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力만큼 財力도 힘이 있다
인도의 작은 나라 왕자인 싯다르타가 출가를 결심한 것은 생노병사에서 벗어나려는 욕구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대 과학은 노화나 질병, 죽음에 대해 옛날 사람들이 겪은 고통을 상당 부분 줄여 주었다. 평균 수명도 엄청나게 늘어났다. 나라별로 조금씩 다르지만 평균 수명 80세를 바라보고 있고, 100세 이상 장수자가 늘고 있는 요즈음 고통의 본질은 생노병사가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고통스럽지 않게 사는 문제'로 옮아 가고 있고, 그러다 보니 살아 있는 동안 인간을 가장 고통스럽게 지배하는 것은 늙음도 질병도 아닌 바로 돈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지고 있다.
물론 부처님 시절에도 돈 문제는 만만한 고민거리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함경에 이런 금언이 나온다.
- 사바세계에서는 법력(法力)만큼 재력(財力)도 힘이 있다.
부처님은 참 요긴한 말씀을 제때 해주신다.
부처님은 또 어떤 청년의 질문에 이렇게 답하기도 하셨다.
“어떻게 하면 편안하고 즐겁게 살 수 있을까요?”
“첫째 직업을 확실히 가져야 하지. 둘째, 살림을 잘 지켜야겠지. 세째, 착하고 좋은 친구를 사귀어야겠지. 네째는 수입과 지출을 알맞게 하면서 바른 생활을 해야지.” - <잡아함경> 제91 울사가경
그런가 하면 돈에 관해 이런 말씀도 직접 하셨다.
“재물을 쓰되 사치하지 말라. 남더라도 마땅히 줄 사람을 가려 주어라. 남을 속이고 함부로 사는 사람이거든 아무리 손발을 빌어대도 단 한 푼도 주지 말라. 재물을 쌓되 적은 데서 시작하라. 마치 수많은 꽃을 찾아다니면서 꿀을 모으는 벌처럼. 그러면 재물은 점점 불어나 마침내 줄거나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집에서는 여섯 가지 업을 잘 닦아 그 때를 놓치지 말라. 첫째는 먹을 때 족한 줄 알고, 둘째는 일을 하면서 게으름을 부리지 말고, 셋째는 먼저 모으고 쌓아 구차할 때를 준비하라. 넷째는 밭 갈고 장사하며 목장을 만들어 짐승 먹이고, 쉬지 말고 일해라. 다섯째는 마땅히 탑묘를 세워 널리 진리를 전하라. 여섯째는 절을 지어 스님들이 공부할 수 있게 하라.” - 장아함경 제18경 선생경
그러고도 부처님은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부유하더라도 가난하고,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가난하더라도 부유하다고도 말씀하셨다. 당시 인도인들의 관심사 중에서도 돈 문제가 매우 심각했음을 기록으로 알 수 있다.
하지만 불교 역사 수천년 동안 실상 돈 문제는 그다지 심각하게 거론된 적이 없었다. 더욱이 스님들간에 이런 문제가 토론 대상이 되거나 연구 대상이 된 적이 없다.
하지만 이제는 공론화해야 한다. 돈 때문에 스님들간에 칼부림이 일어나고 사찰이나 스님 개인 재산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는 세상이 되었다. 불교 신자의 재산만이 문제가 아닌 것이다.
심지어 돈 없으면 수행도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 스님들이 입는 가사 한 벌에 수백만원하는 세상이고, 일습을 갖추려면 거액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억지로 기왓장 팔고 부처님의 허락도 없이 ‘귀신 장사’를 해서 어찌어찌 뭉개지만, 이제는 안된다. 승단이 먼저 이 문제를 고민하여 그 해결책을 제시해주어야 한다.
그러니 이제는 돈을 화두로 삼아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고, 이런 이유로 난 생로병사 대신 돈에서 자유를 얻기 위해 출가한 재벌 2세 이야기를 소설로 쓰기에 이르렀다. 생로병사에서 해탈하는 게 아니라 돈에서 해탈하는 주인공을 등장시켜 현대인이 얼마나 돈 때문에 심각한 고통에 빠져 있는가를 그려보았다.
내가 소설 ‘부자(富子)’를 쓸 때 도피안사에 계시는 김재영 법사는 이런 말씀을 해주었다.
범부(凡夫)가 생각하면 번뇌망상이지만 깨달은 자가 생각하면 경(經)이다. 돈 벌이도 이와 같아서 재주가 없는 사람은 돈 잃을 사업만 궁리하고, 사기당할 길만 찾아다닌다. 그래서 부처님은 깨닫기 전에는 자기 자신의 뜻마저 믿지 말라고 하셨다.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돈 문제를 비켜갈 수는 없지만 결국 돈도 깨달음의 대상이라는 걸 안다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돈을 회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바라보고 대결해야만 한다. 공부가 안된 상태에서 돈에만 집착한다면, 자칫 돈을 소유하는 게 아니라 화(禍)를, 번뇌를 소유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돈을 벌고 싶은 사람도, 이미 많이 벌어 쌓아두고 있는 사람도 이런 게송을 읽으면서 한번쯤 차분히 생각해 보자.
-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모든 돈은
꿈이요, 환상이요, 거품이요, 그림자다.
이슬처럼 날아가고 번개처럼 사라진다.
마땅히 이렇게 생각에 생각을 하고 또 하라.
- 어디에 발표했던 글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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