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키가 176센티미터인데 몸무게는 63킬로그램 내지 65킬로그램 정도다. 표준체중이라고는 하나 내가 보기에는 마른 편이다.
나이 마흔이 될 때가지는 군대 시절 2년간만 빼고는 늘 58킬로그램 정도였다. 군대 시절에는 먹는 것 말고 딱히 즐길 일이 없다보니 그때 약 65킬로그램 정도를 유지했었다. 그러니까 아무리 잘 먹어봐야 65킬로그램을 넘길 수가 없었다.
이유가 뭘까 많이 고민해 보았다. 한의원에 찾아가 물어보기도 하고, 병원에서 알아보기도 했는데 이 무식한 놈들(당사자만)은 도무지 원인을 알아내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탐구심이 많아서 기어이 이 문제를 물고늘어져 최근에야 그 이유를 알았다.
뭔가를 알아낼 때는 꼭 사고가 나야 된다. 작년 가을 추석 무렵 나는 췌장염으로 열흘간 입원했다. 그리고 올해 초 또 췌장염으로 일주일 입원했다. 내 생애 입원이라는 건 이 때 처음으로 경험해본 것이다. 집사람은 췌장염 자주 걸리는 걸 보니 췌장암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며 호들갑을 떠는데, 나는 침착하게 그 원인이 뭔가 알아보았다. 의사놈(놈이라기엔 그 분 나이가 좀 많지만)은 약이나 처방할 줄 알지 내가 왜 췌장염에 걸렸느냐고 물어도 도무지 입을 열지 않았다. 아니, 환자를 취조해서라도 이유를 알아내야 치료를 하든지 말든지 할 텐데 이놈은 낫기만 하면 되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으냐는 식으로 주름진 입술을 꽉 물었다.
병원 다니다보면 정말 의사들을 혼내주고 싶은 적이 많다. 손봐야 한다면 세 명 정도는 잡아다가 의사 면허를 뺏고, 이놈들도 얄궂은 병에 걸려 싸가지없는 의사한테 걸려 고생 좀 해봤으면 싶다. 딸 때문에 이곳저곳 병원을 다니다보니 이자들은 지가 무슨 일을 하는 놈인 줄 잘 모르는 것같더라만.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의사들(일부라고 해야겠지. 대한민국 의사를 다 본 건 아니니)은 탐구심이 부족한지 호기심이 모자란지 환자를 단 3분 정도(이것도 엄청 긴 편이지) 보고는 휙 처방전을 써갈긴다. 지 눈이 MRI도 아니고 CT도 아니고 제 귀가 청진기도 아니고 무슨 초음파 진단기도 아닐 텐데, 어쩌면 귀신처럼 그렇게 빨리 진단을 내리는지 모르겠다. 환자는 할 말이 아직 남아 있는데 이들은 무슨 초임판사들처럼 꽝 판결을 내려버린다.
내가 아는 노(前)교수님이 한 분 계신데, 경희무슨병원을 3년이나 다녔는데도 치료를 하지 못해 끙끙 앓으시길래 내 친구가 잘 아는 의사에게 모셨더니 단 3일만에 나아버렸다. 이 의사가 신의라서 낫게 한 게 아니라 친구가 모셔온 저명한 학자시라니까 정성껏 진단을 하고, 진단이 정확하니 그냥 나은 것이다. 그동안 안나은 이유는 먼저 병원놈들이 그냥 노인 환자 왔나보다 하고, 그 나이면 다들 그런 증세가 있으려니 하고 건성으로 진단해서 그렇다.
다시 내 얘기로 돌아가자.
내 주치의가 입 꽉 다물고 있는 마당에야 내가 스스로 탐구할 수밖에 없다. 의학적으로 볼 때 췌장염은 술 많이 먹는 사람들이 걸리는 걸로 나와 있다. 그런데 난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다. 마셔도 절대 과음하는 법이 없고, 그래봐야 그런 일은 일년에 한두 번 있을까말까 한 정도다. 그러니 그건 내게는 해당사항이 아니다. 의사도 술 자주 마시냐고 한번 묻고는 아니라니까 더 묻지 않는다. 의사가 안묻는데 내가 굳이 이런저런 증언을 할 이유가 없다. 들어주지도 않고, 환자가 주책없이 일어나지 않고 버티면 약아빠진 간호사가 얼른 다른 사람 차트를 갖다 책상에 척 내려놓는다. 나가라는 눈치다.
이 날 이 의사가 해준 말은 내가 "이상하게 입원할 때마다 오리고리를 연거푸 먹고, 돼지고기까지 먹은 날이거든요. 혹시 그래서 췌장염에 걸린 걸까요?" 하고 묻자 "고기는 좀 조심해서 먹어야 해요." 이렇게 싱겁게 대답해주었다. 그러고는 벌써 다음 환자 내역이 모니터에 떠오르고 의사는 그걸 뒤적거린다. 평생 3분 간격으로 환자를 만나 골치아픈 질병 얘기나 하며 살아라, 그러고는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후 나는 인터넷을 뒤져가며 내 증세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한번 더 걸리면 내 췌장이 놀라 정말 암이라도 걸리면 어쩌나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오른 의학정보는 놀라울 정도로 친절하다. 손님을 유치하기 위한 홍보 차원의 글이다 보니 정말 자세하고, 설명이 쉽다. 또 영어로 검색해 들어가면 훨씬 더 풍부한 자료가 있다. 전문용어가 너무 많아 무슨 소린지 헷갈리지만 그래도 필요한 말은 눈에 걸린다. 이렇게 노력한 끝에 나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1. 내가 살이 찌지 않는 원인은 내 몸에서 단백질과 지방질, 특히 지방을 소화하는 효소가 남보다 적게 분비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화 효율이 떨어진다. 살찌려면 소화제를 함께 먹거나 소화가 잘 되게 조리해서 먹으면 된다.
2. 췌장염을 일으킨 1차 범인은 오메가3지방산이다. 난 오리고기가 1차 범인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오메가3지방산이었다. 가끔 무슨 단어를 떠올려야 하는데 머릿속에서 맴돌기만 할뿐 빠져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뇌내 혈류를 원활하게 해주는 오메가3지방산을 먹기 시작했다. 그러면 단어가 막히는 일이 드물어진다. 기억력이 향상되는 것이다. 이 재미에 빠져 오래도록 먹다보니 이 지방산을 소화하기 위해 췌장이 좀 고생을 한 모양이다. 그래서 지쳐 있던 췌장에게 어느날 느닷없이 오리고기, 돼지고기를 두 끼 내지 세 끼 연달아 공급하자 이놈이 부하가 걸려버린 것이다.
3. 그래서 오메가3지방산을 끊어버렸다. 그대신 아마씨나 아마유 등의 식물성으로 대체한다. 그러고도 그후 고기를 먹는 날에는 훼스탈인가 지방을 잘 소화하는 소화제를 복용한다.
여기서 내가 얻은 결론은 사람에 따라 특정 영양소를 잘 소화하지 못하는 체질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머리탓하지 말고 오메가3지방산을 복용하라고 자주 권하는데, 멀쩡히 잘 먹고 지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위염 내지 십이지장염 혹은 약한 궤양이 생겨 더 먹지 못하는 사람이 생긴다. 나처럼 췌장까지 가는 경우는 아주 드물고. 그래서 이제는 고기 잘 소화되느냐고 물어 잘 된다 싶으면 물고기에서 추출한 오메가3지방산을 먹으라고 권하고, 아니면 식물성을 먹으라고 권한다.
여기까지 정리한 내용은 대부분 의사들의 논문이나 저술 등에서 알아낸 정보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의학 정보를 통해 배우기 바란다.
나의 권유 / 의사가 알아서 다 해주리라고 믿지 말고 인터넷으로 충분히 공부한 다음에 병원에 가는 것이 좋다. 어느 정도 자신의 질병에 대해 알아야 믿을만한 의사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있다. 멀쩡한 심장병 치료 실컷 받고 보니 뇌종양이더라(내 친구 아버지는 겨우 제대로 된 진찰을 받은 뒤 15일만에 돌아가셨다. 심장병 치료하느라 치료 시기를 놓쳤다), 고지혈증 치료 실컷 받고나니 신경교종세포더라,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러니 병원가기 전에 해당 질병에 대해 미리 학습하는 게 유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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