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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파란태양*

미얀마 단기 출가기 4 / 보시, 그대들은 내게 가난의 바닥까지 긁어 바치는데...


"보시는 미얀마인들의 직업이다."

Zaw Moe Aung이 그렇게 말했다.

"미얀마인들은 돈 안벌고 보시만 하나? 돈이 있어야 보시를 하지."

"그들이 돈을 벌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래야 보시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얀마에도 장사하는 사람, 군인, 정치인, 교사, 부동산중개업자 등 있을 직업 다 있잖나? 동물이 먹이를 구하듯 인간은 돈을 구하러 헤매잖는가."

"그런 건 다 부업이지요. 죽을 때까지 끊임업이 보시하는 것이 미얀마인들의 진정한 직업이거든요. 그래야 그 공덕으로 다음 생에 더 큰 부자가 되어 더 큰 보시를 하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붓다가 될 수 있다고 믿는 거지요. 물론 부자가 되는 게 우선하는 첫째 목표고요."

"갖다 붙이기는."

"아니예요. 아나파나하다 보면 닫혀 있던 머리가 열려 신통력을 갖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스님 안하고 나와 돈 많이 번 사람들이 있어요."

"돈 벌어서 뭐하는데?"

"보시하지요."

미얀마 군부 독재를 피해 한국으로 망명한 Zaw Moe Aung이 농담같은 소리를 한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었다.

미얀마 경제수도 양곤의 한 종합시장에서 깜짝 놀랄만한 광경을 보았다. 시장에는 외국인 관광객, 미얀마인 등으로 늘 붐비는데 그런 중에 오후에는 사미와 비구니들이 떼를 지어다니며 탁발을 한다. 아침에 하는 탁발은 밥을 빌고, 오후에 하는 탁발은 돈이나 생활물품을 받는 모양이다. 어린 사미들은 낭랑한 목소리로 보시를 해서 복을 지으라는 말을 외치고 다닌다. 그러고는 열댓 명이 줄지어 가게마다 들이닥친다. 비구니들도 반드시 무리지어 다닌다. 하도 신기해서 지나가는 사미와 비구니 무리에게 천원짜리를 하나씩 나누어주었는데 그 표정이 늘 무심했다. 천원이면 사미들에게 제법 쓸만한 돈인데, "내가 너에게 공덕을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하는지 고맙다는 표정조차 짓지 않는다. 비구니들도 내가 공양 그릇에 돈을 넣어도 잠시 머물러 줄 뿐 곧 떠나버린다. 이렇게 당당하게 탁발하는 걸 나는 보지 못했다.

뿐만이 아니었다. 상인들 입장에서 보자면 이런 시장 내 탁발 무리는 영업 방해 행위로 보일 수도 있는데, 아무도 야단치는 사람이 없었다. 게다가 그 많은 탁발 무리가 와도 싫은 내색 안하며 일일이 보시를 했다. 그걸 어떻게 감당하나 지켜보니 액수가 아주 적다. 우리 돈으로 백원, 오백원 이 정도인 것같다. 그래도 하루 종일 보시를 하려면 몇 만원은 나갈 듯한데 상인들은 보시할 잔돈통을 따로 준비하여 탁발승이 오면 거기서 하나씩 집어 보시통에 넣어주었다.


내가 마하미얀에서 비구 무리 뒤에 붙어 탁발할 때 밥 말고 받은 게 있다. 더러 돈을 주는 분도 있는데, 가사에는 주머니가 없어서 땅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 합장한 아기들에게 다시 보시를 하기도 했다. 또 과자나 사탕을 주기도 하는데, 믹스커피 딱 한 봉지를 보시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원래 믹스커피를 먹지 않지만 그곳에서는 그것도 귀한 물건이라고 스님들께 한 개씩 나눠 보시한 것이다. 사탕이나 믹스커피, 과자 같은 것도 밥과 섞여 하는 수없이 보시 못한다고 무릎 꿇고 있는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


가치가 있고 없고를 떠나 뭐든 줄 수만 있으면 주겠다는 각오로 보였다. 정말 집안을 뒤져, 몸을 뒤져 뭐라도 있으면 바칠 듯한 마음이 느껴졌다.

나는 그럴 때마다 비구는 공부를 하여 보시의 공덕을 갚는 것이라는 삐냐저따 스님의 가르침에 따라 더 열심히 공부하자는 각오를 하고, 미리 연습한 축복 인사를 반드시 해주었다.

우리말로 건강하세요, 부자되세요, 행복하세요란 뜻의 '잠마바세, 찬타바세, 쪼셈바세'다. 큰스님이 하시는 걸 유심히 보았다가 혼자 연습했는데, 처음에는 잘 따라하다가 나중에 나만의 축복 손짓을 개발한답시고 붓다의 초전법륜인을 지어보였다. 그런데 미얀마 마타지들이 킬킬거렸다. Zaw가 말하기를, 초전법륜인은 미얀마 사람들 사이에 "애인 구합니다"란 표시라는 거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초전법륜인을 계속 지을까 하다가 아무래도 오해를 계속 부를까봐 다시 큰스님 하는대로 고쳤다.


- 왼쪽 사진은 계를 받는 자리에서 연습하는 건데, 손바닥이 보인다. 이러면 안되고 더 낮춰야 한다. 오른쪽 사진은 제법 익숙해져서 실제로 여러 사람들을 축복해준 자세다.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내 이름 TayZa처럼 진짜 신통력이 생겨 내가 축복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건강하고, 돈 많이 벌고, 행복해졌으면 얼마나 좋을까 궁리했다.


미얀마 단기 출가를 마치고 돌아오니 동국대 이사장으로 계신 자광 큰스님께서 점심 공양을 하시겠다고 우리 셋을 초청했다.

학교식당에서 먹는데, 스님과 나는 고기는 물리고 사찰음식만 먹었다.

그런 다음 차를 마시면서 보시에 관해 말씀하셨다.

"한국불교가 어려워. 왜 어렵냐. 스님들이 공부 안하네, 계 안지키네 하지만 그보다 신도들이 먼저 보시를 버렸어. 지금 보시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 조계종이 탁발을 금지하면서 보시 문화까지 없어졌단 말이지. 국립공원에 있는 사찰에 갈 때 입장료 낸 것으로 보시는 다 끝난 거야. 그러니 작은 절은 보시를 받지 못해 굶어죽을 지경이고, 탁발은 금지됐으니 앉아서 죽어야 돼. 중생은 먹음으로 근본을 삼는데, 비구도 먹어야 안죽고 공부를 하거든. 내가 서울 어디 초청받아 설법을 했는데 가만히 지켜보니 보시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 그냥 앉아 있다가 가. 복전(福田)에 씨도 안뿌리고, 가꾸지도 않으면 거기서 뭐가 열리겠는가. 복전이 텅 비어 농사짓는 사람이 없어."

그래서 우리는 미얀마인들은 보시하기 위해 산다더라고 말씀을 올렸다.

"세 사람이 기왕 미얀마 불교를 체험하고 돌아왔으니 보시 사상을 널리 알려줘. 보시는 누구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하는 거야. 보시, 봉사, 도우미, 자선, 다 같은 말이야. 세상에 태어난 것도 고맙고, 굶지 않고 사는 것도 고맙고, 여유 있어 공부할 수 있어 고맙고, 세상 천지 다 고마운 일인데 남을 돕지 않으면 안되는 거야. 보시가 살아야 우리 불교도 살고, 우리 사회도 살고, 인류도 살아."

그러면서 이사장 스님은 그 주의 일요일에 논산훈련소 법당에 설법 가는데, 신도들이 버스를 타고 내려간다면서 가고오는 길에 신도들에게 미얀마 불교에 대해 설명해달라고 부탁하셨다. 그래서 진철문 쿠타라가 그렇게 했다.


- 동국대학교 이사장 자광 스님. 스승 경산 스님의 명을 받고 군법사가 된 뒤 군종감으로 있다가 전역, 

군종교구장, 조계종 호계원장을 지냈다. 용인 반야선원에 계시는데 종종 찾아 뵙고 가르침을 받는다. 넓고 깊은 법을 갖고 계시다.

사람에 대한 격은 없지만 법에 대한 격은 추상 같으시다. 

저서에 <멍텅구리 부처님> 등이 있다.


보시는 붓다 이전에도 있었다.

그런데 그 이전의 보시란 거지에게 밥을 주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었던 듯하다. 다만 붓다는 불설로 알려진 아함경 곳곳에 보시에 관해 수없이 말씀하셨다. 일종의 보시 철학을 확실히 갖고 계셨던 듯하다. 붓다가 위없는 진리를 깨우친 것도 무수한 인연의 힘으로 이어져 마지막에 꽃을 피운 건데, 그 무수한 인연의 고리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는 보시가 있었다는 걸 힘주어 강조한다.

나는 오래 전 아함경에서 보시라는 키워드를 넣어 검색한 뒤 모든 자료를 뽑아 따로 분석한 적이 있는데 붓다의 설법 중 상당한 양이 보시에 관한 것이었다.


- 믿고서 보시하고 일부러 보시하며, 자기 손으로 보시하고 스스로 가서 보시하며, 생각하면서 보시하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보시하며, 업의 과보를 관찰하여 보시하면, 마땅히 이렇게 갚음을 받는다고 관찰하라.(아함경 수달다경)

- 마음으로 좋은 집을 얻으려 하지 않고, 좋은 수레를 얻으려 하지 않으며, 좋은 옷을 얻으려 하지 않고, 좋은 음식을 얻으려 하지 않으며, 좋은 오욕의 공덕을 얻으려 하지 않은 것이다..(아함경 수달다경)


- 그릇을 씻은 남은 밥을 깨끗한 땅에 버리는 것도 거기에 있는 중생들로 하여금 큰 이익과 즐거움을 얻게 하기 때문에 나는 그들도 또한 복문에 들어간다고 말하거늘 하물며 사람에게 보시함이겠는가? 그러나 바라문이여, 나는 다시 말하니, 계를 가지는 사람에게 하는 보시는 계를 범하는 사람에게 하는 보시와는 같지 않다."(아함경 생문경)


- "세상에는 두 복밭이 있다. 어떤 것이 둘인가? 배우는 이와 다 배운 이." (아함경 복전경)


- 시주로서 꾸준히 노력하고 계율을 지키며 많이 공부한 성현들을 받들어 섬기고 공양할 때에는, 마치 헤매는 이에게 그 길을 가리키고, 양식 떨어진 이에게 먹을 것을 주며 두려워하는 이에게 근심을 없게 하고 놀란 이에게 두려움이 없게 하며 돌아갈 곳 없는 이를 보호해 주고 장님에게는 눈이 되며 병든 이에게 의사가 되는 것 같이 해야 된다.(증일아함경 호심품)


- 병자를 돌보아 주는 이는 곧 나(붓다)를 돌보는 것이요, 병자를 간호하는 이는 곧 나를 간호하는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나는 병자를 보면 내가 직접 간호하고 싶기 때문이다.(증일아함경 일입도품)


- 만일 어떤 사람이 널리 보시를 행하면 현세에서 재물과 세력을 얻고 온갖 덕을 두루 갖추며 천상·인간의 복을 한량 없이 누릴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아끼는 마음 없이 보시를 행하라.(아함경 오계품)


- 비구들이여, 모든 보시 중에서 최상 보시는 법의 보시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법의 보시에 힘써라.(증일아함경 유무품)


- 비구들이여, 법의 보시를 배우고 재물 보시를 배우지 말라.(증일아함경 참괴품)


- 아낌 없이 주면 이것이 이른바 '보시가 복의 업이 된다'는 것이다.(증일아함경 삼보품)


- 바제 장자는 죽어서 하루 종일 울기만 하는 큰 체곡(涕哭) 지옥에 태어났다. 선의 뿌리를 끊은 사람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체곡 지옥에 나는데, 그 장자는 과거의 복은 이미 다했는데 다시 새 복을 짓지 않았다.(증일아함경 지주품)


- 새를 잡아다가 방생용으로 파는 아주머니. 아기가 있어 새 한 마리라도 방생하려 했더니 Zaw가 "방생해도 저 사람들이 도로 잡아와요. 멀리 안가요." 그런다. 아기에게라도 보시하려는데 일정이 급하다고 채근하여 천 원 한 장도 못주었다. 붓다는, 비록 자갈밭이도 씨를 안뿌리는 것보다는 뿌리는 게 좋다고 말씀하셨다.

오른쪽은 새먹이용으로 걸어놓은 벼이삭, 미얀마에서는 어딜 가든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황금탑을 세우면서도 맨꼭대기에 새가 쉬어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줄 정도다.


'지혜로운 인류'의 역사가 약 10만 년이라고 한다. 연구 결과에 따라 더 길어질 수도 있다.

인류는 수렵채집시대에도 존재했다. 그때는 도리어 빈부격차는 적었다. 욕심만 부리지 않는다면 누구나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

다만 자연재해 때문에 먹을거리 자체가 없어 굶어죽는 일이 자주 생겼다. 또 맹수나 천재지변으로 죽는 일이 많았다. 먹고살기 위해 짐승을 뒤쫓다 도리어 그들에게 잡아먹히는 일도 생기고, 벼랑에서 떨어지거나 먹을거리를 두고 이웃부족과 싸우다 죽는 일쯤은 아주 흔했다. 그래도 특별한 시기가 아니면 행복했다.


이 시기의 고통을 해소하고자 일어난 문명이 농경이다. 수렵이나 채집 방식으로는 인류의 생존이 안전하게 보장되지 않았다. 식량 자체가 부족했다.

그래서 강가에 씨앗을 뿌려 열매를 따거나 채소를 뜯어먹었다. 고기는 위험천만한 사냥으로 충당하는 게 아니라 돼지새끼를 주워다 길러 나중에 크면 잡아먹는 <축산>을 일으켰다. 그렇게 소, 토끼, 양, 말, 닭 등을 길러 고질적인 식량 문제를 해결했다. 수렵채집 시대에 비하면 농경시대에는 비교적 안전하게 생존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잉여농산물, 잉여축산물이 생기면서 이것이 권력으로 발전했다. 넘치는 것이 썩자 권력이 돼버린 것이다.

쓸데없는 부족장, 왕이 생겨 전쟁을 치르거나 아집과 망상으로 다른 사람을 통제하는 인간 내면의 나쁜 버릇이 도졌다. 이른바 천재지변을 대체할만큼 악랄한 '독재자'라는 괴물이 등장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인류는 사실상 농경시대에 이미 모든 사람이 다 먹고살고도 남을만큼의 식량을 생산해냈지만 여전히 굶어죽는 사람이 나타났다. 1950년대에 중공에서는 수천만 명이 굶어죽는 사고가 모택동 한 사람의 오판으로 발생하고, 그 이전 식민지 인도에서도 뱅갈주 사람들이 처칠 한 사람의 오판으로 수백만 명(300만 명에서 최대 700만 명까지로 추정)이 굶어죽는 사고가 생겼다. 식량이 남아도는 데도 이런 일이 생긴 건 오로지 인류가 가진 탐욕과 분노, 무지 때문이다.


그런 중에 그만 산업시대가 일어났다. 농경시대 인간 탐욕의 부조리가 개선되지 않은 채 인류는 몇몇 엘리트에 의해 그만 산업시대로 펄쩍 뛰고 만 것이다. 농경시대의 부조리를 해결하기 위해 석가모니 붓다가 나타나 자비, 보시 등을 강조하고, 예수가 사랑을 외쳤지만 거의 실천되지 않았다. 그 어떤 종교도 농경시대 인류가 안고 있는 소수권력에 의한 폐해를 해결해내지 못한 채 스스로 높고 두터운 성을 쌓았다. 그런데도 하늘은 급한 마음에 인류를 산업시대로 진입시키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일개 미친 왕이나 무지한 왕에 의한 피해보다 더 무서운, 윤리나 도덕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 얼굴 없는 <자본>이 인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자본의 넘치는 힘은 서양 여러 나라를 강하게 만드는 대신 동양 여러 나라를 미개국으로 만들어버렸다. 먹고사는 문제에서 동서양 모두 충분하고 넉넉하였지만 이 <자본>은 기어이 동양을 가난한 대륙으로 만들어버렸다.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는 탐욕으로 가득 찬 <자본>의 먹이가 되어 굶고, 인신매메에 희생되고, 인권이 유린되는, 인류 역사상 가장 악랄하고 나쁜 형태로 나타났다. 수렵채집 시대에는 아주 소수가 인권유린으로 고생했으며, 농경시대에는 약간의 다수가 희생되었지만 산업시대를 지배하는 <자본>은 절대 다수를 굶기고 학대하고 시련에 빠뜨렸다.


이런 중에도 산업사회의 <자본>으로부터 인류가 해방되기도 전에 그만 정보화사회가 닥쳐 역시 <자본>을 더 살찌우고, 그러고도 IT사회가 급히 달려오면서 인류는 바야흐로 소수의 3~4%가 90% 이상을 착취하는 악마의 시스템으로 자리를 잡아버렸다.

식량이 넘치고 의료 기술과 의약이 넘치고, 소비재가 백화점이며 마트마다 산같이 쌓여 있는 이 시대에 아직도 배고픈 사람이 존재하고, 아파도 치료받지 못해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인류의 치욕이 아닐 수 없다.


인류는 넘치는 풍요 속에서 스스로 가난하고, 스스로 고통받았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한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사실은 공기나 물처럼 넘치고 넘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인류는, 이 아름답고 풍요로운 지구에서 더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려야 한다.

인류 개개인은 누구다 다 신성(神性, 佛性)을 갖고 있다. 누구도 누구보다 높지 않으며 누구도 누구보다 낮지 않다. 모두 다 행복할 권리가 있고, 모두가 다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내 말을 믿는다면 보시하자. 끝없이 보시하자. 굶어서 생명을 유지하지 못하고, 가난하여 공부할 수 없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세상이 될 때까지 보시하자. 돈이 있으면 돈으로 하고, 돈이 없으면 손으로 하고, 손이 없으면 입으로 하고, 입이 없으면 뜻으로 하자. 보시는 인류(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에 대한 우리들의 의무다. 


- 내가 붓다의 가사를 잠시 빌려 입고 받은 보시금. 약 13만원 가량 된다. 

그 사이 보시로 얻어먹은 음식, 잠자리, 바루와 책 같은 물품도 굉장히 많다. 그런 건 내가 모시거나 지니고, 

돈은 내가 감히 쓸 수 없어 용인 보문정사 황금탑 불사 보시금으로 올렸다.


*** 이 글을 다 읽으셨으면 인연의 실을 이끌어 여기에 묶기 바랍니다.

아사라, 쿠타라, 태이자가 있습니다.

<황금탑을 세우는 용인 보문정사>

주소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운학동 11

문의 / 031-332-0670 1899-3239

안내/유승민 yuchunni@hanmail.net

 

*** 붓다는 불교신자가 아닙니다.

붓다는 스승이 없습니다.

그가 붓다이고, 그가 스승이기 때문입니다.

붓다에 대해 더 자세히 아시고 싶으면 아래 글을 눌러보세요

 

<나는 이렇게 들었다 1 보문경 상>

<나는 이렇게 들었다 2 보문경 중>

<나는 이렇게 들었다 3 보문경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