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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운 작품/태이자 우리말 사전 시리즈

59회 광복절은 8월 15일, 그런데 몇년도에 광복됐지?

태이자 우리말 사전 2019.8.14 / 

59회 광복절은 8월 15일, 그런데 몇년도에 광복됐지?

-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우리말 백과사전 / 이재운 / 책이있는마을 / 304쪽 / 신간

-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우리말 잡학사전 / 이재운 / 노마드 / 552쪽 / 24년 28쇄 

-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우리말 어원사전 / 이재운 / 노마드 / 552쪽 / 23년 28쇄

-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우리 한자어 사전 / 이재운 / 노마드 / 편집디자인 중 / 10년 5쇄

-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우리말 숙어 사전 / 이재운 / 노마드 / 증보 중

 

- 한국인을 위한 요약 
대한민국 건국 1919년 4월 11일(4월 23일설, 9월 11일설 있으나 당시 4월 11일로 합의) 
대한민국(남북 모두) 해방 1 (추상)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 해방 2 (실제) 1945년 9월 9일
북한 해방 1945년 8월 26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및 광복(추상)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및 광복(실제) 1949년 6월 29일
북한 정부 수립 및 광복(추상) 1948년 9월 9일
북한 정부 수립 및 광복(실제) 1948년 10월 12일

 

우리나라 사람들은 언어에 대한 이해가 매우 부족하다. 학력은 아마 선진국 중에서도 굉장히 높을 텐데 

막상 SNS를 들여다보면 맞춤법이나 문장 이해가 많이 부족한 글 투성이다. 뭐가 틀리는지도 모르고 

일단 악쓰고 보는 듯하다. 

특히 단어를 잘못 쓰는 건 너무 많아서 일일이 관심갖고 싶지도 않다. 거짓말이 너무 많아서 참말을 가려듣기 피곤해 제목이나 첫줄 보고 포기하는 글이 대부분이다. 

 

내일이면 또 광복절이다.

광복절이 언제냐고 물으면 8월 15일이라고 잘들 안다. 하지만 몇 년이냐고 물으면 여기서부터 한국인 평균 두뇌로는 도무지 풀리지 않는 미로가 나타난다. 

 

광복(光復)이란 빛이 돌아왔다는 뜻이다. 한문에는 시제가 없어 돌아온다, 돌아왔다 구분이 안된다.

여기서 새겨야 것은 光이다. 햇빛이 아닌, 자연 상태에서 생기는 불에서 나오는 빛을 가리킨다. 어원 자체는 횃불의 빛이다.

그런데 이 글자가 중요한 것은, 황제나 왕의 이름을 지을 때 쓰는 이름 자에서 매우 특별히 쓰인다는 것이다. 아마도 왕의 이름을 짓는 법은, 한국에서는 아마 나 말고는 아는 사람이 채 열 명도 안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데에 워낙 관심이 없어 20년 전에 책을 써놓고도 아직 발간 안하고 나만 본다.

 

즉 시호 정하는 한자 목록에서 光은 '왕조를 중흥시키나 망한 왕조를 도로 세우다'란 뜻으로 쓰인다. 

그래서 후한의 유수(劉秀)란 사람은 망해 없어진 한(漢)을 다시 세웠다는 뜻으로 광무(

光武

)라는 시호를 얻었다.

5호16국 시대 漢의 창업자도 광문(光文)이다.

고려 광종(光宗)은 중국 연호를 버리고 개경을 황도(皇都)라고 부르게 하고, 스스로 황제로서 처신한 국왕이다.

 

그렇다면 광복이란 말을 현대적으로 써야 한다면, 여기서 광은 왕조의 중흥이 아니라 자주 정부의 중흥 혹은 자주민족 정부의 수립이라고 봐야 한다.

1910년까지는 한반도의 왕조는 전주이씨로 이어지다가 이해부터 일본 국왕의 왕조로 바뀐다. 불법이든 합법이든 실질적인 일본 국왕의 통치를 받고, 국민들은 일왕의 신민이 되어 1945년까지 이 신분과 자격이 유지된다.

그러다가 1945년 8월 15일에 일본 국왕이 자발적으로 무조건 항복하지만 실제 항복은 9월 2일 도쿄만 미주리함상에서 이뤄진다. 그러니까 일본의 패망일은, 정신적으로는 8월 15일지만 미군이 접수를 하지 못해 9월 2일에야 정식으로 이뤄진다.

 

 

- 주요 내용 / "일본 국왕, 일본 정부, 일본 대본영은 미중영소 포츠담 선언을 공식 수락하며, 지금 어디에 있건 일본군과 일본 지배하의 모든 군대가 무조건 항복한다.

일본군과 일본국민은... 연합군 최고사령관의 모든 요구에 응할 것을 명한다."

따라서 이 날은 9월 2일에 조선주둔군에게 항복 명령이 내려지고, 이들은 9월 9일 인천항으로 들어온 미군에게 항복하게 된다. 이 항복문서에는 "연합군에게 해임되지 않는 한 각자 위치에 남아 각지의 비전투적 임무를 계속 수행할 것을 지시한다'는 내용이 있다. 이때문에 인천항으로 들어오는 미군을 보호하기 위해 일본군이 동원되고, 조선총독부는 이 날까지 정상 업무를 본 것이다.

 

 

미군 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는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기습 때 워싱턴 국회의사당에 걸려 있던 성조기를 가져와 미주리함에 내걸고, 싱가포르에서 일본군에 잡혀 있다가 풀려난 아더 퍼시빌 장군, 필리핀에서 일본군에게 잡혀 있다가 풀려난 조나단 웨인라이트 장군을 데려와 일본국의 항복 문서를 받는 자리에 참석시킨다. 이렇게 하여 일본의 주권이 사라지고, 미군정이 실시되었다. 우리 국민들은 일본이 미군의 통치를 받은 군정기가 있었다는 걸 잘 모른다. 억울한 한국도 군정을 받았는데 주범인 일본이야 당연한 것인데도 별로 관심을 갖는 한국인이 없다.

일본의 경우 1945년 9월 2일부터 미군정이 실시된다. 미군 35만 명이 일본에 배치되었다. 제8군은 도쿄, 24사단은 큐슈와 시코쿠, 제1기병사단은 혼슈, 제11공수하단은 홋카이도에 주둔했다.

이렇게 하여 일본은 1945년 9월 2일부터 1952년 4월 28일까지 미군정을 당해 주권을 빼앗겼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따라 일본은 7년여만에 미국 식민지에서 광복한 것이다.

 

(한 마디 덧붙이자면 육이오전쟁은 일본이 미군정의 통치를 받는 동안에 일어난 전쟁이다. 한국이 1948년 8월 15일에 광복이 된 이후로도 일본은 4년 더 미군정을 받은 것이다. 1950년 무렵 일본의 미군은 6만 명까지 줄어들었다. 하지만 한반도에 전쟁이 나면서 미군은 35만 명(일본 항복 접수 때 수준)으로 급증하고, 유엔군까지 몰려들었다. 일본은 미군과 유엔군의 훈련장이 되었다. 미군 시설만 2500군데에 생기고, 일본은 그 자체로 육이오전쟁의 군수보급기지가 되고, 미군정의 지배를 받는 일본인들은 군수보급요원으로 일했다. 미군정이 없애버린 일본의 군수산업체 약 1000개를 도로 살려 한국에 보낼 무기를 생산하게 했다. 미군으로 들끓던 요코스카항에는 일본 여성 매춘부가 1500명이나 활약했다.

 

이렇게 하여 패전 무렵 하루 300그램의 쌀보급으로 연명하던 일본인들에게 기회가 왔다. 

따라서 1950년도의 일본은 미국의 일부이고, 일본인들은 미국의 지시로 군수산업에 동원되고, 더러 미군을 따라 육이오전쟁에 참전하기도 했다. 아, 그러니 자주권도 없던 일본은 미군정 아래에서도 육이오전쟁을 활용하여 재기할 수 있는 지략을 썼던 것이다. 미군정 아래 일본인들이 육이오전쟁 3년 동안 벌어들인 돈은 무려 11억 3600만 달러나 된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해방(解放)을 사전적으로 풀이하자면 1945년 9월 9일이 된다. 

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난다는 뜻의 해방은 이 날에야 이뤄진다. 8월 15일부터 9월 9일까지 조선총독부는 건재하였다. 매일 아침 일장기가 올라가고 저녁이면 내려왔다. 총독부 관리들이 여전히 결재를 하고, 각종 인허가에 도장을 찍어야 했다. 미군이 들어오던 9월 9일, 인천항과 서울의 치안은 일본군과 일본 경찰이 맡고 있었다. 인천항에서 미군 환영하던 조선인들이 소란부리다가 일본군의 총에 맞아 죽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므로 1945년 8월 15일은 정신적인 해방일이고, 건국준비위원회가 9월 6일에 총독부 지지와 권유로 '조선인민공화국'을 선포하지만, 총독부가 소련군이 38선 아래로 오지 않는다는 확실한 정보를 얻은 뒤 이를 무산시키고 도로 권력을 회수해버려 광복의 기회가 금세 무산되었다. 그러다가 3일 뒤인 9월 9일, 미군이 들어와 일본군으로부터 정식 항복을 받았으니 이 날이 진짜 해방일이다. 이마저도 남한만을 가리키는 뜻이다.

 

38선 이북의 해방일은 또 다르다. 소련군은 8월 10일에 조선 국경으로 진입, 일본군과 치열하게 싸웠다. 김구의 광복군 중 이 전쟁에 낀 사람은 없고, 당시 소련군 대위 신분인 김일성 부대원들이 참여하였다. 8월 15일까지 소련군은 옹기, 나진을 점령하였다.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하는 날에도 소련군은 그곳 주둔 일본군 4000명(이 중에는 조선인이 다수 있었다)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이후 원산, 흥남을 잇따라 함락시킨 소련군은 8월 26일에 평양으로 입성, 치스차코프 사령관은 "우리는 조선의 해방군이다. 조선 인민들이여, 여러분은 자유와 독립을 찾았다."고 선언, 이 날이 북한의 해방일이 되었다.

 

정리하면 38선 이남 해방일은 1945년 9월 9일, 38선 이북 해방일은 8월 26일이다. 다만 자존심과 정신 승리를 지키기 위해 남쪽이나 북쪽이나 8월 15일을 해방일로 삼고 있다.

 

* 참고자료 / 다른 나라의 광복일은? 인도네시아 8월 17일에 독립선언, 만주국 8월 18일 붕괴, 베트남 9월 2일 호치민이 베트남민주공화국 선언.

 

 

 

- 1945년 9월 9일, 한반도의 주권을 상징하는 경복궁 조선총독부 자리에서 일어나는 해괴한 사건.

조선을 통치하는 기관을 상징하는 총독부 국기 게양대에서 일장기가 내려오고 성조기가 올라간다.

다시 강조하지만 1945년 8월 15일부터 9월 9일까지 계속 일장기가 게양되었다. 태극기는 단 한 번도 게양되지 않았다.

사진 중 저쪽 사람들은 일본군이고, 이쪽 사람들은 미군이다. 성조기가 올라갈 때 미군들이 거수 경례를 하고 있다.

이 자리에 한국인 혹은 광복군은 없었다.

 

그러면 광복은 며칠일까?

일단 1945년 8월 15일, 한반도를 관할하는 조정 혹은 정부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그야 물론 일본국왕이다.

그러다가 38선 이북은 1948년 9월 9일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 그때가지 소련 군정이 실시되었는데, 소련 군정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승인하고 공식적인 군정을 이양한 것은 10월 12일이다. 그러니 북한의 광복은 정신적으로는 1948년 9월 9일이고, 실제로는 1948년 10월 12일이다.

 

38선 이남은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하지만 미군정은 1949년 1월이고, 군정은 1949년 6월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마지막 군정장관 찰스 핼믹 소장은 1949년 6월 29일까지 군정장관 직무대리 자격으로 활동했다. 널리 알려진대로 미군정 활동을 벌여온 제24군단 7만 병력은 1949년 6월 19일까지 군사고문단 500명만 잔류시키고 전원, 전투기와 탱크까지 모두 철수하였다. 

그러므로 38선 이남의 광복은 정신적으로는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일을 가리키며, 이 날의 대한민국 정부가 공식으로 삼는 광복일이다. 실제로는 1949년 6월 19일이지만 이 설을 주장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마저도 육이오전쟁의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그거야 나와 극소수만 아는 일이니 묻어두자.

 

이러한 역사 진실이 있다고 해서 한국인들의 머릿속에 새겨진 해방과 광복의 개념이 달라지리라고 믿지는 않는다.

워낙 거짓과 가짜에 쉽게 휩쓸리는 사람들이 많으니 기대하지도 않는다. 다만 기록할 뿐이다.

 

 

- 미군이 조선 주둔 일본군과 조선 총독부의 항복을 받기 위해 인천항에 들어오던 1945년 9월 8일~9월 9일,

총 들고 인천항을 지킨 것은 조선 독립군도 미군도 아닌, 이미 지난 8월 15일에 무조건 항복한 일본군이었다.

이 날 미군을 환영하던 인천 시민들이 일본군 총에 맞아 죽었다. 역사의 진실은 이러하다.

 

 

 

- 왼쪽부터 해방조선 기념우표. 1946년 5월 1일 발행. 미군정 시절이라 이 우표는 일본정부 인쇄국에서 발행되었다. 그런데 무슨 광복?

- 정부수립기념 우표는 1948년 8월 15일자로 발행되었다.

- 독립1주년 기념우표. 1949년 8월 25일에 발행되었다.

 

 

 

 광복절에, 다시 광복절

 

유치하고 허망한 광복절 기념사

  제71주년 광복절 기념 박근혜 대통령의 <국뽕> 경축사(전문)

 

동포여, 우리들은 광복절을 기념할 자격이 없다

78회 납량특집 - 영혼, 혼백, 귀신이란 무엇인가

77회 연세(年歲)를 묻고 말할 때 가져야 할 마음가짐

76회 누가 자유(自由)라는 아름다운 말을 만들었나?

75회 고운 눈썹을 아미라고 한다. 아미가 뭔데?

74회 소극적이다? 뭘 어떻게 해야 소극적일까? 

73회 판도가 달라지다, 뭐가 달라진다고?

72회 아담한 것은 작은 것인가? 

71회 봉쇄란 무엇인가? 

70회 진실이란 무엇인가?

69회 하느님은 인간을 긍휼하신다, 뭘 어쩌신다는 뜻인가?

68회 통섭이란 무엇인가?

67회 평화란 무엇인가?

66회 공심이란 무엇인가?

65회 바이오코드와 아나파나를 하면 생기는 4가지 능력 聰 明 睿 智

64회 잘못을 빌 때 쓸 수 있는 우리말

63회 Science는 어쩌다 科學이 되었을까?

62회 관저라고 하니 다 같은 집인 줄 알지?

61회 치매(癡呆)란 무엇인가? 

60회 행복(幸福)이란 무엇인가?

59회 광복절은 8월 15일, 그런데 몇년도에 광복됐지?

58회 청와대 비서 조국은 법조인일까?

57회 자정은 어제인가 오늘인가?

56회 / 혼구멍이란 무엇인가?

55회 / (道)란 무엇인가?

54회 / 대부분 잘 모르는 '한국인 이름 풀이법'

53회 / 가책을 느낀다는 게 뭔가?

52회 / 오지랖은 무엇인가?

51회 / 백일장(白日場)과 망월장(望月場)?

50회 / 사찰의 (殿), 각(閣)과 궁()은 어떻게 다를까?

49회 / 사찰(寺刹), 사원(寺院), 정사(精舍), 암자(庵子)는 어떻게 다를까?

48회 / 장(()과 공(), 말도 서로 싸운다

47회 / 교양과 교육, 대체 뭐가 다른데?

46회 / 구정이란 말 쓰지 말라

45회 / 우리말의 '과거' 표현법은 무엇인가?

44회 / 나전칠기란 무엇인가?

43회 / 왜 한나라를 한국(漢國), 원나라를 원국(元國)이라고 안쓸까?

42회 / 제사도 안지내면서 형은 무슨 형?

41회 / 김 여사라고 부르지 말라

40회 / 1404년 1월 11일부터 점심을 먹었다

39회 / 세계라는 말에 이렇게 깊은 뜻이?

38회 / 상(商)나라는 어쩌다 장사하는 상(商)이 됐을까?

37회 / 수덕사 불상 뱃속에서 뭐가 나왔다고? 

36회 / 대충대충 설렁설렁 얼렁뚱땅, 이래 가지고는 안된다

35회 / 점심 먹으면서 정말 점심(點心)은 하는 거야?

34회 / 불고기가 일본말이라고?

33회 / 메리야스가 양말이라고? 

32회 / 대체 왜 욱일기라고 불러주나?

31회 / 나라는 1945년 8월 15일에 해방되지만 법률은 1961년 1월 1일에 해방되었다

30회 / 가수 윤복희는 정말 미니스커트를 입고 비행기 트랩을 내려왔을까? 

29회 / 500년 전 한자 읽는 방법을 알려준 최세진 선생

28회 / 도우미란 아름다운 어휘는 누가 만들었을까?  

27회 / 척지지 말라? 뭘 지지 말라고?

26회 / 천출 김정은? 김씨 일가가 천민 출신인가? 

25회 / 茶를 다로 읽을까, 차로 읽을까?

24회 / 대웅전? 불상 밖에 없던데 무슨 웅이 있다는 거지?

23회 / 오매불망? 2018년에도 이런 말 써야 하나?

22회 / 유명을 달리하다? 뭘 달리하는데?

21회 / 재야(在野)는 뭐하며 사는 사람인가?

20회 / 인민(人民)? 누가 인(人)이고 누가 민(民)인가?

19회 / 은행? 왜 금행이라고 부르지 않았을까?

18회 / 육개장의 개는 무슨 뜻일까?

17회 / 우위를 점하다? 뭘 어쨌다고?

16회 / 용빼는 재주? 용 한 마리 잡나?

15회 / 권력(權力)이란 어떤 힘을 가리키나?

14회 / 아직도 창씨개명하는 사람들이 있다

13회 / 왜구가 아기발도(阿其拔都)로 불리게 된 이야기

12회 / 애도하다? 뭐가 슬픈데?

11회 / 망하다? 망하면 뭐가 어떻게 되는데?

10회 / 조계종? 조계가 무슨 뜻인데?

9회 / 선거? 선은 무엇이고 거는 무엇인가?

8회 / 골백번은 대체 몇 번이란 말일까?

7회 / 골로 가다? 죽어서 골짜기로 가나?

6회 / 간발의 차이? 어느 정도 차인데?

5회 /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 그게 뭔데?

4회 / 가냘프다

3회 / 몇 살이나 돼야 생신이라고 부를 수 있나?

2회 / 효자(孝子)는 누구를 가리키나?

1회 / '질질 끌다'의 질질이 무슨 뜻?