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과거를 표현하는 것이다. 현재와 미래는 어려움이 없는데, 과거 표현에서는 헷갈리는 사람이 아주 많다.
오늘 동아일보에 <이순신의 초서체 친필 일기는 전쟁 중에 거의 매일 썼던 처절한 기록물이다.>란 기사가 보이는데, 여기에 두 가지 문제가 있고, 기사에는 더 많은 문제가 있어 다듬어본다.
기사는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가 쓴 글이다.
링크를 열어놓고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盡 하나로 살아온 사내...이순신의 처절한 기록>
1. 이순신은 전쟁 중에 거의 매일 일기를 썼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 그는 늘 일기를 썼다. 전쟁 전부터 써온 습관이다. 이런 작은 거짓말도 해서는 안된다.
난중일기라는 명칭은 1795년 이충무공전서를 발간할 때 처음 붙인 제목이고, 이순신은 그 해의 간지를 붙여 임진일기, 계사일기 같은 식으로 썼다.
또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부터 그는 일기를 썼다. 전쟁 중에만 쓴 것으로 표현되면 안된다.
2. '거의 매일 썼던 처절한 기록물'에서 과거 표현이 잘못됐다. '쌌던'이 '쓴'이 돼야 한다. '기록물'을 설명하는 말이므로 굳이 과거형을 쓸 필요가 없다. '거의 매일'은 전투가 있는 날, 체포되어 국문을 받은 시기 등에는 쓰지 못했으므로 이런 설명이 더 있어야 한다. 안그러면 '전쟁 시기에 쓴 기록물'이라고 해야 한다.
3. 송복은 "우리 역사에서 사랑과 존경가 숭배를 한 몸에 담은 사람은 이순신 장군뿐이다'라고 했는데,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우선 사랑, 존경, 숭배는 나란히 설 수 있는 어휘도 아니다. 여기서 숭배는 빠져야 한다. 현충사조차 숙종 때 겨우 마련된 것이지 그 전에는 숭배조차 되지 못했다. 숭배란 단어는 박정희 이후 현충사가 정비된 이후 정치적인 이유로 유도된 것이다. 그러면 사랑과 존경이 남는데, 사랑도 부적절한 표현이다. 그러면 존경이 남는다. 그런데 '우리 역사에서 존경을 받은 사람은 이순신 뿐'이라고 하면 안된다. 이런 때에는 '이순신은 우리 역사에서 크게 존경을 받아온 분' 정도로 표현하여 다른 조상들의 여지도 남겨둬야 한다. 글 쓰는 이 마음대로 우리 역사 최고의 인물을 이순신으로 결정해서는 안된다. 훈민정음을 만든 세종 이도가 있듯이 분야별로 훌륭한 인물이 매우 많다.
4. '가난한 우리 역사에 이순신이 있어 우리는 그렇게 충만하다'는 표현은 억지다. 우리 역사를 왜 가난하다고 자기 마음대로 표현하는가. 이순신을 띄우기 위해 대한민국사 전체를 깔아뭉개서는 안된다.
5. '우리는 이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도 오만한 표현이다. 이순신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아주 많다. 그러므로 '이를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많다' 정도로 써야 한다.
6. '식민지배를 굳히려는 의도였다'는 표현은 학술적이지 않다. 일본은 우리나라에서 난중일기와 징비록이 금서 비슷하게 묶여 있을 때 자기들이 먼저 출판하고 연구했다. 그들은 임진왜란에서 왜 조선을 이기지 못했는지 열심히 연구해 마침내 1910년에 아얏소리 못하게 조선을 강점했다. 그들은 이미 조선 역사를 충분히 연구한 상태에서 조선인 한문학자들로부터 더 자세한 해석을 얻고 싶었을 뿐이다.
7. '난중일기 원문을 정확히 탈초(초서를 정자로 바꾸는'한 사례가 없다'는 표현도 사실이 아니다. 징비록은 조선에서는 금서가 되고 출판은 정작 적국인 일본에서 1695년에 이뤄졌다. 난중일기 역시 묶여 있다가 정조 때인 1795년에 이충무공전서에 포함되어 발간되었다. 이때 초서를 해서로 바꾸었다. 해서가 오늘날에 쓰는 정서다.
8. '이순신은 시인이었다'도 오해받기 좋은 글이다. 조선시대에는 일단 선비라는 의미의 儒가 되려면 누구나 다 시를 지을 수 있어야 했다. 따로 시인이 있는 게 아니고 양반 사대부는 누구나 시인이어야 했다.
9. 이순신의 생애를 진(盡) 한 자로 무리하게 해석했다. 그의 개인 주장이니 크게 나무랄 일은 아니지만 진이란 한 자 대신 '온 정성, 온 마음, 온 몸을 다했다'고 했다면 그나마 나을 것이다.
10. '이순신이 순국한 지 420년, 임진왜란 300년 후 왜에 나라를 빼앗겼다'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이순신이 순국한 지 올해로 420년, 임진왜란 318년 후 왜에 나라를 빼앗겼다'고 써야 한다.
11. 일제 지배 때문에 분단과 육이오전쟁을 겪었고'도 인과관계가 바르지 않다. 분단이 된 것은 일제 지배가 한 원인인 것은 맞지만 실은 당시의 일본(지금의 일본 + 사할린 등 일본 북방 5개섬 + 한반도 + 대만 + 만주)를 나눠먹으려는 열강들의 이기심으로 그렇게 된 것이다. 일본은 일본을, 소련은 사할린 등과 한반도의 절반, 중국은 대만과 만주를 각각 나눠먹은 때문이다. '육이오전쟁을 겪었고'도 '육이오전쟁을 겪고'아고 표현해야 한다.
- 아나파나 중인 고타마 싯다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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