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옥도 옳고 서지문도 옳다
얼마 전 아는 집에 갔다가 ‘노자를 웃긴 남자’라는 정말 웃기는 책을 보았다. 김용옥을 비판하는 사람이 많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처럼 천박(淺薄) 비루(鄙陋)한 글로 떡칠한 책은 처음 보았다. 그런 뒤 김용옥에 관한 이런저런 글을 몇 편 더 보았는데, 서지문 식의 학술적 비판 몇 편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학문적 콤플렉스를 이기지 못한 이른바 강단 학자들의 하소연이 대부분이었다.
김용옥을 두고 난무하는 비판과 비난을 보면 조선시대 후기의 소설가 박지원을 두고 온나라가 들썩이던 문체반정(文體反正) 사건이 머리에 떠오른다. 박지원이 구어체에 가까운 문장을 구사했다는 사실만으로 정조(正祖)를 비롯한 조정 대신, 유림들이 들고 일어났다. 그러고는 박지원에게 순정고문(醇正古文)을 따르라고 윽박질렀다. 주자나 당송8대가나 시경 같은 중국 고전을 장황하게 인용하고 그같은 식으로 글을 쓰든 시를 짓든 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박지원에 대한 이러한 비판은 그의 소설에 나타난 양반 계급에 대한 혹독한 비판과 그가 주장하는 실학(實學)에 대한 지배 계층의 보복에 불과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박지원은 임금 정조에게 반성문을 써 바치는 것으로 위기를 모면했는데, 이로써 우리나라의 소설문학은 점잖고 무게 잡는 쪽으로만 나가야 했고, 그 전통은 오늘날에도 이어진다.
제2의 박지원이 김용옥이다. 나 역시 김용옥의 강설 중 더러는 동의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그것이 김용옥의 가치를 뭉갤만큼 중대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의 저서나 강의에 꽤 관심을 갖는 편이다. 원색을 즐기는 화가처럼 얼굴이 화끈거릴 만큼 노골적인 어휘를 쓰고, 느려터진 중국 역사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장복을 휘날리며 침을 튀기는 걸 보면서 같은 사람이 둘이라면 용납하기 어려울지 몰라도, 하나라면 좋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김용옥의 저서 중 몇 권을 읽어보았는데, 대체로 옆길로 새는 게 많아 여러 쪽에 몇 줄씩 골라읽은 기억이 나지만, 그래도 그 몇 줄이 감동적일 때가 많았다. 김용옥은 대부분의 강단 학자들처럼 범상한 길을 걸어온 게 아니라 나름대로 다양한 연구 경력을 가지고 있는 기특(奇特)한 인물이다.
김용욕은 인문학의 위기라는 21세기에 하필 케케묵은 노자, 공자라는 깃발을 들고 허허벌판을 앞장서 달리고 있다. 그의 앞길은 전인미답(전인미답)의 신대륙이 한없이 펼쳐져 있다.(자구(字句)에 매달리는 고지식한 학자의 눈에는 그 신대륙이 보일 리 없겠지만.) 그의 뒤에는 그림자나마 밟아보려는 사람들이 꾸역꾸역 몰려들고, 텔레비전과 영화, 만화, 소설에 푹 빠져 있던 사람들을 불러내 박수치게 만든다.
그는 비판자들의 경쟁자가 아니다. 더더구나 아무나 나서서 함부로 폄하할 만큼 만만한 학자도 아니다. 김용옥을 끌어안을 수 있어야 우리 사회는 그만큼 성숙되는 것이다.
- 2001년 3월경 조선일보 일사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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