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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바이러스

파란태양 | 2007/05/29 (화) 10:25

 

 

디지털 바이러스

 

 

우리 태양계가 속한 은하계만 해도 너무나 넓어 인간의 머리로는 그 개념조차 감당하기 어려운데, 그런데도 이 우주에는 우리 은하계 같은 것이 3억 개나 존재한다고 한다. 아이고, 끔찍하다. 은하계 3억 개, 차라리 자살하고 싶은 충동이 일만큼 어마어마한 개념이다.

 

 

그러나 그런 세상은 어디까지나 신들의 놀이터고, 우리네 인간으로서는 밀레니엄이니 2000년이니 하면서 아옹다옹하는 게 역시 격에 어울린다.

 

 

오늘 이야기하려는 것은 좀 별나다. 벼라별 바이러스가 다 많지만 아마도 디지털 바이러스란 말은 들어보지 못했을 테니까. 1990년대부터 가속도가 붙기 시작한 새로운 문명을 간단히 디지털 문명이라고 말해도 과히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해 말로 인터넷 국내 이용자가 이미 천만을 넘어섰다고 하던데, 변화가 너무 빨라 컴퓨터를 8비트 시절부터 14년째 쓰고 있는 나도 두려울 정도다.

 

 

그래서 이러한 새로운 디지털 문명, 디지털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마치 21세기의 낙오자가 될 것같은 분위기다. 디지털이 흑사병이나 무슨 전염병처럼 인류 전체를 휩쓸어버릴 것만 같다. 디지털을 모르면 다 죽을 것만 같다. 그래서 디지털 바이러스란 말을 한번 써본 것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디지털 세계란 그런 게 아니다. 그리 겁먹을 것도 없다. 컴퓨터 못해도 상관없다. 일이년 내에 텔레비전 드라마 보는 것보다 더 쉬운 컴퓨터가 나올 것이고, 인터넷을 영화 보듯이 즐길 날도 멀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간 신기술에 동떨어져 살아야 했던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능히 다룰 수 있을 만큼 쉬운 컴퓨터가 반드시 나오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디지털 바이러스란 다른 쪽으로 돌려 생각해야 할 질병이다. 디지털이란 원래 0과 1의 연속 기호일 뿐이다. 이것을 동양에서는 일찍이 음양(陰陽)이라고 표현해 왔다. 기호는 0과 1이 아니라 −과 ꁌ로 표현하였다. 그러니까 8괘의 하나인 ☲은 디지털의 101과 같다. 복잡해 보이긴 하는데, 중요한 얘기는 0과 1이 어떤게 더 낫고 못한 게 없다는 점이 중요하다. 음양의 어느 것도 더 잘난 것도 없고, 못난 것도 없단 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음양이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양은 지나치게 많고, 음은 왜소했다. 양은 하늘까지 치솟았지만 음은 쭈그러들고 밟혀서 싹이 나기도 힘들었다. 양(陽)만으로 이루어진 그런 사회에서는 투쟁, 시기, 질투, 비방 등이 난무할 뿐이다. 자석도 같은 극끼리는 밀어대지 않던가.

 

 

그러던 것이 디지털 문명과 더불어 음양이 동덕(同德)으로 나가는 시대가 되었다. 음과 양이 절대적으로 평등하지 않으면, 조화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생산할 수 없다. 음양이 절대적 평등을 이룬 컴퓨터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무한정으로 가능하다. 이것은 마치 외발로 가는 것보다 양발로 가는 것이 더 멀리 갈 수 있는 것과 같고, 혼자 하는 것보다 함께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것과 같다. 양발, 양팔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돕고 위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것이 디지털 세상이다. 그래서 이런 것을 상생(相生)이라고 한다.

 

 

디지털 바이러스란, 남을 사기쳐야만 먹고 살고, 남을 눌러야만 출세하던 아날로그 인간을 괴멸시키는 개념이다. 디지털 세계에서는 남과 공존하지 않으면 살 수 없고, 남을 살려야만 내가 사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협력, 조화, 봉사, 질서, 순리, 민심, 대동(大同) 이런 말들이 디지털 시대에 적합한 용어이다.

 

 

나의 즐거움이 남의 즐거움이 될 수 있어야 한다. 나만 즐겁고 그때문에 남이 고통스러운 것은 아날로그 시대의 풍속이다. 남이 아프면 나도 아프고, 내가 아프면 남도 아픈 세상이 디지털 세상이다.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즐거움이 곧 내 즐거움이 되는 것이 디지털 세상이다. 모두가 다 승리하고 성공하는 윈윈(Win-Win) 세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기쁨을 남과 나눌 줄 알아야 하고, 남의 슬픔을 덜어줄 줄 알아야 한다.

 

 

그중에서도 등산이야말로 디지털 정신을 기르는 데 아주 적합한 스포츠다. 1등도 없고 꼴찌도 없고 다함께 올라갔다가 다함께 내려오는 대동(大同)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낙오자도 없고 승리자도 없다. 오른발과 왼발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고, 오른손과 왼손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고, 그와 내가 협력해야 하고, 올라가면 내려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는 중에도 들풀 하나에도 눈길을 주고, 들짐승 한 마리에도 애정을 주고, 흰구름 한 조각을 보고도 웃을 줄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진정으로 등산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면 굳이 디지털 바이러스를 겁낼 이유가 없다.

 

- 1998년경 어느 신문에 기고했던 글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