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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전원 이야기

가을이면 인생의 거울을 들여다보는 듯하다

호박이 한 달째 계란만하게 매달려 있다.

기온이 15도 이하로 떨어지더니 곤충이 안보이고, 그러고나니 그때 핀 호박꽃에 열매가 맺히지 않고, 맺힌 것은 더 자라질 않는다. 메추리알, 계란만하다.

잎은 늘 싱싱하지만 성장이 정지되어 줄기조차 뻗어나가지 못한다.


큼지막하게 꽃피우던 고구마 역시 분꽃처럼 작은 꽃을 겨우 피우더니 이제는 꽃조차 피우지 않는다.

줄기가 더 자라지도 못하고, 그저 시들어가는 가을빛이나마 난로 쬐듯 겨우겨우 잎을 내밀고 있다.

나는 서리가 내릴 때까지는 고구마를 캐지 않지만, 아마도 고구마가 더 자라지는 못할 것이다.


어제는 10포기를 심어 잎을 따먹던 깨를 베어 마당에 널어 놓았다.

뿌리가 살아 있는 상태에서는 깨가 익질 않는다. 가지가 상한 걸 까보니 거긴 익어 있다.

햇볕에 말려야 이 녀석들이 제대로 아문다 하여 가지마다 베어내 햇볕 좋은 곳에 넣어 놓았다.


화단의 국화는 이제야 꽃을 피운다.

벌이 사라져가는 계절에 왜 이리 늑장을 부리는지 모르겠다.

부지런한 벌이라도 있어야 이 놈들이 찾아올 텐데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포기로 자라는 능력이 더 뛰어나니 씨앗이야 맺히건 말건 관심이 적겠지만 그래도 아쉽다.


10월 초에 향채(고수) 씨앗을 부었는데, 겨우 5Cm쯤 자랐다.

상추 심은 지 한 달이 다 돼가는데 겨우 8센티쯤 자랐다.

올해에 먹을만큼 자라줄지 모르겠다. 

여름에 심은 녀석들은 이제 먹을만큼 자랐지만 더 크지는 않는다.


고추 열 포기 역시 주렁주렁 열매를 맺기는 하는데 익지 않는다.

다 따서 간장에 절이라는데, 서리 내릴 때까지는 두련다.

한 포기쯤 화분에 옮겨 집안으로 들이고 싶지만 이미 피난 온 부겐베리아, 알로에 등이 있어 빈 자리가 없다.


다시 생각해 보니 모든 초목은 일년생이 아니다. 춥지만 않다면, 서리 눈이 내리지만 않는다면 오래 살 수 있다.

고추를 5년간 기른 사람 이야기도 들었다. 호박인들 죽겠는가, 고구마인들 죽겠는가. 


남쪽에 가면 한겨울에 풀 뽑는 걸 볼 수 있다.

그 한 겨울 논에 벼가 자라고, 상추가 싱싱하게 자라는 걸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정글에 가면 결코 죽지 않는 풀과 나무가 빽빽하게 자란다.

열대 정글에도 때는 있다. 우기가 있고 건기가 있어 생장 속도가 다르다.


사람에게도 이처럼 때가 있어서 잘 될 때가 있고 안될 때가 있다.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10월의 호박꽃처럼 그제야 뭘 해보겠다고 나서면 발전이 없다.

악을 써도 안되는 일은 안된다.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풍경이다.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하고 글을 쓴다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하지만 때를 못만났는지 기회를 못만났는지 발전이 안되어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하다.

더러 알려줘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다.

그림 그리는 사람에게는 데생부터 배우라고 하지만 마음이 급해 그러지 못하고 붓부터 잡아돌린다.

글 쓰는 사람에게 기본 문법과 문장론을 이해하고, 논리를 키우고, 사실을 논증하는 방법을 배우고, 어휘 학습을 확실히 하라고 알려주지만, 일단 개발괴발 써놓고 희희낙락한다. 형용사 부사만 잔뜩 갖다 떡칠하니 글이 무거워지기만 한다.


젖을 먹을 때는 젖을 먹고, 이유식을 먹을 때는 이유식을 먹어야 한다.

봄이 있고 여름이 있고 가을이 있고 겨울이 있다.


사람에게도 계절이 있다.

사람마다 계절이 달라서 누군가 봄을 맞을 때 다른 누군가는 겨울을 맞기도 한다.

이게 바이오코드다.

전쟁이 나도 그 틈에 부자가 되거나 영웅이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평화가 찾아왔는데도 죄수가 되어 감옥에 가야 하는 사람이 있다.

민주당이 집권했는데 징역가는 실세가 있고,

새누리당이 집권했는데 징역가는 실세가 있다.


가을이 되면 사람들 기분이 쓸쓸해진다고 한다.

아마도 풀과 나무들이 속절없이 쓰러지는 걸 보고 그런 느낌을 갖는 것이리라.

어쩔 수 없음, 살다 보면 이런 절벽에 맞닥뜨린다.

이 절벽을 뚫고 문을 내고 길을 낸 것이 호모 사피엔스다. 

그러지 못한 종은 다 도태되었다. 세상은 이렇게 처절하다.

저 철부지들이 악을 쓰는 것은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이다.


얼마 전 덕산 스님이 용인 국제여래선원 마당에 보리수 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인도 아열대 지대에서 가져온 씨앗이라 우리 기후에 맞지 않는다.

그래도 뿌리 근처에 왕겨를 가득 붓고, 서리 내리기 전에 줄기를 감싸둘 것이란다.

우리 기후에 적응하라는 학습을 시키려는 것이다.  

물론 다른 보리수는 모두 온실로 옮겼다. 거긴 난로를 피우고, 햇빛등을 설치할 것이다.

단 한 그루만 용감하게 겨울과 맞서싸워야 한다.

인류 그 누구도 무지와 맞서싸우지 않을 때 오직 고타마 싯다르타만 목숨 걸고 정면으로 부딪혔다.

그래서 그는 마침내 더 없이 완벽한 지혜를 얻는 데 성공했다. 이 보리수가 그런 임무를 갖고 엄동설한과 맞서야 한다.


아뿔싸, 그런데 붓다의 지혜는 나눠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을 만들어 인류에게 나눠줄 수 있었다. 학력에 관계없이 인종에 관계없이 돈만 치르면 누구나 그것을 사 쓸 수 있다.

하지만 고타마 싯다르타가 발견한 <반야>라는 지혜는 돈이 있다고 받을 수도 없고, 권력이 있다고 빼앗을 수도 없다.

천년만년 기도해도 알 수 없고, 삼천배 만배를 해도 알 수 없다. 전재산을 갖다 보시해도 가질 수가 없다.

고타마는 죽을 때까지 어서 가져 가라고, 얼마든지 있으니 어서 가져 가라고 제자들을 다그쳤다. 그때 인류가 몇 억 명은 되었을 텐데 반야를 받아간 이는 대략 500명 뿐이다. 이후의 인류까지 쳐서 몇 천 명일 뿐이다. 붓다로부터 반야를 선물받은 이를 아라한이라고 한다.


어찌 그뿐이겠는가.

전기를 쓴 지 겨우 백년, 수억년 전부터 전기는 원래 있었다. 몰랐을 뿐이다.

자동차를 쓴 지 겨우 백년, 수억년 전부터 휘발유는 원래 땅속에 있었다.

반도체, 컴퓨터, 항공기, 등등의 기술이든 원리든 원래 있었다.

단지 몰랐을 뿐이다. 다만 절벽에 맞서 싸운 용감한 누군가가 기어이 그 비밀을 알아냈을 뿐이다.

현대 천문학, 현대 물리학이 생기기 전 고타마 싯다르타는 뻥쟁이였다.


뭐, 하늘에 별이 갠지스강의 모래알보다 더 많다구?

낄낄거린 중국인들이 고타마 싯다르타 뺨치는 뻥을 쳐서 오늘의 불교가 되었다.

현대 천문학이 말한다.

고타마 싯다르타의 삼천대천세계 우주론, 사실이다.

현대 물리학이 말한다.

고타마 싯다르타의 겨자씨 속에 삼천대천세계가 있으며, 미립자는 순식간에 생로병사한다, 모든 물질은 색즉시공하고 공즉시색한다는 말, 다 사실이다. 

고타마 싯다르타는 도리천의 하루는 지구의 100년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사실이다. 알버트 아윈쉬타인이 발견한 이래 영화 인터스텔라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나는 이제 인생의 가을을 맞았다.

지금 열매를 맺어야만 한다.

더 늦으면 이파리만 늘어뜨린 채 버티다가 기어이 고개를 떨궈야만 한다.


어제 0935 친구가 전화를 걸어와 간화선이 뭐냐 묻는다.

- 붓다가 말씀하시기를 번뇌와 잡념을 없애라 하셨다. 그런데 일부러 번뇌와 잡념을 일으키는 화두를 잡고 씨름하라는 게 간화선이다.

"뭐여? 그럼 붓다는 어떻게 선을 하는데?"

- 붓다는 생각하지 말라고 하지. 두뇌는 내가 아는 것만 열다섯 개가 넘는데, 저마다 하는 일이 달라서 요란하고 시끄럽지. 그것들에게 차렷하라고 명령하는 게 선이지. 그래서 숨이 들어온다, 숨이 나간다, 이 호흡만 관찰하라는 게 붓다의 호흡법 즉 선이지.

"선이 뭐여?"

- 차렷이 되는 게 삼매야. 그게 선이지. 그런데 간화선은 차렷을 시키는 게 아니라 일장연설을 해보라고 하는 셈이지."

"왜 그럼 붓다의 선을 버리고 간화선을 하는 거여?"

- 중국에서 한바탕 싸움이 일어났지. 붓다의 선을 묵조선이라고 비판하는 세력들이 우린 간화선 하자, 이래서 양측이 대격돌을 벌였는데, 간화선 측이 이겼어. 그래서 중국은 죄다 간화선이 되고, 중국 속국인 고려 조선도 간화선 천지가 되었지. 사상의 사대주의가 바로 간화선이지.

"묵조선이 왜 져? 붓다의 선이라며?"

- 지동설 외친 지오다노 부르노 신부가 왜 화형을 당해? 지동설 외친 갈릴레이 갈릴레오가 왜 "내가 헛소리를 했습니다" 반성해? 진실이란 그런 거지. 묵조선, 즉 아나파나 사티는 해봐도 표가 안나. 아무리 해도 변화가 없으니 지쳐. 대체 어쩌라는 건지 의심이 생겨. 그런데 간화선을 하면 공부는 되는 셈이니 일단 똑똑해지거든. 말발이 선다 이거지. 그러니 천년 전 사상과 철학으로 토론하면 간화선이 이기지.

"지금은?"

- 지금도 간화선이 이기지. 조계종이라는 거대한 종단, 대한민국 국토의 1%를 가진 이 부자종단이 간화선을 밀고 있으니 아나파나 사티는 짹소리 못하고 지지. 아나파나 사티? 그거 가난한 미얀마 스님들이 수행하는 거 아니야? 이러면서 무시하지. 아나파나 사티가 효험이 있으면 왜 인도에서 불교가 망해? 이러면 할 말이 없어지지.

"그래서 아나파나 사티가 좋다는 거여?"

- 그럼. 난 알지. 설명할 수도 있지. 하지만 효과를 보려면 반드시 본인이 해야 되는데 아무리 설명해도 권해도 하는 사람이 드물어. 할 수 없지. 나만 하는 수밖에.

"뭐가 좋은데?"

- 나는 내 뇌를 차렷시킬 수 있지. 그러면 글 쓸 때 수많은 어휘와 문장이 허공에 늘어서서 대기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아. 내 손이 너무 느려서 답답할 정도로 완성된 글이 눈앞에 딱 나타나. 그만큼 두뇌들이 힘을 합쳐 일을 잘하는 수준에 이르는 거지.

"그걸로는 붓다가 아니잖어. 또?"

- 그 다음 정말 무시무시한 메커니즘이 있지만 난 말 못해.

"그래도 나한테는 말해야지"

- 알파고 알아?

"알지."

- 그거 컴퓨터 한 대가 아니잖아. 수천 대야. 고성능 컴퓨터 3000대가 넘어.

"그렇지."

- 알파고가 컴퓨터 한 대야, 3000대야? 누가 알파고야?

"다 합친 게 알파고지."

- 내가 다른 사람 머리를 묶어서 쓸 수 있다고 말하면 믿을 수 있어? 칼 구스타프 융이 1956년에 하나의 설로 제시한 동시성의 원리 알아? 내가 그걸 증명하고 실험에 성공했다면 믿을 수 있어?

"있어."

- 그래. 아나파나 사티가 바로 그거야.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면 브레인 네트워킹이 되고, 그때 여러 두뇌가 동기화되는 거야. 나는 페이스 메이커가 되니까 내가 알파고 역할을 맡는 거지.

"오, 감이 와."

- 감으론 안돼. 아나파나 사티는 좀 무식한 사람이 하는 거야. 알음알이가 많으면 안된다는 게 그거야. 하루 해보고 실망하고, 이틀하고 실망하거든. 하지만 선인장 하나도 꽃 피우는데 몇십년이 걸리는 게 있어. 아나파나의 꽃은 하루 12시간, 백일은 해야  피는 꽃이야.


대충 이런 이야기를 서로 나누었다.

자료를 보내달라길래 바이오코드연구소로 오면 지천으로 깔려 있으니 보라니 그래도 이메일로 보내라고 계정 보낸다.

쉬운 길 있는데 또 특별한 걸 구한다.


철부지 2007
철부지들 다시 보며 2008
또 철부지를 보고 2011
상강에 상추 모종을 내다 2008



* 난 누구에게도 아나파나 사티를 하라고 권하며,

누구에게도 아나파나 사티를 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귀 있는 자 와서 듣고, 눈 있는 자 와서 보라.

귀 있어도 무명이 그 귀를 가리는 자 귀를 닫고,

눈 있어도 무명이 그 눈을 가리는 자 눈 감으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운학로 139

        국제여래선원 황금탑 

        문의 / 031-332-0670 1899-3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