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사고전서(四庫全書)
친구가 중국에 갔다가 시디롬을 잔뜩 가지고 돌아왔다. 그가 열어보인 가방에는, 아득한 신화나 전설 같아서 한없이 그립기만 하던 책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책수로 보자면 약 9만권, 트럭을 몇 대나 동원해야 나를 수 있는 양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 엄청난 분량이다.
중원(中原)에 섰던 수많은 제국 중 가장 넓은 강역을 확보했던 청국(淸國 1636-1912), 그 청국에서도 강희(康熙)・옹정(雍正)・건륭(乾隆) 세 황제가 이끈 약 150여년간이 가장 화려했으니, 이들이 바로 시디롬의 원제작자들이다. 강희와 옹정이 만든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 천하의 책이란 책은 다 끌어모으겠다는 건륭의 집념으로 탄생한 불멸의 총서 《사고전서(四庫全書》.
정조(正祖)가 사고전서를 구하기 위해 수차에 걸쳐 사신을 보냈듯이, 당시 지식인들이 선망하던 책을 시디롬으로 만나고 보니 너무나 기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목록을 읽어보니 보지도 듣지도 못한 책이 수두룩했다. 시디롬으로 환골탈태하기 전에는 제한된 소수에게만 열람되었거나, 혹은 어두침침한 사고(史庫) 속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꽂혀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사료(史料)가 디지털화되기 전에는 원서를 직역하는 것만으로 학문적 위세를 부리거나 소설창작을 대신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 방대한 지식의 바다를 항해할 수 있게 되었다. 바야흐로 파도 높은 21세기형 디지털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 2001년 2월 조선일보 일사일언. 지면이 워낙 작아서 글이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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