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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운 작품/소설 토정비결

토정 이지함이 진실로 위인인 것은...

토정 이지함은 늦은 나이에 척박한 땅 포천의 현감에 제수되었다.

그때 그가 올린 상소문을 보면 그의 지혜와 덕성을 짐작할 수 있다.

소설 토정비결 제2권(해냄출판사 전4권본 중)에 나온다.


눈으로 보기에 더러운 약이 병에 적합한 것이 있고, 귀로 듣기에 더러운 말이 때에 맞는 것이 있사옵니다.

하늘이 있으면 반드시 별이 있고, 땅이 있으면 초목이 있사옵니다. 이와같이 나라가 있으면 반드시 인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전하께서 하시는 일이 참말로 알 수 없는 게 있사옵니다. 전하께서 보기 드문 성군이라고 여기저기에서 칭송이 대단한데, 어찌하여 인재를 잘 등용하여 쓰지 않으시는지 모르겠사옵니다.

해동청에게는 꿩을 잡으라 하고, 닭에게는 아침을 알리라 하고, 말은 수레를 끌게 하고, 고양이는 쥐를 잡도록 시키는 것이 전하의 일이옵니다.

그런데 전하께서 지금 하시는 일을 보건대, 천하의 해동청을 데려다가 쥐나 잡으라고 시키시고, 닭에게 수레를 끌라 하시고, 말에게는 꿩을 잡으라 하시고, 고양이에게 아침을 알리라고 하시옵니다.

(海東靑 使之司晨 則曾老鷄之不若矣 汗血駒 使之捕鼠 則曾老猫之不若矣) 

전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주상 전하의 자리에 앉아 아무 일도 하지 못하신다면 그것은 죄악이옵니다. 그 만한 자리에 있으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주상 전하 스스로에게는 아무렇지 않을는지도 모르나 백성들에게는 수많은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 일이옵니다. 한번 귀찮다고 고개를 돌리시는 사이에 수십 명이 죽고, 놀이에 눈을 파시는 사이에 수천 명이 굶사옵니다.

엎드려 원하오니 전하께서는 어리석은 신이 용렬하고 고루하다 하지 마시옵고 잠시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 토정 상소문 명칭 ; 만언소(萬言疏)

* 해동청(海東靑) : 원나라에서 바다 건너 고려에서 온 매라고 부른 말. 고려에서는 털빛이 흰 매는 송골(松骨), 털빛이 푸른 것은 해동청이라고 했다. 그 해에 나서 길들여진 말이란 뜻인데, 고려에서는 거문나치 즉 검은날지니로 불렸다. 물보(物譜)

한혈마(汗血馬) : 나는 뜻으로 보아 말이라고만 새겼는데, 토정은 한혈마(汗)라고 썼다. 중앙아시아 페르가나(Fargʻona, 중국명 大宛)이란 나라가 있었는데(오늘의 우즈베키스탄 북서부), 이곳에서 나는 말이 하루에 400킬로미터를 달렸다 하여 유명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