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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힘/애견일기5 - 별군 맥스

옆집 개 사랑이 이야기

우리 별군이는 하루 다섯 번 정도 쉬하러 마당에 나간다. 다섯 집이 공동으로 쓰는 마당이라 굉장히 넓다.

그런데 별군이는 밖에 나갈 때마다 일단 쉬를 하고 나서 마당에 사는 개 세 마리를 차례로 찾아가 인사한다. 별군이는 인사성이 워낙 밝아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아무리 더운 여름에도 인사를 빠뜨리는 적이 없다. 비가 와도 한다. 그럴 때마다 서로 냄새를 맡고 꼬리를 치며 서로 좋다고 난리다.


마당에 사는 세 마리 중 두 마리는 옆집이 기르는 '사랑 받는' 개들이고, 나머지 한 마리는 하얀 개인데 사랑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사랑을 전혀 받지 못하는 개다.

한때 사랑이는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실내에서 자랐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옆집에 사는 그 집 딸이 손자를 낳으면서, 딸이 기르던 뚱보 말티즈를 맡아 기르게 되어 도리없이 덩치가 있는 편인 사랑이를 데려와 우리 마당의 밤나무에 묶어 놓았다. 그러고는 밥도 주지 않고 물도 주지 않는다. 무슨 묵계인지 마당에서 두 마리를 기르는 옆집에서 물도 주고 사료도 주고 똥도 치워준다.


사랑이가 느닷없이 끌려와 밤나무에 묶인 것은 2017년 11월이다. 그해, 한번도 밖에서 살아보지 못한 사랑이는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가족들과 떨어져 고독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너무 추운 날에는 내가 개장을 비닐로 덮어주기도 했지만 강추위가 덮치는 날이면 벌벌 떨면서 밤을 견뎠다. 한달에 한두 번 사랑이를 기르던 할머니가 찾아와 육포도 주고 목줄을 풀어 뛰어다니게 해주기도 하지만 대개는 묶여 지낸다. 아마 한 달 내내 묶여 있는 날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지 2년이 지나고, 두 번의 겨울이 지난 올해 3월, 사랑이가 드디어 깊은 우울증에 빠진 탓인지 뇌전증(간질)을 보이기 시작했다. 옆집 아주머니가 우연히 목격하고 기겁을 했다고 한다. 뇌전중 발작은 웬만한 심장으로는 지켜보기가 겁난다. 

아주머니가 하도 놀라서 주인에게 연락하여 개 좀 어떻게 해보라고 부탁했지만, 5년 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는데 치료할 수 없다고 하여 약만 좀 먹이다가 그냥 두고 있다면서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그런 지 며칠 뒤 사랑이를 기르던 할머니가 찾아와 목욕을 시켜주고 털을 빗겨주고 갔다. 이렇게라도 하면 며칠은 사랑이가 견디는데, 그래도 곧 우울증에 빠지고 만다.


옆집 아주머니는 대개 혼자 집에 있다가 사랑이가 뇌전증을 일으키는 걸 봐야만 하기 때문에 걱정이 태산같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할 수없이 내가 나서기로 했다.

일단 뇌전증은 편도체의 전류가 급증하면서 발생하는 발작이니, 이 편도체 발작이 일어나는 기전이 뭔지 알아야 한다. 사람의 경우 뇌전증 약이 잘 듣는 게 있어서 웬만하면 증상을 약화시킬 수 있다.

그런데 개의 경우 어떤지 내가 모르고, 남의 개를 데리고 병원에 갈 수가 없어 내 선에서 가능한 조치를 하기로 했다.

사실 주인이 있는 개는 아무리 방치되어도 지나치게 간섭하면 욕을 먹게 되어 조심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랑이도 멀쩡히 가족들이 한 마당을 두고 살고 있지만, 자기들이 기르던 개가 아니라 친정 어머니가 기르던 개이고, 또 아이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일부러 거리를 두는 듯했다. 차라리 주인이 버린 유기견이라면 내 돈을 들여서라도 치료를 받게 하고 싶지만, 버젓이 주인이 있는데 너무 앞서 나가면 욕먹기 십상이다.


그래서 욕도 안먹고, 사랑이도 구해줄 방법을 생각해보았다. 사랑이에게는 행운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나는 편도체에 관한 한 뇌과학자 못지 않은 지식과 상식을 갖고 있다. 그래서 뇌전증 약을 먹이지 않고도 발작을 멈추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생각해 보았다.

내가 의심한 건 사랑이가 지독한 우울증에 빠졌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자주 오지 않고, 할머니의 가족이 눈앞에 살고 있지만 아무리 짖어도 본체만체하니 사랑이의 스트레스가 심할 수밖에 없다. 옆집에서 사료를 주고 물을 주고 변을 치워주지만 남의 개를 돌보는 거니 '사랑'이 들어갈 수가 없다. 더구나 그 집도 두 마리나 기르다 보니 이 아이들 운동시키기도 버겁다. 그래서 둘을 운동시킬 때 사랑이는 혼자 남는다. 거기서도 소외감을 느낀다.


또 우리 별군이가 소변 보러 나가 사랑이를 찾아가긴 하지만, 어느 정도 위로를 받는지 저희끼리는 꼬리를 치며 머리를 비비지만 자유로운 별군이와 달리 사랑이는 딱 그 뿐 어찌 할 도리가 없다.


그래서 나는 사랑이의 뇌전증 치료약으로 '사랑'을 처방하기로 했다.

아침 저녁 두 번, 목줄을 해서 산책을 시켜주는 것이다. 우리 별군이는 목줄이 없다. 하도 가녀린 놈이라 목줄을 할 필요가 없다. 맥스는 눈이 없으니 산책 갈 일이 없어 처음부터 목줄이 없고, 유모차만 있다. 유모차를 타고 산책을 하니 목줄은 처음부터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일단 사랑이 목줄부터 하나 샀다. 사랑이 목줄은 밤나무에 꽁꽁 묶여 있어서 풀 수가 없다. 그러니 새 목 줄을 갈아끼운 다음에 끌고 다녀야 한다.

그렇게 한 지 두 달 되었다. 가끔 맛있는 오리고기 포도 나눠준다. 옆집 개들이 쳐다보니 똑같이 준다.


그래도 사랑이만 데리고 산책 나가면 옆집 개들이 악을 쓰며 짖어댄다. 그러면 옆집 아저씨가 웃으면서 이 아이들 산책도 시켜주니 괜찮다.

사랑이는 두 달 간 아침 저녁으로 내게 이끌려 동네를 한 바퀴 돌다가 온다.

이제는 내가 마당에 나가면 반갑다고 꼬리를 치고, 산책 시간이 되면 소리도 지른다. 적어도 하루 두 번은 사랑이에게 무슨 희망이라도 생긴 것이다.

이제 6월, 사랑이는 오늘까지 발작을 일으키지 않고 있다. 언제까지 이 상태가 지속될지 알 수가 없다. 약을 안먹이고도 뇌전증이 고쳐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사람이나 개나, 생명 가진 것은 그것이 기어가는 것이든 날아가는 것이든 걸어가는 것이든 다 사랑 없이는 살 수가 없다.

개를 20마리 이상 길러 보니 개가 원하는 건 맛난 사료, 맛난 고기가 아니라 주인의 사랑이다. 주인이 저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기만 해도 개는 건강해진다. 틀림없는 법칙이다.


우리 별군이는 내가 밖에 나가면 반드시 내 침대에 올라 쉰다.

맥스는 침대에 오르지는 못하니 내 컴퓨터 책상 앞 발판에 앉아 쉰다. 그러자면 거실에서 미로 같은 길을 헤치고 일하는 방을 찾아가야만 한다. 그래도 용케 잘 찾아간다. 아빠 냄새라도 맡으면서 기다리겠다는 열망이 있다. 편하기야 맥스 침대가 훨씬 편하지만 굳이 불편하고 더럽지만 아버지가 일하면서 발을 놓는 '냄새나는' 자리에 엎드려 기다린다.

그러면 언젠가 현관 문이 열리면서 아빠가 나타나 "우리 맥스!" 이러면서 저를 번쩍 안아다가 제 침대로 옮겨준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개를 기르는 요령은 간단하다. 사랑이다.



- 큰놈이 사랑이, 작은놈이 별군이다.

사랑이가 아무도 찾아오는 이 없어 힘들어 할 때 별군이가 쉬하러 나갈 때마다 늘 찾아가 대화를 나누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