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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파란태양*

마음을 치료하는 기술자

마음을 치료하는 기술자

슈슈키노 암각화를 보러 시베리아에 갔었다. 함께 답사한 이르크츠쿠국립대학의 고고학자 메드베조프 교수는 시베리아 샤먼에 관해 열렬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가는 곳마다 샤먼의 유적이 널려 있다 보니 그런 모양이다.
 
사냥을 하고, 어로를 하고, 간단한 농경 생활이나 했을 수천년 전 고아시아인들의 인생사가 뭐 그리 복잡해 샤먼들이 이토록 많았을까. 그러나 암각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곳에 살던 고아시아인(실은 우리 조상들이다)들도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사냥하고, 전투하고, 늙고 병들고 죽었다. 그러다 보면 인간의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늘상 일어났을 테고, 그럴 때마다 고아시아인들은 샤먼의 도움으로 마음을 치료했던 것같다.
 
그래서인지 이 고고학자는 샤먼을 가리켜 마음을 치료하는 기술자라고 표현했다. 샤먼은 결혼한 지 며칠만에 전사한 남편을 그리워하는 아내를 위로하고, 아이 낳다 죽어간 아내를 못잊어 자리에 누워 버린 남편을 만져주고, 병든 부모를 치료하지 못해 죄책감에 시달리는 자식들을 풀어주는 것이다.
 
시베리아 뿐만 아니라 만슈리아, 그리고 한반도에는 유달리 샤먼이 많다. 고등 종교 인구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사람의 아픈 마음을 직설적으로, 원초적으로 쓰다듬는 건 그래도 샤먼들의 일인 듯하다.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글만 써온 지 10년이 되었다. 그동안 책으로 묶은 글을 돌아보자니 독자들의 아픈 현실을 읽지 못하고 쓰잘 데없는 공론(空論)을 깃발처럼 내두르지 않았는지, 글장난을 즐기지나 않았는지 돌아보기 부끄럽다.

 - 2001년 4월 조선일보 일사일언 기고

- 용인시할미산성대동제 굿거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