다.

 

그런데 미국 서부 지방이나 몽골 북부,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 부근에 수없이 자라고 있는 똑같은 소나무를 보았을 때 나는 내 생각이 많이 잘못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이국 땅에서 쭉쭉 곧게 자란 소나무는 어느 나무 못지 않게 의젓했다. 밑동의 굵기로 보아도 늙은 느티나무 굵기만했다. 한 군데 구부러짐 없이 하늘로 치솟아오른 그 늠름한 자태를 보자니 우리 소나무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 소나무들은 한결같이 튼튼하고 넉넉한 목재로 쓰일만큼 잘 자라고 있었다. 식물학자의 눈으로는 우리 소나무와 얼마나 다른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눈으로 볼 때는 우리 소나무와 똑같은 수종이었다.

 

이런 것인가 보다.

 

땅이 달라지고 물이 달라지면 하찮은 식물도 체질이 달라지는가 보다. 뜨거운 여름, 한파 몰아치는 겨울을 무쇠 담금질하듯 자라야만 하는 우리 소나무는, 그나마 척박한 산간에 겨우 비집고 서서 어렵게 어렵게 자라다 보니 죽지 않고 살기 위해 그렇게 구불구불 생존만 하는 것이다. 목재로도 쓸 수 없는, 그래서 고상한 그 자태만으로 그냥 가치를 주장할 뿐인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교포들에게 이 소나무 이야기를 꺼내자 여러 가지 이야기가 함께 쏟아져 나왔다. 한국에서 가져온 무우나 배추, 고추 따위를 심어 보면 비교할 수없을 만큼 크게 잘자란다는 것이었다. 뭐든지 크다, 이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래서 몇 가지 맛을 보니 맛이 비슷한 것도 있고, 좀 떨어지는 것도 있고, 약간 이상한 맛이 들어간 것도 있었다. 딱히 뭐가 더 좋고 나쁘다기 보다는 맛이 좀 달랐다. 흔히 맛이 없다고들 표현하는데 꼭 그렇지는 않고 함유 성분이 서로 차이가 나는 듯했다.

그밖에 엉겅퀴꽃이나 유채꽃, 코스모스 따위를 살펴 보았는데, 꽃색이 한국의 꽃처럼 맑지는 않았지만 자라기는 더 잘 자라는 것같았다.

 

 

바이칼호수 주변에서도 이런 풍경은 흔히 볼 수 있다.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어 있는 것은 이곳 한반도하고 비슷하지만, 그 생김새가 우리하고 달랐다. 꽃잎이 작아서 마치 분꽃처럼 보일 정도였다. 들꽃도 조금씩 차이가 났다.

 

이러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특히 한국 소나무의 그 구불구불한 성정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민족성에 연결되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기후와 토양, 그것이 나라마다 가지고 있는 특징이고, 그것이 곧 민족성을 이루는 요소인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여름과 겨울이 극대비되고, 봄과 가을이 잠시 지나가는 기후에서는 생존이 가장 큰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 그 옛날, 하늘에서 내리는 비에 의존하던 시절에는 봄비가 내리는 며칠 사이에 모내기를 다 해치워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농사를 망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벼를 베고 곡식을 거두어 들이는 일도 정해진 단 며칠 사이에 모두 거두어야만 했다. 그렇지 못하면 때를 놓쳐 무서리에 농사를 망치기 십상이었다.

하다 못해 고추장 된장을 담그는 것도 날짜가 있었고, 지붕 이엉을 얹는 것도 담장을 고치는 것도 날짜가 있었다. 그래서 택일(擇日)이 발달하고 절기(節氣)가 발달하였다.

 

이렇게 때를 정확하게 맞추지 못하면 살 수 없는 자연 환경에서 사람들은 좀 급하고 체념적인 인생관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흔히 한국인의 민족성을 은근과 끈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실상 이 말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우리나라사람처럼 끈기가 없는 민족도 그리 많지는 않은 것같다. 일제에 중독된, 식민사관에 중독된 사람들이 자주 말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가 하면 역시 반만년 역사를 이끌어온 민족답게 우리 민족은 정말 끈질긴 민족이기도 하다. 이러한 서로 모순되는 민족성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그것은 바로 급격한 계절의 변화에 적응하려는 노력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같다. 겨울이 오기 전에 겨울을 준비하는 것, 그래서 생존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가을에 더 추수를 하기 위해 아무리 애를 써도 곧 겨울이 닥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어느 순간 포기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민적 응집력이 결집되는 어느 순간에는 마치 모내기철처럼, 추석이나 설처럼 폭발적으로 일어나지만 곧 한파가 몰아칠 겨울에는 이엉을 더 얹고 장작불을 쟁여놓고 은둔하듯이 생존을 위해 몸을 사리는 경우가 있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것은 아마도 여름과 겨울이 더욱 더 극대비되는 만주족이나 몽골족이 더 심한 것같다. 한때 세계를 지배했던 두 민족이 한편으로 세상에서 가장 못살고 낙후한 민족이 된 것도 그러한 때문인 듯하다. 같은 몽골리안이지만 우리 경우는 농경사회를 통해 축적된 문화가 있고, 그들은 유목사회에서 떠돌아다니기만 했기 때문에 일시적인 폭발력밖에는 그것을 수습하고 지속시킬 힘이 없다.

 

 

민족성은 기후와 환경 변화에 따라 조금씩 변화한다. 의지도 환경을 이겨내지는 못한다. 내가 관악산에 올랐다가 서울 하늘에 자욱하게 낀 검은 스모그를 보고 아이쿠 하고 내려온 지 11년이 되었다. 서울살이하고 시골살이하고 언젠가는 그 차이가 크다는 걸 내가 느끼는 날이 올 것이다.

 

 

- 2000년 무렵에 쓴 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