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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사람들/황금탑

간화선과 묵조선 전쟁, 누군가 지옥에 갔을지도 모른다

- 붓다를 배신하다 지옥에 갔을지도 모른다

 

붓다의 초기 제자들을 가리켜 '히나야나(hīna-yāna)'라고 욕한 사람들이 있었다. '모자라는 것들'이라는 욕이다.

물론 붓다의 제자들이 권위적으로 독단적으로 독점적으로 붓다를 차지한 것에 대해 분노할 수는 있다. 지나치게 계율 중심으로 나가는 기존 교단에 불만이 있을 수도 있다.

대표적인 반란자 '나가르주나 용수 스님'의 중도 혁명, 공 사상의 뛰어난 해석은 찬탄스러울 정도다. 세계사에 이토록 아름답고 처절하고 진지한 <철학 반란>은 없었다.

 

큰일에는 죄도 따르는 법, 이들은 큰 죄를 지었다.

나가르주나 용수 스님까지는 붓다의 핵심을 벗어나지 않았던 것같다. 

초기 마하야나(

Mahāyāna) 즉 '큰 배에 함께 타고 가자'는 대승 교단은 금강경, 화엄경, 반야경, 반야심경 같은 <대승경(아난이 들은 것처럼 플롯을 꾸몄으나 실제로는 반란승려들이 창작한 僞經, 위경이란 가짜 경이란 뜻이 아니고 佛說은 아니란 뜻)을 만들어냈지만, 그를 따르는 무리들, 이를 테면 예수의 적자를 자처해온 천주교에 대하여 마르틴 루터가 개신교를 만들었을 때처럼 이들은 큰 죄를 지었다. 이들은 벼라별 B급, C급 위경들이 흙탕물처럼 쏟아져나와 사캬 고타마 싯다르타의 가르침을 어지럽혔다.

 

이들은 심지어 석가모니는 숱한 부처 중의 한 명에 불과하고, 그들이 만들어낸 가짜 보살들한테서 배운 사람으로 둔갑시켰다.

사리불(사리풋타)은 문수보살로 찍어누르고, 목련(목갈라나)은 지장보살로 밟아버렸다.

그러고도 보현보살, 문수보살, 관세음보살 등 가지가지 힌두 보살을 마구 끌어들여 10대 제자를 뭉개버렸다.

붓다의 제자이면서 아라한이 된 500명조차 산신각이나 명부전 같은 허섭한 자리에 나한전을 만들어 마치 귀신 섬기듯 밀어냈다.

 

이런 짓을 한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남기지 않았다.

죄다 아난을 사칭했다. 가짜 경전을 지으면서 '나는 이렇게 들었다'고 적어 마치 아난인 것처럼 흉내냈다. 대승경전이 모두 그렇다.

심지어 무당들의 교과서가 된 <천지팔양신주경>도, 혹은 <부모은중경>도 그렇게 거짓말했다. 도교에서 귀신 부를 때 쓰던 경전들마저 여시아문으로 시작하는 불교경전으로 뒤바뀌었다.

 

- 붓다의 참선 아나파나 사티와 비파사나를 말라죽은 나무처럼 몹쓸 것이라고 말한 사람들이 있다

 

붓다의 수행법 <아나파나 사티>와 <비파사나>를 '삿된 선, 짝퉁 선, 가짜 선'이라고 말한 중국인들이 있었다.

그 선봉에 대혜 종고(大慧宗杲, 1089∼1163)라는 중국인이 있다. 그는 화두를 들지 않고 그냥 묵묵히 앉아만 있는 것은 무명(無明)만 조장할 뿐이라고 하여 ‘깜깜한 산 속 귀신 소굴(黑山下 鬼窟裏)’이라고 비난했다. 그들은 붓다의 수행법을 가리켜 '말라죽은 나무가 다 타버리고 남은 재'라고 욕설했다. 어리석은 선(痴禪), 장님의 선(盲禪)이라고 했다.

대혜의 악구(惡口)는 차마 옮겨적을 수조차 없는 막말이 대부분이다.

 

대혜 종고 : 해(奚) 씨. 1089년 11월 10일생(음) 양력 11월 10일

0555코드

 

묵조선 즉 아나파나 사티(안반수의, 지관좌선)는 매우 어려운 수행법이다.

아나파나 사티를 한두 달 해봐야 효과가 없다. 몇 년을 해도 마찬가지다.

근기에 따라 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여기에 병폐가 있다. 그래서 0555 코드인 대혜 종고가 그만 막말을 퍼부으며 그 병폐를 지적했다. 그런데 표현이 지나쳐 그만 큰 죄를 짓고 말았다.

묵조선은, 비록 붓다가 실천하여 깨달음을 이룬 수행법이긴 하나 누구나 할 수 없는 것이다. 붓다의 제자 1250명 중에서도 아라한에 이른 사람은 500명이다. 붓다가 계신 당시라서 가능한 것이지 그 이후에는 그렇지 못하다.

 

묵조선은 의식 자체를 끊고 무념무상한 경지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설명되는데, 그 경지를 뇌과학적으로 설명하려면 매우 복잡하다. 그래서 나는 뇌과학으로 아나파나 사티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거기서 원리를 파악하였다.

뇌는 수십 가지나 되고, 가지가지가 역할이 다르고 기능이 달라서 번뇌와 잡념은 끊일 새가 없다. 그런데도 묵조 즉 사마타(삼매)수준에 이르려면 매우 어렵다.

 

이런 병폐 때문에 아무리 묵조선을 해도 안되자 마침내 간화선이란 괴물이 나타났다. 묵조선이 당장 효과가 나지 않자 지혜로운 이들이 꾸며낸 또다른 사술이 간화선이다.

간화선은 차라리 의심을 하자는 것이다. 또렷한 의심을 잡고 있으면 다른 번뇌와 잡념이 물러갈 수가 있다. 아주 나쁜 이론은 아니다. 하지만 묵조선이 안되는 사람이 간화선을 해봐야 사실은 여전히 번뇌와 잡념에 시달릴 뿐이다.

몇몇 단계에 있는 사람에게 간화선은, 스승이 제자를 꿰뚫어 보고 맞춤형 의문을 줄 때 효과를 볼 수 있다. 

 

 

- 대혜종고든 굉지정각이든 두뇌가 뭔지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사캬(석가) 고타마 싯다르타는 두뇌 원리에 대해 정확히 이해했다.

나는 붓다를 두뇌에서 찾았다.

 

나는 굉지정각(宏智正覺,1091-1157 G07코드) 이 창시했다고 말하는 묵조선이 붓다의 아나파나 사티와 100% 일치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의 어록으로 미루어 볼 때 상당한 일치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아래는 그가 지은 묵조명(默照銘)이다.

 

묵조명(默照銘)

굉지정각(宏智正覺)

 

* 태이자 메모 / 묵(默)을 집중(아나파나 사티)으로, 조(照)를 통찰(비파사나)로 해석한다.

실제로 아나파나 사티를 하면 집중 즉 attention이 되고, 비파사나 경지에 들어가면 저절로 통찰이 이뤄진다.

이 경지가 돼야 석가모니 붓다가 눈을 뜨신다.

 

默默忘言 昭昭現前

집중하고 집중하여 번뇌와 잡념이 끊어지면 밝고 또렷하게 앞에 드러난다. 

鑑時廓爾 體處靈然 

거울처럼 밝게 비칠 때에 툭 트이니, 본바탕은 원래 신비하구나. 

靈然獨照 照中還妙 

신령스럽게 홀로 나타나는 저 진리여, 비추는 가운데 역시 미묘하구나. 

露月星河 雪松雲嶠 

이슬에 맞은 달, 은하수에 목욕하는 별, 눈 덮인 소나무와 구름 덮인 봉우리로다. 

 

晦而彌明 隱而愈現 

어두울수록 더욱 밝아지고, 숨을수록 더욱 드러난다. 

鶴夢煙寒 水含秋遠 

차가운 저녁놀에 학이 꿈꾸듯, 가을 물이 먼 곳까지 머금은 듯, 

浩劫空空 相與雷同 

무한한 시간 속에 텅 비고 텅 비었지만, 서로 어울림이 우뢰와 같도다. 

妙存默處 巧存照中 

묘한 진리가 집중(attention) 속에 존재하니, 또렷한 이치가 훤히 보이는구나. 

巧存何存 惺惺破昏 

또렷한 이치는 어떻게 저기 있을까? 안과 밖이 성성하게 혼침을 깨야하니, 

默照之道 離微之根 

집중(아나파나 사티)과 통찰(비파사나)의 도는, 자잘한 풀뿌리처럼 자세하다.(인드라網) 

徹見離微 金梭玉機 

이 자잘한 뿌리를 꿰뚫어 살피면, 옥 베틀에 황금 북이 돌아가고 

正偏宛轉 明暗因依 

정과 편이 완연히 굴러, 밝고 어두움이 서로 어울리게 된다. 

依無能所 底時回互

서로 어울리되 그 자리는 없고, 理와 事가 자재롭게 하나로 돌아간다. 

飮善見藥 撾塗毒鼓

선견약을 마시고 도독고를 두드린다.

 

回互底時 殺活在我

묵조가 서로 잘 어울릴 때에는 죽고 사는 게 내게 달려 있고

門裏出身 枝頭結果

문에서 뛰쳐나가면 가지(발길 닿는 곳)마다 열매가 맺힌다

默唯至言 照唯普應

집중(아나파나 사티)만이 오로지 지극한 말이 되며 통찰(비파사나)만이 오로지 널리 응하니

應不墮功 言不涉聽

응하되 공을 내세우지 아니하며 말하되 듣는 것에 동요하지 않는다

森羅萬象 放光說法

이 세상 모든 것이 빛을 발하며 설법한다.

彼彼證明 各各問答

저마다 증명하며 서로 묻고 답한다

問答證明 恰恰相應

묻고 대답하며 서로 증명하면 기쁨 가득히 서로 응하나

照中失默 便見侵凌

통찰(비파사나) 가운데에 집중(아나파나 사티)을 잃으면 문득 얽매임을 당하리라.

證明問答 相應恰恰

서로 증명하며 묻고 대답하면 서로 응하여 기쁨 가득하나

默中失照 渾成剩法

집중(아나파나 사티) 가운데에 통찰(비파사나)을 잃으면 둥근 이치가 유루법을 이룬다

默照理圓 蓮開夢覺

묵조의 이치가 원만하면 연꽃이 벌어지듯 꿈에서 깨어나고

百川赴海 千嶂向岳

여러 줄기 강물이 바다에서 만나고 천 갈래 봉우리가 큰 산을 향한다.

如鵝擇乳 如蜂採花

거위가 물에서 젖을 가려내듯, 꿀벌이 꽃에서 꿀을 모으듯

默照至得 輸我宗家

집중(아나파나 사티)과 통찰(비파사나)이 지극하면 우리 종가의 가르침은 계승되리라.

宗家默照 透頂透底

우리의 가르침 묵조로 머리 위도 꿰뚫고 발밑도 꿰뚫으면

舜若多身 母多羅臂

허공의 어디라도 자재롭고 두루하며 자비의 손 닿음이 한량없도다.

始終一揆 變態萬差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로서 살피면 변화하는 모습의 천차만별 깨달으니

和氏獻璞 相如歸璧

화씨가 옥을 헌납했듯 진리로서 꼬인 세상 이해하고 인상여가 옥을 찾아왔듯 방편으로 세상을 구하리

當機有準 大用不勤

중생의 근기 따라 준거가 있으매 크게 쓰는 이는 얽매임이 없으리니

寰中天子 塞外將軍

서울에 있으면 천자가 되고, 변방에 있으면 장군이 되리라.

吾家底事 中規中矩

묵조로 전승하는 우리의 진리는 곧은 것의 중심이며 굽은 것의 중심이니

傳去諸方 不要賺擧

여러 곳에 전하되 거짓의 방편으로 쓰지 말라.

 

 

- 집단 참선 중인 티벳 승려들. 중국 불교의 간화선이 아니다. 

간화선은 도교를 숭상하는 중국인들이 만들어낸 중국선이다. 

 

- 비파사나의 입장

 

고엔카는 1969년에 인도로 가서 비파사나 명상 교육을 시작했다. 이후 여러 나라들에 비파사나가 알려졌다.

 

satya narayan goenka 0105

U Ba Khin              1015

 

오늘날 고엔카가 중심이 된 비파사나가 인도의 뭄바이를 중심으로 널리 퍼졌다. 단지 우리나라에서만 이 비파사나가 간화선에 밀려 널리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다.

간화선에는 숨쉬기가 빠져 있고, 매우 사변적이다. 번뇌를 줄이는 것이 비파사나 혹은 아나파나인데 간화선은 도리어 더 많은 번뇌인 '화두'를 끝없이 들라고 권한다.

 

중국은 도교 이후 너무 사변적인 장난질을 많이 치는데, 애초에 이들은 석가모니의 명상법을 서로 다르게 이해했다. 

 

소림사의 조동종 소속 굉지정각(宏智正覺)은 붓다의 아나파나와 비파사나를 합쳐 묵조선(默照禪)을 만들어냈다. 묵(默)은 말이 없고 담연적정(湛然寂靜)한 불심(佛心)의 체(體: 本質), 조(照)는 조용(照用)으로서 영묘불매(靈妙不昧)한 불심의 용(用: 作用)을 말한다. 굉지정각은 G07이다. 그러다 보니 묵조선은 은근히 도교의 수행법을 닮아버렸다. 그래서 "

묵좌(默坐)하는 것만이 혜(慧)의 작용을 활발히 하고 깨달음에 이르는 정도(正道)"라고 하였지만 막상 아나파나가 빠져버렸다. 그저 비파사나를 강조한 것이다. 아나파나(사마타)와 비파사나는 함께 있어야 하는데 이때 아나파나가 완전히 빠져버렸다.

 

이 시기, 당시 중국선의 양대 파벌 중 하나인 조동종의 대혜종고(大慧宗杲)가 묵조선을 비판하며 간화선(看話禪)을 들고나왔다. 이것은 석가모니 시대에는 없던 수행법인데, 그는 팔리사 전통을 곡해하여 이를 명상법으로 만든 것이다. 팔리사는 오늘날에도 남아 있는 티벳불교의 짱군최를 가리키는데, 짱군최는 수행 중에 하는 것이 아니라 승려들이 수행을 마치고 모여 있을 때 하는 수행법이다.

간화선을 만든 대혜종고는 1089년생으로 G05다.

 

묵조선쪽에서는 간화선을 가리켜 "맹봉난갈(盲棒亂喝)을 휘둘러 득의만만(得意滿滿)할 뿐"이라고 비난하고, 간화선 쪽에서는 묵조선을 가리켜 "묵념부동(默念不動)에만 그쳐 활발한 선기(禪機)를 잃었다"고 비난한다. 

이 싸움에서 간화선이 이기고 묵조선이 졌다. 그러면서 중국 선불교는 간화선으로 빠져들고, 중국을 대중화로 섬기는 한국에서는 저절로 간화선 천국이 되었다.

 

*** 묵조선과 간화선의 논쟁을 잘 정리한 글이 있어 옮긴다. <여기서 옮겨옴>

 

Ⅰ. 서언
사실 오늘날의 한국불교는 돈오(頓悟)나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는 

선의 목적론에 지나친 가치관을 두고 있다.

 

돈오나 견성의 주장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으며 깨달음이라는 결과만을 중시하다 보니 깨달음을 체득하기 위한 선 수행으로 나갈 수 있는 철저한 자기 확신과 선의 역사와 사상 등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이고 합리적인 교육 없이 참된 선의 실천에 몰두하기 어렵고, 또한 시종일관된 선의 수행을 하기 어렵다.

 

즉 자신이 납득할만한 확고한 선불교(禪佛敎) 정신과 

사상이 확립되어야만 올바른 선(禪)의 수행자로서 자기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선의 역사를 배우고 선의 사상을 알아야 할 필요성은 

선사상의 본질 및 뿌리와 고향을 올바르게 파악하여 우리들의 확고한 선사상의 신념으로 지난날 역대의 많은 조사들이 부처님 혜명인 정법안장(正法眼藏)을 계승해 온 것처럼, 지금의 우리들도 이러한 선불교의 역사상에서 스스로 선을 실천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함과 동시에 사상까지 갖춘 선수행자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중국불교의 선사상의 쌍벽인 조동종(曹洞宗)의 묵조선(默照禪)과 임제종(臨濟宗)의 간화선(看話禪)의 비판자인 대혜종고(大慧宗杲) 선사(禪師)의 사상과 묵조선과 간화선의 비교 차이점을 찾아보고 확고한 신념을 가질 수 있는 선수행자(禪修行者)가 될 수 있으면 다행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Ⅱ. 대혜(大慧) 선사의 간화선 사상

 


대혜종고(大慧宗

杲 ;

1089∼1163) 선사는 

선주 영국현宣州寧國縣 사람으로서 해씨(奚氏)이며 송나라 철종원우(哲宗 元祐) 4년 11월 10일생이다.

탄일誕日에는 서상瑞祥이 있었다.

향교에 다니다 법을 구하는 것이 낫겠다 하여 16세 때 어머니의 반대도 물리치고 출가했다.

동산東山의 혜운원慧雲院에서 삭발하고 17세 때 구족계를 받았다.

그리고 대양산大陽山의 조동종曹洞宗의 종지宗旨를 배웠다.


그러나 전승傳承을 중히 여긴 종지宗旨가, 

대혜大慧의 성격에 맞지 않아 "禪이 전증자오傳證自悟의 法이 있을 수 있겠는가"라고 비난했다.

 

27세때 그의 스승 담당문준(湛堂文準)이 열반하고, 

유언으로 원오극근(1063∼1135)에게 배울 것을 권했다.

문준(文準)이 남긴 말은 대혜의 생애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계기가 됐다.


대혜가 원오 스승을 모신 42년 만에 설법을 들었다.

원오가 說한 '동산수상행東山水上行'의 공안公案으로는 마음에 와 닿지 못하고 후에 다시 원오가 설한 '훈풍자남래薰風自南來,

전각미량생展閣微凉生'의 법문法門에 홀연히 깨달은 바가 있었다.

 

다시 '유구무구여등기(有句無句如藤崎)'라는 고어古語를 참구하여 

반년의 정진 끝에 대혜는 대오하였다.

대혜선사의 법맥은 자운수단(自雲守端), 양기방회(楊岐方會), 오조법연(五祖法演), 원오극근(圓悟克勤), 대혜종고(大慧宗杲) 순으로 해서 양기파(楊岐派)에 속하며 신종(神宗 ; 1067∼1086) 철종(哲宗 ;1086∼1101) 무렵은 요遼와 서하西夏의 침입으로 외정(外征)과 동시에 국내 정치계도 재정비로 분주하고 신법당新法黨과 구법당舊法黨의 투쟁이 전개되어 갔다.

 

그 즈음 강서와 호남지방 일대 소위 강남지방의 선은 

임제종황룡파臨濟宗黃龍派)의 세력이었다.

그때 양기파楊岐派의 선승禪僧 가운데 오조법연이 출현하여 소위 사천불교四川佛敎와 그 발전을 도모했다.


그 오조五祖의 휘하에 원오극근이 있었다.원오는 어려서 출가하여 고승高僧들의 제방에서 수행하고 

최후로 법연의 제자가 되었다.


원오의 문하에 많은 거사층居士層과 사법승嗣法僧 24명 등이 있다.

그 가운데 대혜 선사가 으뜸이었다.

대혜의 사상은 양기파에 그 바탕을 두고 원오극근의 영향을 받아 국가의 정치적 불안정 시기에 그 민족의 감정에 충분히 부응하는 禪 즉 간화선을 널리 사대부와 관료층에 적극적으로 선양했다.

 

1.默照禪

 

굉지정각(宏智正覺 ; 1091∼1157)은 대혜종고와 더불어 송대의 선종을 대표하는 선사이다.

그는 조동종의 묵조선默照禪을 대성한 사람이다.

 

산서성山西省의 습주습현의 출신으로 속성俗姓은 이씨 11살에 고향의 계명사에 출가하였으며

자운사에서 구족계를 받았고 단하자순丹霞子淳(1064∼1117)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깨닫고

그의 법을 잇게 되었다.


굉지의 선사상은 묵조선이라 하겠다.

굉지의 묵조명(默照銘)에는 "묵묵히 일체의 언어를 끊고 좌선할 때 불성의 영묘한 작용이 분명히 깨달음의 세계로서 그대로 드러난다.

비출 때는 확연하여 텅 비어 있지만 그 불성의 본체는 영묘히 작용하고 있다.

깨달음의 세계는 언어와 분별을 초월하고 있다.

그것은 묵묵히 좌선하는 곳에 있으며 방편인 좌선은 깨달음의 세계에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


묵묵히 좌선할 때가 바로 지극히 뛰어난 언어를 표현하는 것이며 깨달음은 법계에 널리 비추고 있다.

묵묵히 좌선할 때에 삼라만상이 모두 광명을 놓아 설법하고 증명하며 잘 맞아 하나가 되어 상응할 때

깨달음으로 비춘 세계(照)에 禪(默)이 없으면 곧 미혹하게 된다.


묵묵히 좌선하는 가운데 깨달음의 비춤이 없으면 모두 지나친 것이 된다.

묵조의 이치가 원만할 때에 연꽃이 피고 꿈에서 깨어나

그것은 마치 百千의 강이 바다로 흐르듯이 묵조일여의 세계를 체득하면

우리 종가(宗家)에 간신히 도착하는 것과 같다.


우리 종지인 묵묵히 비추는 깨달음의 세계는 하늘에서 지옥에 까지 비추고 있다고 

하여 默은 언어나 분별을 떠난 세계,

照는 텅 비어 분명하여 스스로 비추니 애써 마음 쓸 일 아니고 생각으로 헤아릴 곳 아니니 의식과 망정으로 측량키 어렵다."고 했다.


원래 묵조는 조론(肇論)에 "성인은 깊은 마음으로 묵묵히 비춘다"라고 본래 명상을 의미한다.

宋代의 조동종에서는 당대의 전통적인 조사선의 정신을 이러한 좌선의 실천으로

새롭게 체계화하여 묵조선을 전개하였다.


즉 묵묵히 좌선하는 그 가운데 영묘한 마음의 작용이 있다고 하는 것이 묵조선의 요지이다.

 

2.看話禪
대혜종고(大慧宗

杲)의 간화선은 옛 조사들이 깨닫게 된 공안(公案)을 참구하는 새로운 선수행의 방법이다.

공안(公案)이란, 관공서의 문서라는 뜻으로 법칙의 조문條文을 말하는 의미다.

사적인 감정이 개입될 수 없으며 반드시 순수한 절대성의 의미이다.


선문에서는 불조佛祖가 개시한 불법의 도리, 그것을 의미하고 있는데 학인들의 분별의식을 떨쳐버리고 참구하여 깨달아야 할 문제이다. 公이란, 성현들이 깨달은 그 길(轍)을 하나로 하여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그 길로 함께 갈 수 있도록 하는 지극한 가르침의 이치이며, 案이란 성현들께서 그 깨달은 이치인 도에 나아가는 수행의 올바른 방법을 기록한 것이다.
이것은 바른 이치를 받아들여 法을 만들고 올바르지 못한 것을 막고 끊기 위하였다. 따라서 한 사람의 억견臆見이 아니라 신령스런 불법佛法의 근원에 합당하고 묘지妙旨에 계합하여 생사의 굴레를 타파하여 언어나 문자, 분별을 초월한 삼세시방三世十方의 수많은 불보살佛菩薩과 함께 똑같이 불법의 지극한 이치를 품승稟承하는 것이다, 라고 하고 있다. "다만 사량분별인 그 마음을 한꺼번에 꽉 누르고 그곳에 화두話頭를 看하도록 하라." "예"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께 묻되 "개拘에게도 佛性이 있습니까?"라고 묻자 조주스님이 "없다(無)"라고 답했다. 이 무無자라는 글이 여러 가지 비뚤어진 잘못된 지각을 쳐부수는 무기이다.
대혜의 간화선은 일체의 사량분별, 차별심을 억누르고 그곳에서 조주의 무無자 화두話頭를 참구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따라서 공안은 분별심을 버린 절대적인 참선의 방편인 것이며 근원적인 자기의 본래심을 깨닫도록 하고 있다. 공안이 타파되기 이전에는 어디까지나 공안과 대결해야 한다.
"의심이 커야 깨달음도 크다"(大疑之下必有大悟)했듯이 공안에 대해 의심을 집중시켜 자신이 의심과 하나가 되어 버리도록 하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주체적인 일행삼매一行三昧의 실천인 것이지 깨달음을 기다리는 대오선적 待悟禪的인 점수漸修는 아니다.
큰 의심을 전제로 한 공안선 公案禪의 수행적인 구조는 육조혜능이다. 사실 공안 간화선은 의단疑團을 일으키기 위한 것이며 의심이 나지 않는 공안은 의미가 없다.

 

3. 默照禪과 看話禪의 比較
먼저 공안선의 실천구조는 사실 고대 인도의 요가 명상법과 내용적인 핵심이 거의 다를 바가 없다. 마음을 어떤 하나의 대상에 집중시켜 마음이 흩어지지 않도록 하는 정신집중은 요가수행의 본질이기도 하다.
대혜의 간화선도 인도의 요가 수행처럼 전신심全身心을 총동원하여 의심으로 응집시키고 인도요가의 수행자들은 좌선명상의 그 자체가 목적이지만 공안선은 의심이 타파되어 자기의 근원적인 깨달음의 대오大悟의 수단으로 주장한다.
그가 단순히 좌선명상의 정신집중의 차원에 머물러 있는 고목선枯木禪을 묵조의 사선邪禪이라고 심하게 배척하고 있다. 옛날 신회神會가 북종의 간심간정看心看淨의 좌선을 공격한 것처럼, 대혜의 간화선은 선불교의 병폐를 구제하기 위한 새로운 실천법이며 그가 묵조선을 사선邪禪이라 비난한 것은 주체적인 대의大疑가 결여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간화선이 공안을 참구하여, 자기의 근원을 마음에 조고照顧해 보는 도구道具라면 묵조선은 오직 묵묵히 스스로 비춘다는 묵조를 표현하는 말이다.
같은 비유로 명경明鏡이나 명주明珠, 공곡空谷, 보원本圓, 본명本明, 본적본영本寂本靈등이라는 말로 본래성本來性의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굉지어록 4권에는 "묵묵히 좌선할 때가 그대로 투철한 깨달음의 세계가 현현顯現하는 것이다."라고 하며 그러한 깨달음의 세계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원래 도달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묵조의 특징은 수행과 깨달음을 둘로 나누지 않고 수증불이修證不二로 하고 있다.
묵조선은 그러한 깨달음을 묵조로 표현하고 있는데 대혜의 간화선은 체험적인 깨달음의 활동적인 표현에 반하여 관조적觀照的인 깨달음의 정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간화선은 깨달음의 활동적인 표현이라면 묵조선은 묵묵히 자기의 내면을 관하는 靜이라 비교해 볼 수 있다

 

Ⅲ. 결어
대혜가 살았던 당시의 불교계는 金의 침입에 정치적 사회적인 변화가 심화되어 정책은 중앙관료 뿐 아니라 대중들에게도 중대한 관심사였다. 불교의 목적인 현세의 불안으로부터 탈출을, 염불주송念佛呪誦의 타력적他力的인 방법이나 선禪에서의 자력적自力的인데서 찾으려고 했다.
이러한 사회적 기초를 바탕으로 한 선종의 양기파楊岐派가 그 포교布敎를 적극적으로 거사층이나 사대부, 관료층으로 단월檀越을 구성하고 있었다. 그중 無垢居士 장구성長九成은 대혜문하의 유명한 거사로 신뢰받는 사람이며 대혜가 16년간 형주 매주에 귀양가게된 것도 장구성의 정치활동에 동조했기 때문이다.
이때 장구성에게 보낸 편지는 한 통 뿐인데 비해 사대부士大夫들을 위해서는 끊임없이 많은 편지로 귀양지에서 보내 불굴의 투지와 열정으로 사대부들을 자기가 주장하는 공안선公案禪을 이해시키고 수행하도록 하기 위해 편지로써 참구법을 자세히 가르치고 점검하여 바로 잡아 주었는데 그의 활동에 사유되고 다듬어진 새로운 禪이 간화선看話禪이다. 대혜는 간화선의 참구로서 지식인인 사대부들에게 미친 영향은 중국불교 선사상의 획기적인 약진을 재촉한 종교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로써 대혜선사大慧禪師의 간화선看話禪과 묵조선默照禪의 소고小考를 마친다.

 

참고문헌
·『禪思想史』禪文化硏究所 鄭性本 지음 (1993. 2. 10)
·『대혜선사의 생애와 사상』효명(수다라 5권).
『대혜선사의 목조선 批判硏究』(1991) 東國大學校院禪學科金 鎬貴 碩士論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