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의 힘
충청도가 멍청도에 핫바지라구?
이 말을 즐기는 사람들은 대부분 충청도 사람들 기질이 자신들을 닮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런 막말을 한다. 예를 들어 충청도의 동창회나 향우회 모임은 그리 극성스럽지 않다. 나 자신 동창회에 자주 나가 본 적도 없고, 향우회 같은 데는 발을 들여놓아 본 적이 한 차례도 없다. 그래도 나는 하나도 불편하지 않고, 그런다고 해서 불이익을 당해본 적도 없다. 내 고향 사람들이라고 해서 내 책이 재미 없는데도 억지로 사주고, 동문회 안나온다고 날 욕하고 매장하려 한 적도 없다. 기껏해야 허 그놈, 이러면 그만이다.
그러나 충청도를 멍청도라고 즐겨 비난하는 사람들을 보면 동창회는 기본이고 심지어 반창회까지 한단다. 반창회가 뭔가. 학년도 아니고 한 반의 모임을 졸업한 지 수십 년이 되도록 즐기고 있다는 말이다. 세상에 이런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고, 우리나라에서도 특정지역 두 곳 밖에 없을 것이다.
향우회는 그들의 삶이나 다름없다. 향우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가 다 형님 동생이고, 이러한 관계는 공적이든 사적이든 수시로 이루어진다.
이래 놓고서 그들은 사회든 가정이든 끈끈하게 연대하여 뭉치고 또 뭉친다. 그러다가 집단에서 이탈하는 사람은 철저히 배격해 버린다.
몇년 전에 집필 관련하여 자료 조사를 하던 중 어떤 학자의 책을 본 적이 있는데, 그걸 보고 난 경악했었다. 삼별초를 조사하러 강화도를 답사하던 이 교수는 느닷없이 맥주가 먹고 싶어져 가게에 갔더니 자신이 찾는 제품이 없더란 말을 썼다. 여기까지만 해도 학술서에 담을 만한 소재가 아니다. 그렇건만 이 교수는 무려 수십 매에 걸쳐 자신이 찾는 그 맥주를 마시기 위해 수십 리 길을 헤맨 끝에 가까스로 사 마셨다는 놀라운 경험담을 부끄러움 한 가닥 없이 학술서에 버젓이 적어놓았다. 삼별초가 맥주나 찾아 강화도로 진도로 제주도로 돌아다니던 사람들인가?
난 라거와 하이트의 맛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라거가 있으면 라거를 마시고, 하이트가 있으면 하이트를 마신다. 그런데 무슨 일로 한 종만을 수십 리 길을 걸어가서라도 찾아마셔야 하는지, 알콜 중독자가 술을 찾아 그렇게 헤매다녔다면 말이 되지만 있는 맥주를 두고 굳이 브랜드 때문에 그 고생을 사서 했다는 걸 보고는 부르르 전율이 일었다.
우선 이 사람은 교수요 학자라는 신분을 망각했고, 자신이 삼별초에 관한 자료 조사서를 쓴다는 사실조차 망각했다. 그는 자신이 특정 지역 출신의 소속원이라는 생각뿐 자아라고는, 주체라고는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이러한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아무리 큰 명예를 가지고 있어도 정치 문제만 나오면 양심과 법률에 관계없이 일사분란한 견해를 갖는다.
그러고는 충청도에서 김종필이 몰락하고, 충청도 출신인 이인제며 이회창이 고향에서 박대받는 것을 대서특필하고 재미있어 하고 조롱한다. 우린 90퍼센트 이상 뭉치는데, 저것들은 줏대도 없다고들 한다. 무조건 밀어야지 비판하고 욕하다니 말도 안된다고 한다.
언젠가, 내가 사는 이곳 수도권 한 도시에서 특정 지역 후보가 단체장으로 당선된 적이 있었다. 그러자마자 그곳 향우회가 어찌나 설쳐대는지 눈꼴이 시어 차마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단체장조차 이 향우회를 어쩌지 못하고 공생 관계를 설정하고 말더란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향우회 사람들이 형님동생하고 지내는 사람들이 중앙에 널려 있고, 아무리 안면이 없어도 나 임마 어디 학교 몇 회야, 혹은 나 어디 출신이야, 이렇게 치고나가면 저절로 대화가 이루어지는 모양이다. 최소한 이들이 누군가를 크게 돕지는 못해도 바짓가랭이를 잡아당기는 말썽쯤은 언제든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사람들이 보기에 고향 사람들과 똘똘 뭉쳐 집단 이익을 나누지도 않고, 출신학교 동문들끼리 모여 실력 없는 놈을 밀어주지도 않고, 충청도 기업이라고 하여 그곳 물건만 골라 사지도 않으니 우리네가 이해될 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핫바지라고 하고, 멍청도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충청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핫바지가 되고 멍청도가 되자. 우린 그냥 미련하게 실력대로만 살자. 실력이 없으면 내 동생이라도 쓸 필요가 없고, 실력이 있다면 화교라도 쓰고, 방글라데시인이라도 쓰자. 아버지가 만들어 파는 과자라도 맛이 없으면 먹지 말고, 남이 만드는 맛있는 과자를 사먹자. 다만 이렇게는 하자. 아버지, 과자 좀 더 맛있게 만드세요. 아우야, 네 실력이 모자라니 공부를 더 해라. 돈이 필요하면 돈을 빌려주고, 격려가 필요하면 어깨를 두드려 줄지언정 맛없는 걸 억지로 맛있다고 하지 말고, 실력 없는 놈을 다른 사람 밀어제치고 올려세우지 말자.
하지만 우리들은 계속해서 도전을 받을 것이다.
우릴 멍청도니 핫바지니 하고 부르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실력보다는 연고를 더 중시할 것이다. 비행기를 타도 출신지역 비행기를 타고, 고속버스를 타도 출신지역 고속버스를 타고, 수위 하나를 써도 동향 사람을 찾을 것이다. 사장이 되면 출신이 같은 동문을 우선해서 채용하고, 언론사 사장이 되면 출신지와 출신 학교를 보아 밀어줄 것이다.
하지만 이걸 알자. 국산품 애용이니 해서 무조건 외제를 배격하고 질 낮고 값비싼 국산을 쓰던 시절 우리나라 제품 중에서 세계 일등 가는 게 별로 없었다. 그러나 국제무역기구니 오이시디 등에 가입하면서 시장이 개방되고, 여기저기 외제차도 보이고 외제 가전제품이 보이자 도리어 우리나라 물건이 외국 시장에서 더 큰 경쟁력을 갖게 되었다.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진정한 승리자지 질 나쁘고 실력 없는 걸 끙끙거리며 안고 있어봤자 함께 죽는 수밖에 없다.
지난 97년에 외환위기에 빠져 IMF의 지시를 받았던 게 다 뭔가. 고향 사람에게는 무조건 돈 빌려주고, 기술이 없어도 용역을 내주고, 끼리끼리 나눠먹던 전력 때문이었다. 돈 못버는 회사는 망하면 되고, 잘못하는 사람은 사법처리하면 간단하다. 그 시절 망한 기업들 중에서는 그 출신 지역 사람들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것들도 적지 않았다. 그들이 망한 건 출신 지역 사람들의 애정이 줄어서가 아니라 제품이 나쁨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써주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죽도록 한 사람만 밀어 외환위기를 불러 세계화는 커녕 세계적 망신을 사고, 죽도록 한 사람만 밀어 나라를 사분오열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지는 않았는지.
그러니 우리 충청도 사람들은 연고에 기대지 말고 자신의 힘으로 꿋꿋이 일어서야 한다. 실력이 없으면 깨끗이 포기하고, 도움의 손길을 청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도 저 혼자만의 힘으로 성공한다면 그런 사람은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도 통하는 사람이 된다. 실제로 내가 아는 바로도 우리 충청도 출신으로서 성공한 사람들은 오로지 제 실력만으로 일어섰기 때문에 기초가 매우 튼튼하다는 사례를 여러 번이나 보았다.
실력만으로 스스로 일어나 성공하도록 격려하는 것, 이것이 충청도의 힘이다.
- 2002년 이전에 쓴 글같다. 발표지면은 생각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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