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1987년부터 컴퓨터를 써왔으니 대략 20년간 써온 셈이다. 그간 자판 두드린 횟수가 대단하리라.
그런즉 1998년부터 오른쪽 검지손가락이 슬슬 저려오기 시작했다. 일주일 정도 쉬면 가라앉곤 했는데, 쉴 여유가 없을 때는 굉장히 고생했다. 기치료로 암을 낫게 하네, 앉은뱅이를 일으키네 하고 떠드는 도사가 있어 그까짓 것 아무것 아니라며 나서길래 손가락을 만지게 해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그런데도 어떻게 그이가 그랜저타고 다니며 호의호식하는지 정말 모르겠다만)
병원에 물으니 스포츠텍스라는 테이프 요법을 해보라고 하여 해보니, 일단 손가락이 받는 하중이 줄어서 그런지 훨씬 나아졌다. 하지만 원고를 집중해서 써야 할 때에는 스포츠텍스를 붙이고 일을 해도 손가락이 자꾸 저려 신경이 쓰였다. 하는 수없이 일부러 휴식을 하고나서 일을 하곤 했다. 너무 힘들 때는 마우스를 왼손용으로 바꿔 왼손으로 쓰기도 했다.(2003년에 출간한 소설 부자 표2에 딸이 "아빠 서재에 가면 오죽하면 마우스가 왼쪽에 있어요'라고 쓴 글이 있다. 손이 아파 왼손 마우스로 쓰는 걸 보고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이러구러 2007년, 저린 손가락을 참아가며 써온 지 수년만에 드디어 임자를 만났다. 우리 딸에게 침을 놓아주는 분이 대구에 사는데, 어느날 내가 손가락이 저리다고 호소하니 아무말 없이 침을 놓아주었다. 그래도 믿을 수없어 그냥 스포츠텍스를 붙이고 살았다. 한 달 뒤 한번 더 침을 맞았는데, 이상하게 통증이 많이 가신 듯하여 스포츠텍스를 붙이지 않고 일을 해보니 그다지 큰 무리가 느껴지지 않았다. 전에 일주일 정도 쉬었다가 다시 자판을 만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손가락을 지나가는 정맥에 혈압이 느껴졌다. 혈압이 느껴질 정도면 다른 부위보다 압력이 높다는 것이니 다 나은 건 아니다.
그러던 중 역시 딸의 척추치료를 해주는(우리 딸이 여러 가지 치료를 받고 있어서 주워듣는 얘기도 많고 사연도 많다) 분에게 이를 호소하니 양팔에 대고 부위별 혈압을 쟀다.
이런 경험이 있다. 병원에 입원하면 팔이 꺾이는 자리에 혈압계를 갖다 대고 공기주머니로 바람을 훅훅 불어넣은 뒤 잰다. 입원 중에는 괜히 아침 저녁으로 혈압을 재는데, 간호사가 기록한 걸 보니 들쭉날쭉했다. 이유를 물으니, 뭐 다 그렇단다.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면 되는데, 들쭉날쭉하는데도 다 그러면 혈압은 왜 재는지 모르겠다. 간호사가 모르는 게 당연하지 모르는 게 무슨 죄라도 되는 줄 아는지 다 대답하려고 든다. 그래서 더 유심히 혈압 기록을 보니 재는 시간이 같은 데도 잴 때마다, 재는 간호사마다 달라지는 게 아닌가. 혈압은 믿을 게 못되는 듯했다. 자가 증상이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데도 혈압은 20쯤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하는 게 아닌가. 하여튼 이때 나는 혈압 측정에 뭔가 문제가 많다고 생각했다.(제발 누가 연구 좀 해주기를)
이런 경험 때문에 의아했는데, 이 경락원에서는 팔의 혈점을 찾아다니며 여러 군데 혈압을 동시에 쟀다. 그러고는 좌우 팔을 다 재서 같은 혈점의 혈압을 비교했다. 그러더니 어느 부위에서(그걸 간, 콩팥, 심장 등등이라고 하더라만 이런 말은 믿을 게 못되는 것같고) 균형이 안맞아 그런 것이니 척추를 바로잡아주면 양팔로 흐르는 피의 압력이 같아지고, 그러면 손가락 저린 현상이 없어질 거라고 했다. 뭐, 죽는 것도 아니니 몸을 맡겨 보았다. 우두둑, 우두둑, 뼈가 돌아가고 빠지고 붙는 소리가 요란했다. 그러고나서 혈압을 재니 오차범위(그들이 주장하는) 내에 들어왔다.
그런지 이제 2주째다. 그새 스포츠텍스가 떨어져 새 걸 사다 놓았는데 아직 뜯지 않고 있다. 아무리 컴퓨터를 해도 손가락이 저리질 않기 때문이다. 이유가 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침을 맞아서 그런지 척추 교정을 해서 그런지, 아니면 그 두 가지 치료가 상승 효과를 낸 건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침 치료는 일시적인 통증 완화 효과는 있었던 것같다. 그런데 경락원에서 말한대로 혈압 문제는 내가 늘 느끼던 건데, 치료 이후 손가락에서 혈압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면서 저린 현상이 없어졌으니 아무래도 경락원 쪽 공이 더 큰 게 아닌가 싶다.
몇 달 더 지나고 보면 내 손가락을 치료한 게 누군지 정확히 가려질 것이다. 혹시 컴퓨터를 끼고 살아야 하는 사람 중에서 손가락이 저린 분이 있다면, 희망을 가지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